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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ajera 비아헤라 Dec 24. 2024

[라오스 여행] 라떼 또는 비취

Sabaidee!

  11시가 되기 전 약속한 장소로 갔다. 승객이 아직 모집이 덜 됐는지 11시가 지났는데도 길가에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따분함에 앉은자리 옆으로 지나가는 커다란 개미의 행로를 눈으로 따라가며 '개미멍'을 때리고 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차에 올라탔다. 아직 자리가 널널한 밴은 출발하고도 여기저기 골목골목을 들려 숙소에서 대기하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픽업했다. 그러기를 몇 번, 어느새 보조좌석까지 꽉 채운 만원밴이 됐다. 국적을 알 길 없는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진 만원밴은 구불구불 흙길과 자갈길을 번갈아가며 흔들흔들 달리기 시작했다. 가는 길 대부분이 비포장도로라 승차감은 좋지 않았지만, 멀미약을 미리 먹은 덕에 다행히 멀미는 하지 않았다.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차의 속도가 창밖으로 지나가는 소담한 시골 풍경을 구경하기 그만이었다.



  끙차끙차 마지막 언덕까지 부지런히 오른 작은 만원밴은 우리를 꽝시폭포 주차장에 주었다. 삼삼오오 차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매표소 앞에서 모였다. 주차장 옆 매표소에서 표를 사고 픽업카를 타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갔다.



   폭포를 만나려면 산기슭을 조금 더 올라가야 했는데, 입구에는 야생곰을 보호하는 존이 있었다. 반달곰을 지나 완만한 산길을 올라가니 계곡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 우기라 라떼색 같다는 후기가 많아 라떼색일까 건기 때처럼 비취색일까 걱정했는데, 하류 부분에 물이 졸졸 흘러내려와 고인 곳은 흙탕물 색이었다. 수영은 포기하고 폭포 구경만 해야겠다 싶었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보이는 첫 번째 계곡 웅덩이는 청량한 비취색은 아니더라도 약간 탁하긴 했지만 엷은 옥색이었다.




  이 정도면 수영은 할 수 있겠다 싶어 신이 나서 걸음을 재촉하여 더 오르니 조금 더 옥빛의 계단식 폭포가 나왔다. 아직까지는 수영금지 구역이라 미끄러운 돌계단을 발로 더듬더듬 짚어가며 더 올라가니 드디어 수영존이 나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물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물에 들어가고 싶지만 아직 가장 멋지다는 꽝시 폭포를 못 봤기 때문에 잠시 뒤 돌아올 것을 기약하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물줄기 소리가 점점 세지더니 어느새 병풍처럼 펼쳐진 꽝시 폭포가 보였다. 거대한 폭포가 웅장하게 뿜어내는 물줄기는 마치 산신령의 풍성하게 늘어진 수염처럼 보였다. 폭포물은 어마어마한 양과 소독로 떨어지면서 바위와 수면과 부딪히며 산산이 깨져 부서진 폭포물을 멀리까지 날렸다. 한참 떨어진 곳에 있어도 천연 미스트처럼 폭포물이 따라다녔다.



  광활한 광경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만 해도 시원했지만, 수영을 하기 위해 다시 중턱으로 내려와 화장실에서 환복을 했다. 짐을 가까운 벤치에 올려두고 물에 들어갔다. 생각보다 물이 엄청 차가워서 놀랐지만 점점 적응이 됐다. 발이 아플까 봐 양말을 신고 들어갔지만 바닥에 모난 바위와 돌 때문에 지압같았다. 아쿠아슈즈를 준비해서 신으면 좋았을 텐데 그래도 양말이라도 신어 다행이었다.



  물을 무서워해서 차마 몸을 담그진 못하고 발만 쏙 내놓고 있던 감자씨도 별안간 용기를 내 준비한 암튜브를 끼고 들어왔다. 그러기를 잠시, 뭍으로 다시 올라가 버렸다. 외국인들도 하나둘 물에서 나와 혼자 계곡을 독차지한 나는 전용 수영장을 가지게 되었다. 석회질 물은 미끌미끌했고 물속은 뿌옇게 흐려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 계곡물에 드러누워 평화롭게 둥둥 떠다녔다. 양쪽 귀를 담그고 멍멍한 채 눈코입만 내놓고 누워서 바라보는 하늘과 폭포의 모습은 꿈결 같았다.



   유유자적했던 물놀이를 끝내고 마땅히 샤워할 곳이 없어 물에서 나와 준비한 수건으로 물기만 닦고 화장실에서 다시 환복을 하고 내려갔다. 점심도 안 먹고 물놀이를 했더니 너무 허기가 져서 매표소 근처 매점 같은 카페에서 새우맛 컵라면과 라오비어로 요기를 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출발 시간이 됐지만 아직 밴 운전자가 오지 않아서 한국인 아저씨가 동승한 외국인들의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모습을 구경하며 기다렸다. 서로 이름도 국적도 모르지만 익살스럽게 그려진 자신의 얼굴 그림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감자씨도 나도 덩달아 즐거워져 함께 깔깔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는 밴에서는 기절하듯 까무룩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 간에 다시 올드타운에 내린 우리는 기력이 없어 근처 맛집을 검색해서 이동했다. 앗사린이라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감자씨는 족발덮밥, 나는 까오로 시작하는 이름의 국수를 먹었다. 국물이 진득하고 면발은 칼국수 같았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와 석회물을 잔뜩 머금은 수영복을 물에 담가놨다가 코인세제로 세탁해서 남아있는 기력을 모두 모아 탈탈 턴 후 테라스에 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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