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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Nov 11. 2020

가족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왼손 글 1

서른셋 연애도 안 하는 노처녀 딸이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계시우종이랬던가. 그래도 1급 기관장 기관의 계약직이라도 대통령 옆에서 사진도 찍히고 명절이면 명절 선물세트 O호 대신, 출장으로 명절엔 어느 나라에 가있다며 온갖 친척들의 쓸데없는 오지랖 방패막과 함께 청와대에서 대통령 이름이 박힌 선물이 도착하게 하던 딸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퇴사를 받아들이시지 못했다.


본인조차 정년퇴임 후 이제야 제대로 쉬고 있는데, 혹시나 아버지의 노후자금에 피해를 주진 않을지,

외국에 살고 있는 동생은 겨우 제 앞가림하며 비자 연장만으로도 벅차 하며 용돈 한 번 쥐어드리기가 힘이던데 예순이 넘은 나이에 떠넘길 사위 하나 없이 "장남! 국가의 아들!"이라고 부르던 첫째가 역시나 헝그리 정신없는 '요즘 사람'답게 일을 관뒀다.


어머니는 나의 병을 받아들이시지 못했다.


네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 누구나 다 겪는 거라고,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우울증은 호르몬이 나의 감정을 막아주지 못하고, 긍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조차도 나를 탓하고 괴로워하는 병인 것을. 자꾸만 좋게 생각하라고 하셨다.


좋은 대학도, 좋은 신랑도, 변변찮은 직업도 드리지 못한 나는 그 무엇보다 '지금 내 자체'를 인정받는 게 너무나 시급했다.


가족마저 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다시금 나는 죽음을 생각할 것만 같았다. 가족끼리도 조그만 비밀쯤은 있어야 하지만, '인정받고 살기 위해서', '못나도 나 좀 살아야겠습니다.'라는 뻔뻔한 마음으로 그간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며 세 시간을 통곡을 했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잘하진 못해도 진짜 열심히 노력한 한계가 이거라고. 그리고 몸도 마음도 너무 아프다고. 이런 나를 받아달라고, 발가벗겨진 기분으로 통곡을 했다.


적어도 어머니는 이제 나의 정신과 진료를 받아들이기 시작하셨다. 아직 뼛속까지 대구분이신, 지독한 가난 속에 커오면서 굶어 죽는 거보다야 스트레스받아 죽는 게 낫지 그걸 왜 못 참나 생각하시는 아버지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사실 이러한 인정을 받는 과정이 개운하지는 않다.


사회생활의 일을 미주알고주알 털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백수로써 한 손 마저 쓸 수 없어 모든 걸 잃은 것만 같은 이 상황에서 나는 내 맨 마음을 보여주는, 가족이라도 감추고 싶은 치욕스러운 이 인정을 받고 모든 걸 내려놓아 보기로 했다.


그냥 백수도 힘든데, 건강한 백수 하기가 참 어려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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