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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시아 Nov 20. 2020

애매한 나이, 철없는 싱글의 ‘어른’에 대한 고찰(2)

왼손 글3

그렇게 월요일까지 벌벌 떨고, 억울함에 고성을 질러대던 나는 관리실장과의 전화를 받고서야 냉정함을 찾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토요일의 그런 발광은 퇴사 때 담당 사무관과의 마찰[하지만 그것은 오랜 고통 끝의 절규지 광기는 결코 아니었다.]을 제외하면 난생처음 있는 일이기에 나조차 스스로에게 놀라며, 공포심으로 인해 정신과에서 추가 약물을 처방받았다.)


손목이 아파 멀리하던 컴퓨터를 켜고 내용증명과 경위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결코 악덕한 이들로 이용을 당해먹는 건 내 전 직장 하나면 족했다.

임대인이 주장하는 전세 계약 "특약 별지". 협의도, 날짜도, 날인도, 특약이라는 표시도, 구두 언급도 없었다.


관리비 체납 시 13% 인상(10% 대면 대부업체의 대출이자에 가깝다!), 집 비밀번호 퇴실 2달 이상 전부터 공개(이는 주거침입죄에 해당하고, 임차인은 비밀번호를 알려줄 의무가 설령 계약서에 적시된들 없다고 이미 수많은 판례가 있다.), 터무니없는 퇴실 청소비(통상 9만 원 책정)등에 대해 나는 임대인의 얼굴도 한 번 본적 없이 협의 한 번 하지 못하고, 임대인 대리인 공인중개사의 일방적 서명 요구에 서명만 하고 올라왔던 것이다.


특히 반려동물 사육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줄 경우 강제 퇴거를 할 수 있다고 했고, 이는 임대인의 권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시설관리인이 일방통보를 하는 것은 권리 남용이 아닌가?


오히려 냉정을 되찾은 나는 '좋게 좋게' 잘 푸는 게 세상 살기 편하다는 엄마의 조언에 더욱 '어른'같이 굴어보기로 했다. (후에 이모도 심신도 안 좋은데 '좋게 좋게'하지라고 하셨지만). 성치 않은 손으로 10장의 경위서와 민원증명을 써서 보냈다. '무정(無情)'. 이것이 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뒷말 없이 상처 받지 않고 '인간적'인 것보다 덜 아프게 일을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내용증명서를 보시고서야 어머니도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해주셨다.


가끔 내가 아프고 힘들 때면, 그리고 회사 스트레스로 7cm까지 커버린 근종을 보며 엄마는 얼른 좋은 짝을 만나 기대기도 하고 덜 불안해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다. 결혼을 하거나 정말 마흔이 넘은 "나이 든" 싱글이 되면 나는 어른이 되는 걸까?


내 친구들은 아이도 있고, '친정엄마'가 아이를 봐주시기도 한다고 한다. 과연 어른이 되는 것이 내가 생각했던, 부모님껜 그저 속말 없이 껍데기만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습만 보여드리는 것인지, 가끔은 기대고 응석을 부려도 되는 것인지 엄마 없이 살 수 없는 요즘은 알 수가 없다.


남편이라는 존재가 생기면 달라질까 하다가도 그 역시 나와는 또 다른 객체이기에, 그 어떤 경우에도 혼자 살아남는 것이 어른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었다. 가끔 내가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해야 한다. 그게 친구든, 형제든, 부모든. 결국 건강한 사회적 동물로 구성원들과 호흡을 주고받는 것. 그렇게 잘 늙어가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서른셋의 나는 생각한다.


+) 이번 일이 커지지 않고 잘 해결되기를. 내 치유가 되는 내 가족인 우리 콩이를 잘 지켜낼 수 있도록 잘 넘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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