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효용 가치

태어나는 그 순간, 난 가치가 있음을

by 아나스타시아

사실 나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사람이다.

외모에 대한 얘기는 3박 4일을 얘기를 해도 모자랄 만큼 자신이 없다 못해, 내 콤플렉스 산에는 만년설이 항상 쌓여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학벌이 좋길 하나, 특별히 잘하는 게 있길 하나, 이젠 나이 서른셋에 이렇다 할 직업까지 없으니 아주 가뜩이나 낮디 낮은 나의 자존감은 외핵 내핵을 뚫을 정도로 기어 들어가 있다.


그러면서 내 생명에 대한 가치에 의심을 품었고, 나는 남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정확히 봉사하기 위한 삶이 아닌 나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프면 안 되니까. 슬프면 안 되니까.

그래서 살아야 했다.


내가 이 사회에서, 혹은 이 세계에서 작은 톱니바퀴라도 좋으니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쓸모가 있고, 그런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가치를 가지려면 자아를 실현해야 했고,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것이 내가 도덕 시간에 배운 정석이었고, 나는 시킨 대로 커왔고, 하지 말란 건 하지 않았고, 규칙을 잘 지키고 살아왔다. 성실히 살아야 된다고 해서 열심히 살았고, 사람은 손해를 보면서 살아야 된다는 말도, 세상은 불공평하는 말도 모두 인정하면서 '내 몫만 열심히 하며 살다 가면 잘 산 인생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런 나에게 사람들은 얘기했다. "그렇게 착하게 구니까 만만하게 보는 거야.", "너는 악바리 정신을 좀 가져야 돼!", "착한 게 절대 좋은 게 아니다 너?", "그렇게 순진하게 살아서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이라도 받고 싶은 거야?"


난 그저 배운 대로 살았을 뿐인데, 시킨 대로 했을 뿐인데. 바보가 되어있었다. 더군다나 회사에서의 그 사고 이후, 난 그런 작은 톱니바퀴 조차 되지 못하는,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존재할 이유가 없는 사람. 그냥 열심히 하다가 일어난 일인데, 나는 마치 죽일 사람이 되었다. 청와대 해당 비서관이 바뀔 때까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나를 해고하라는 압박이 들어왔다. 그 따위 실력이면 열심히 하지를 말았어야지. 자기 주제 파악도 못하고 열심히 해서 일을 그르친 사람이 되었다.


이 빠진 톱니바퀴는 빼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이 세상에서 빼내어야 할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아프게 죽는 게 싫어서 잠들기 전 침대에서 눈을 감고 숨을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 포기도 해봤다. 어떤 날엔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 창문은 이중 창이고 하수구랑 문만 잘 막고 내가 가진 일주일치 수면제를 모두 먹고 번개탄만 잘 피워두면 아프지 않게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며 너무나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나의 죽음을 눈 앞에 그렸다. '주님 제가 이 와중에 죄를 짓기 싫어서요, 제발 저 좀 죽여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기도를 눈물에 잠겨 바치며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때의 '실수'를 '사고'라는 단어 대신 '실수'라고 부르기까지 2년이 걸렸다. 죄책감이 늘 나의 목을 조여왔다.

나를 보는 모든 이들은 단순히 내가 기가 죽어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난 죽음을 생각했었던 것이다.


사직서를 내고,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는 과정에서도 내 '수준'이니, '어리숙함'이니 하는 나에게 의미 없이 가볍게 던져지는 단어에도 나는 내 효용성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끊어내고 콩이를 만나면서 조금씩 그 마음이 바뀌었다.


처음 콩이가 우리 집에 왔던 날. 이틀 동안 환경이 바뀌어 변을 안 보는 작은 아가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아이가 숨 쉬는 게 기특했고, 밥을 먹는 걸 칭찬해줬다. 처음으로 방 아무 곳에나 변을 본 날 그렇게 기뻐하며 크게 칭찬을 해줬다.


나도, 우리도, 당신도.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다. 태어나서 숨을 쉬고, 잘 먹고, 잘 싸고 그 자체가 이미 가치가 있는 존재들이다.


<The Vital Question>이라는 책의 구절을 일부 빌려 이야기 하자면 별들은 그들의 존재를 위해 끊임없이 그들이 갖고 있는 최대치의 에너지를 우주에 방출한다. 즉 별이 살아있는 것 그 자체, 살기 위해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빛을 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 명 한 명의 따스한 마음을 가진 인간은 살아있는 별이다. 우리는 살기 위해 우리 몸의 에너지를 태워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고 호흡을 한다. 우리가 호흡을 하고 살아 숨 쉰다는 것. 이미 그 자체가 빛을 내는 별과 우리가 다름이 없는것 아닐까??


더 이상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압박을 내려놓기로 했다. 대신 내가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의미 있고, 소중하고, 가치 있고, 빛이 나는 일이라는 것을 계속 떠올리려 노력하고 있다.


빛나는 나를, 너를, 당신을 하나하나 무척 존귀한 당신들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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