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 캄 왕궁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된 왕궁으로 지금은 루앙프라방 국립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11시 반부터 1시 반까지는 박물관 점심시간이라 입구가 닫혀있어서 인근 거리를 배회하다가 1시 반이 돼서 입장했다. 입구에 들어서 입장권을 사고 나니 부지는 매우 넓고 건물은 둥그렇게 포진되어 있었다. 아무런 안내나 영어 표지판도 없어 입구에 서서 정면에 바라 보이는 박물관 건물로 곧장 갔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고 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고 하니 검표 직원이 불퉁하게 가방과 핸드폰은 가져갈 수 없다고 말했다. 가방을 어디에 두면 되냐고 물으니 떨렁 저 멀리 있는 곳을 가리키고는 이제 막 신발을 벗고 들어온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서양인 입장객에게 눈을 돌려버렸다.
부지가 넓어 건물을 이동하려면 뙤약볕을 한참 걸어야 해서 못마땅했다. 더군다나 사물함은 입구 근처에 있다. 입구에서 가방을 멘 관람객에게 사물함을 안내하고 사물함에서 박물관으로 동선을 안내해야 되는 거 아닌가? 무거운 가방을 메고 낑낑거리며 신발을 벗고 있는 걸 뻔히 보고도 왜 검표하는 데 이르러서야 얘기를 하는 거지? 내 안의 한국인의 빨리빨리와 효율충(충실할 충) 본능이 화가 되어 불쑥 올라왔다. '그래 여긴 벼가 익어가는 소리를 듣는 사바이한 라오스잖아'라고 마음을 다잡고 땡볕을 부지런히 걸어 입구 옆 동상이 세워진 건물로 갔다. 사물함 사용비를 지불하니 락커 직원이 친절하게 입장표는 꼭 챙겨가져가야 한다고 설명해 줘서 하마터면 잊을 뻔한 입장표를 가방에서 꺼내서 옷 주머니에 따로 챙겼다. 사물함에 가방과 짐들을 넣고 다시 이글거리는 해를 받으며 뜰을 가로질러 박물관 건물로 향했다.
효율충(충실할 충)이 정리하는 루앙프라방 국립박물관의 효율적인 관람법은 이러하다. 첫째,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한다. 둘째, 입장하여 동상 뒤 건물 사물함에 짐을 보관한다. 여권지갑과 핸드폰은 물어보니 소지는 가능하나 촬영 및 도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관람 시 조심한다, 단, 입장권은 꼭 챙긴다. 안 챙기거나 다른 입장권과 헷갈려 잘못 가져가면 땡볕을 다시 걸어가 챙겨 와야 한다. 셋째, 뜰을 지나 박물관으로 간다. 넷째, 박물관 뒤로 화장실이 있기 때문에 박물관 관람 전후로 화장실을 이용한다. 다섯째, 호 파방 사원을 둘러본다. 여섯째, 시간이 남으면 뜰에서 시간을 보내다 사물함으로 돌아와 짐을 찾는다. 참고로 우리는 왕실극장은 가지 않았기 때문에 왕실극장은 뺀 동선이다.
땀이 쏟아져 얼른 검표를 받고 시원한 내부로 입장하려고 했는데 앞에서 줄이 줄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아까 그 불퉁한 직원이 어떤 외국인과 다투고 있었다. 점점 언성이 높아져 내 귀까지 이야기가 전해졌는데 사건의 정황은 이러하다. 박물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고, 입구에서는 그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 관람객은 핸드폰을 손에 들고 관람을 했고, 나오는 길에 직원이 핸드폰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직원이 핸드폰을 가져가 앨범을 살펴봤지만 결국 내부에서 촬영한 사진은 없었다. 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이나 사과가 없어 이에 격분한 관람객이 사진도 찍지 않았는데 왜 함부로 남의 핸드폰 앨범을 넘겨 보냐고 항의하며 시비가 붙은 것이다. 직원은 관람객에게 사과하거나 해명하여 진정시킬 기미가 없었고, 화가 난 관람객을 세워놓고 뒤에서 기다리는 우리를 먼저 입장시켰다. 우리가 내부관람을 하는 동안에도 그 언쟁은 도돌이표처럼 한동안 이어졌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라오스인은 순박하고 친절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라오스인이 친절하거나 선한 건 아니었다. 당황스러울 만큼 관광객에게 너그럽지 않을 때도 있었다. 여러 정보를 통해 쌓은 이미지에 따라 라오스 사람은 선할 거라 생각한 것은 나의 확증편향이었다. 그렇다고 불친절한 라오스인 몇 명 때문에 라오스인은 불친절하다 생각해 버리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이다. 비단 라오스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고, 친절하지 않은 사람 또한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내부 촬영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눈으로만 꾹꾹 담아 전시를 관람했다. 왕실에서 사용하던 물품과 유물, 국왕 집무실과 침실, 다른 국가의 외교선물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물을 떠마시는 컵마저 현란하게 장식되어 있는 점과 얼굴모양을 한 곰방대가 인상적이었다. 코끼리의 나라답게 왕의 침대 하단에는 마치 침대를 받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커다란 코끼리 조각도 있었다. 맨발로 한참을 타박타박 나무바닥을 걸어 다니다 보니 어느새 발꿈치가 욱신거렸다. 박물관을 갈 때는 두툼한 양말을 신고가길 추천한다.
어느새 조용해진 박물관 건물에서 나와 사물함 건물 맞은편에 있는 호 파방 사원으로 갔다. 왕실사원답게 황금으로 화려하게 뒤덮였고, 계단 난간의 손잡이는 무려 거대한 황금용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이곳도 사진촬영은 할 수 없어 이번에도 눈으로 담고 내려왔다. 사물함으로 돌아가는 길에 중앙 뜰이 햇살을 받은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걸음을 멈춰 잠시 벤치에서 나무들을 바라보며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돌아다니며 날아다니고, 햇볕을 잔뜩 받은 나뭇잎은 엽록소 하나하나를 다 내보일 정도로 아찔하게 초록초록했다. 피크닉을 나와 쉬고 있는 가족들은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고, 짧은 하의를 가리기 위해 둘러싼 서양 관광객이 엉성한 천 치마가 바람에 나부꼈다. 시간이 멈춘 듯이 눈에 보이는 장면, 장면이 한 장의 스냅컷처럼 느껴지는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근처의 조마베이커리로 갔다. 코코넛케이크, 치즈케이크, 아아와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치즈케이크는 맛이 괜찮았지만 시트가 너무 달고 두꺼웠고, 코코넛케이크는 빵도 부드럽고 코코넛 과육이 씹혀 맛있었다. 아아는 독할 만큼이나 진했고, 레모네이드는 매우 셨다. 잊지 마시라, 조마베이커리는 코코넛케이크이다.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사약 같은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치앙마이 여행기를 드디어 마무리 지었다. 현재 상황을 녹여내 수미상관으로!
마지막 글을 발행까지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푸시산을 올랐다. 산이라는 명칭 때문에 생수도 두 개 사서 가방에 넣고 마음을 굳게 먹고 출발했는데, 300여 개의 계단을 헐떡이며 오르니 생각보다 금방 정상에 도착했다. 동네 뒷산, 제주도 오름 정도의 난이도였다. 그래도 산은 산인지라 정상에 오르니 루앙프라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우리가 건넜던 올드브릿지도, 가지런히 뻗은 도로변에 있는 우리 숙소 어디쯤도, 그리고 남캉 건너에 옹기종기 지붕들이 모여있는 올드타운, 선셋 투어 유람선이 유유히 흘러가는 메콩강까지. 사방으로 펼쳐진 뷰를 눈과 카메라에 담고, 해가 넘어가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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