이어서 '계속'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도전이고 의미가 있는 말인지 모른다.
물론 누구든 간에 본인 앞에 일어질 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의지로 내 앞의 일은 중단될 수 있다. 인간이 가진 자유의지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일이 바로 나를 멈추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동화의 주인공이 'happily ever after'이라는 구절로 끝이 나면 괜스레 뿌듯하고 언제든 다시 닿을 것만 같다. 아쉬움은 있지만 'to be continued'라는 문장 하나로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라고 '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그것이 헛된 희망일지라도 내가 혹은 내가 아끼는,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 모든 일에 언젠가 끝은 있지만, 내가 가진 모든 감정과 미련을 훌훌 털어 버리고 행복하게 보내줄 수 있을 때 드디어 'The End'라는 말에도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아. 좋았으니까.'라고 추억을 시작할 수 있다.
'앞으로 내 백수 삶은 언제쯤 끝나려나...?' 이러다 영영 사직서 한 장에 내 모든 인생의 후회를 담아 꺼이꺼이 울며 매일 꺼내어 보는 건 아닐까? 걱정도 많이 된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모든 게 열려 있다. 열린 결말도 아니요, 기승전결이 있다면 이제 '전'으로 넘어가려는 찰나다. 어쩌면 주인공이 큰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가장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을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그것도 모른 채 겁만 먹고 걱정만 하기엔 아직 서른셋은 조금 아까운 나이가 아닐까?
알지 못했던 반려동물이 주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고, 해질 때 나와 해뜨기 전 지하철 역에서 사무실까지의 10분이 내가 느끼던 사무실 밖 공기가 전부일 때는 이제 없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콩이와 낙엽을 밟고 산책을 하고, 피곤할 땐 낮잠을 청할 수도 있다. 언제든지 내가 원할때 대문을 열고 나갈 수도 있고, 내 창문을 열어 숨을 쉴 수 있다.
이렇게 조금씩 천천히 내 삶의 템포를 찾아보려 한다.
평생 계약직이지만 뼈를 묻겠다던 내 계획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원치 않게 백수가 된 지금. 훗날 뒤돌아보면 가끔 그리운 순간이 될 수 있도록.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봐야지.
혼자 쓸쓸히 읽으면 좋은 시집이라고 추천 받은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과 함께 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치욕스럽다, 할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쉽게 잊힐 일도 아니었다
흐느끼면서
혼자 떠나버린 나의 가방은
돌아오지 않았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머리칼은 젖어서
감기가 든 영혼은 자주 콜록거렸다
누런 아기를 손마디에 달고 흔들거리던 은행나무가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첼로의 아픈 손가락을 쓸어주던 발암이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무대 뒤편에서 조용히 의상을 갈아입던 중년가수가 물었다, 나 때문인가요?
누구때문도 아니었다
말 못 할 일이었으므로
고개를 흔들며 그들을 보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
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
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
마침내 터미널에서
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우동 국물을 넘겼다
가방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참, 무참히 돌이킬 수 없었다
- 허수경 <돌이킬 수 없었다>, 허수경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아직은 이렇게 끝낼 수 없는 내 인생. Will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