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baidee!
이른 새벽에 눈이 떠졌다. 다시 감기려고 무겁게 내려오는 눈을 껌뻑껌뻑 거리고 있다가 몸을 웅크리며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모자란 잠을 더 청할까 했는데 이미 달아난 잠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동이 틀 무렵 모자만 푹 눌러쓰고 객실을 빠져나왔다. 숙소 앞 뜰을 거닐며 풀과 나무가 뿜어내는 산뜻한 초록의 아침 공기를 마시고, 벤치에 앉아 잔잔한 수면의 남칸강을 바라보며 물멍을 때렸다. 그것도 지겨워져 숙소에서 나와 동네를 산책하며 눈을 끌어당기는 피사체가 있으면 셔터를 눌러 필름에 남겼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니 어느새 조식시간이 돼서 감자씨를 깨워 조식을 먹으러 갔다. 즉석으로 조리해 주는 오믈렛과 스크램블 그리고 커피를 주문하고, 빵과 과일들을 담아왔다. 어제는 생소한 음식들도 있고 맛이 어떨지 몰라 조금씩 담아 한 접시씩 맛을 보며 가져다 먹었지만, 이제 어느 정도 파악이 돼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한 번에 담아와 풍성하게 차려놓고 먹었다. 빛이 많이 없는 곳에서 찍어 필름 카메라가 음식의 색감을 잘 못 잡아 맛없어 보이는 음식모형, 지옥에서 온 커피...처럼 나와서 색을 잘 잡아내 맛깔스럽게 나온 핸드폰 사진과 함께 놓아보았다.
9시에 숙소밴을 타고 올드타운으로 나왔다. 오후에는 꽝시 폭포를 갈 예정이라 밴을 신청하는 곳을 찾으려고 했는데, 우체국 앞에 내리자마자 호객하는 아저씨가 우리를 붙잡았다. 우연히도 꽝시로 가는 조인밴이어서 가격을 흥정하고 출발시간을 11시로 약속했다. 꽝시로 가는 길이 험하다고 들어서 멀미약을 사러 약국으로 갔다. 입구에 고고하게 앉아있는 청초한 치즈냥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이 감자씨가 손짓발짓으로 멀미약과 소화제를 샀다.
밴 시간이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아서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근처에 있는 전통예술과 민속학센터(TAEC: Traditional Arts and Ethnology Centre)에 갔다. 이곳도 가방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가방을 맡겼다. 특이한 점은 매표를 할 때 국적을 물어보고, 한국어로 적힌 해설서 파일을 준다는 것이다. 해석도 어색하고 순서가 맞진 않았지만, 라오스어와 영어만으로 관람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수월하게 전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다른 국가의 관람객을 위한 여러 버전의 파일이 있을 것 같았다. 그 파일도 아마 번역기를 돌린 엉성한 번역체이리라. 엉성하고 허술하지만 조금이라도 라오스의 소수민족을 잘 소개해 보이고 싶고, 이용객을 배려하는 섬세한 마음이 느껴졌다.
라오스는 인구의 50%를 차지하는 라오족을 비롯하여 47개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그중 소수의 비율을 차지하는 소수민족의 기술을 보존하고 개발하여 소수민족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설 박물관이다. 첫 전시실에서는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전시하고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가본 아카아마 카페에서 들어본 아카족, 수공예로 유명한 몽족, 라오스에 가장 처음 정착한 민족이자 라오스에서 가장 큰 소수민족 크무족, 직조 기술이 뛰어난 타이-루족 등 소수민족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들의 의복을 전시되어 있었다.
안쪽 전시실에는 전통공예를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패션이 나열되어 있었다. 몇 가지 옷은 지금 한국 옷가게에 걸려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듯했고,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을 한 적 있는 자수 블라우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수공예, 직조 등 손재주가 뛰어난 민족답게 자수가 돋보였고, 색색의 천연색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소박한 화려함이 눈을 사로잡았다.
아직 시간이 남아 더위를 피해 인근 카페로 향했다. 인디고 카페에서 망고주스와 수박주스를 시켰다. 생각지도 못한 컷팅 과일도 함께 예쁘게 플레이팅 해서 나와 기분 좋게 먹었다. 시원한 주스로 더위를 식히고 나오니 근처 학교에서 땡볕이 내려쬐는 데도 아이들이 농구를 하고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예뻐 보여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어느새 약속한 11시가 다가와서 탑승장소인 우체국 앞으로 천천히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