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브런치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친구의 영향이었다.
친구의 성지 순례기를 읽으며 문득 내 우울증이 극심화되었을 때 쓴 글들을 나 역시 쓰고 싶었다.
김나율 작가의 <살아있는 게 기특한 사람>을 읽고 위로를 받을 당시, 나 조차도 병동을 가는 것도 좋겠다는 권유가 있었기에 내 아픔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나의 병은 내 마음속 밑바닥에 묻어있는 기름에 회사에서 받은 상처들로 전소되어 내려앉았기 때문에 '과연 회사를 밝혀도 될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으로 글을 쓰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백수가 될 던 건 아니었는데>가 뒤죽박죽 백수의 생활만 보이지만 사실 그 뒷면에는 가려야 할 많은 것들이 있었기에 시답잖은 말들로 빙빙 둘러 짧은 브런치 북을 마칠 수 있었다.
청와대, 문체부, 계약직, 이런 것들이 세상에 알려지면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상 모두가 존경하는 대통령님의 존함에 먹칠을 하게 하는 행동을 한 나에게 혹여나 국정원에서 찾아오진 않을 끼? 별별 상상력이 다 발동됐었다.
강박증, 우울증, 불면증, 공황장애, 근종 얻을 수 있는 병은 다 얻었는데 세상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나 홀로 빈 방에서 삭히는 그 괴로움, 외로움, 억울함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대체 알 수가 없었다.
대나무 밭이 있다면 “사람이 먼저인 정부는 사람 죽이는 정부!”라고 소리를 쳤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정치색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나 역시 지금의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았는 것을.
다만 두들겨 맞은 나는 이제 당분간은 일어날 힘조차 없는 아나키스트가 되었다는 것. 이제는 자유로운 유권자가 되어 더 이상은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위안을 얻고 있을 뿐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퇴사의 길과 작디작은 반려견에게 위안을 얻어가며 생명을 부지하는 내가 못나보였고, 지금도 잊을만하면 두더지 게임의 두더지처럼 튀어 오르는 옛 생각에 신물이 올라온다.
그냥 위로가 받고 싶었다. 많은 분들은 아니라도 한 분이라도 혼자가 된 나에게,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나에게 다시 사람에게 다가설 용기를 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만 같은 마음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조금 더 좋은 글이었다면 더 많이 위로받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다가도 하나 둘 눌리는 라이킷과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분들의 위로에 ‘뭣이 중헌디?’라고 스스로 꾸짖으며 보이지 않는 감사의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두렵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방법 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앞으로 또 어떤 글을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 글은 이 글을 이겨낸 희망기가 되길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