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세월호 인양 취재지원

by 아나스타시아

입사 첫 해는 슬프게도 세월호 인양 1주기를 맞던 해였다. 세월호가 정치의 아이콘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 너무 아쉽지만 그 당시만 해도 세월호는 나에겐 적어도 정치가 아닌 아픔이었다. 어처구니없게 어린 친구들이 목숨을 잃고,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겨나고, 정작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져주는 이들은 없는 기적도, 교훈도, 감동도 없는 오직 슬픔으로만 가득 찬 믿을 수 없는 영화였다.


입사 1년 차에는 유가족의 눈물의 기자회견을 들었고, 2년 차에는 끝끝내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가족의 기자회견을 들었다. 그리고 3년 차, 드디어 세월호 인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비극적 영화의 에필로그를 위해 빠르게 해수부에 연락을 했다. 취재 과정에 있어서 외신들이 배제되지 않고, 보도자료나 영상자료 역시 시차 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핫라인을 구축했다. 외신의 질의나 인터뷰가 누락되지 않도록 안내 채널을 해수부 담당자인 나로 지정하고 그 일에만 전념했다.


그 무엇보다도 그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된 데는 내가 6년을 일하며 한 기자님의 말 때문이었다. 사실 ‘그분의 그 말 때문에’ 세월호 인양뿐만 아니라 모든 취재 지원과 홍보 업무에 있어서 내 영혼을 갈아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고 1주기에 즈음 그분과 나와 팀장님의 간담회 자리가 주선되었다. 술잔은 채워지고, 술병이 비워질수록 그분은 우리에게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저는 사무관님, 죄송하지만 저는 정부 편에도 유가족 편에도 무조건 서는 보도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 일을 하고 사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실을 전달하는 게 저의 미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랬다. 전 세계가 집중하는 매체의 한국 뉴스를 담당하는 기자의 철학은 그 어떤 편 가르기나 이득을 떠나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알리고 귀감을 주는 것. 단순하지만 이 이야기를 전달하는 언론이라면 가장 먼저 갖고 있어야 하는 직업정신. 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결심했다. ‘저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해 저들과 함께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기다린 인양 작업이었다. 내가 직접 들은 가족의 통곡소리, 그리고 이런 일을 다시는 우리 사회에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기자. 그분들을 위해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고, 다할 수밖에 없었다.


문의전화는 폭주하고 관련 자료는 쏟아져 나왔다. 특히 내부 공개까지는 몇 달에 걸쳐서 취재가 진행됐다. 한국에 있는 특파원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본사에서도 직접 취재를 위해 한국을 찾았고, 그럴수록 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역시 콩깍지가 씌어서 그랬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나 역시 기자님의 멋진 포부에 편승하고 싶어서였을까? 그렇게 내 눈, 입, 귀, 두 손이 바빠질수록, 나도 이 일에 조그마한 부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선한 마음과 뚜렷한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 최전선에서 그 장면과 현실을 알리고 계신 분을 어떻게든 도울 수 있다는 마음은 그런 피곤함을 잊게 해 주었다.


선한 일을 하면서 톱니바퀴도 아닌 그냥 빠지면 조금 헐거울 나사 같은 존재여도, 역할이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음을.



PS. 비록 다른 업계로 결국 떠나가셨던 C사의 K PD님. 그때는 사회초년생이라, 또 부끄러운 마음에 감사의 인사를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제가 하는 일들에 지쳐가고, 권태가 오고, 위기가 올 때, 떠나셨음에도 PD님의 말은 제 마음속에 남아 초년생의 순수한 열정을 지켜 주셨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똑똑하고 훌륭하신 분이라 제 기도가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건강하고 멋진 마음 다치시지 않게 기도드릴게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PD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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