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에게 진짜로 바라는 게 뭘까?

복수? 사과? 동정?

by 아나스타시아

퇴사를 하면서 가장 크게 받았던 건 역시 사람이 준 상처였다.


가해 당사자들, 심지어 본인들은 가해자라고 생각도 안 하는 사람들 까지, 사람들에게 내가 한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뼈에 새겨져 욱신거리고, 흉터로 남아 그 말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고되었다.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 -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얼마 전에 읽은 산문집에서 가장 잊지 못할 구절이다. 들추어내어 뭐하나, 계속 생각해서 뭐하나 싶지만, 자꾸만 떠오르고 그 생각에 잠식된다. 그 상황보다, 그 시간 공기, 분위기, 내 마음 그 모든 것보다 가장 먼저 내 깊은 심해(心海)에서 떠오르는 것은 바로 나를 괴롭게 한 사람들의 '말'이다.


그들이 내게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들을 모아 모아 정성스럽게 불태워버려도 그 재가 다시 내 몸을 뒤덮는다.


어떻게 해야 그 트라우마를 나는 극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괜찮다고 네곁엔 우리가 있다고, 너한테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들의 말에 상처 받으며 고통 속에 지내며 살긴 너무 억울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쉽사리 잊기 어려워 언제부턴가 회상에 마음이 젖어 간신히 말려놓은 마음이 또 찢어지려 들 때면 누구를 찾기보단 머릿속 보다 귓속이 더 시끄럽도록 TV를 틀었다.


어떻게 해야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억울한 마음이 풀릴까?


누군가는 머릿속으로 그들에게 시원하게 욕이든 뭐든 퍼붓는 상상으로 마음이 풀릴 때까지 끝없는 상상을 하고 나면 풀린다고 하고, 어떤 이는 명상과 운동으로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그냥 그들은 저 멀리 떠내려간 종이 돛단배처럼 아무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그들이 나에게 와서 사과를 하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보상을 바라는 걸까? 아니면 그들 역시 나처럼 고통에 몸부림치길 바라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무엇도 나에겐 무의미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고, 어차피 시간은 지나갔고, 결국 나는 이렇게 되어버렸으니까.


한이 다 풀릴 때까지 엉엉 울면 마음이 나아질까?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살면서 다시는 우연이라도 스칠 일 조차 없는 게 내가 그들에게 가장 바라는 일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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