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sía: 세비야 대성당&히랄다 탑, 황금의 탑&과달키비르 강
스페인어 travesía는 '항해'를 뜻하는 단어로 라틴어 transversus(가로놓인)에서 유래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가로놓인'이라는 의미였으나, 점차 '가로질러 감', 곧 장애물을 넘어 건너가는 과정을 내포하는 '항해, 여정'이라는 뜻으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인생의 여정'처럼 삶을 은유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신대륙을 향했던 대항해 시대의 travesía처럼 거창한 여정이 있는가 하면, 누구의 삶 속에도 저마다의 여정이 깃들어 있다. 때로는 파도로 굴곡지고, 폭풍우에 속절없이 흔들리기도 하지만, 순풍에 돛 단 듯 미끄러져 나아가는 순간도 있다. 해풍과 해류에 의해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접어들기도 하고, 그렇게 닿은 곳에서 새로운 모험을 이어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인생을 닮아 있다. 여행 역시 하나의 항해이다.
조금 더 비약하자면, 글쓰기와 독서 또한 항해라 할 수 있다. 실제의 항해나 인생의 여정과는 달리 마음과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항해이지만, 출항지에서 시작해 생각을 가로지르고 텍스트를 헤쳐 나가 도착지에 다다르는 과정은 항해와 닮아 있다.
결국 travesía는 어디론가 건너가는 길, 곧 과정, 여정을 가리킨다. 항해를 뜻하는 또 다른 스페인어 navegación은 '건너가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항해를 말할 때 navegación이 더 일반적이지만, 내가 인생이나 여행 같은 항해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여정 그 자체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travesía를 택하고자 한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인 세비야 대성당은 크기만 큰 게 아니라 정말 화려했다. 지나칠 정도로. 번쩍번쩍한 황금세공으로 뒤덮인 내부는 아름다운 것은 사실이지만, 화려함이 짙어질수록 묘하게 위압감이 들더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 왔다. 이곳이 종교시설 본연의 기능보다 마치 부와 권력을 과시하려는 기념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세비야 대성당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대항해 시대의 주역 콜럼버스의 묘가 안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세비야 과달키비르 강에서 출항한 마젤란과 달리 콜럼버스는 세비야에서 출항을 하거나 활동을 한 것도 아니고 콜럼버스 사후 그의 아들이 세비야에 정착한 것 외에는 사실상 콜럼버스 개인과 세비야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콜럼버스는 사후에도 탐험가답게 수많은 여정을 이어갔다는 점이다. 스페인 북부에서 사망한 콜럼버스는 스페인의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가 "신대륙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남미 산토도밍고(오늘날 도미니카 공화국)로 옮겨졌다. 산토도밍고가 프랑스 식민지가 되자 쿠바 아바나로 옮겨졌다가,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쿠바를 잃으면서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 오늘날까지 안치된 것이다. 그는 신대륙을 식민지로 복속시킨 제국주의 침략자였지만, 사후에 또 다른 제국주의에 떠밀려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다. 결국 한 줌 재가 되어 전전한 끝에 세비야에 도착했으니, 그의 여정은 생전과 다르지 않게 아이러니했다.
세비야는 과달키비르 강에서 출항한 마젤란에게는 여정의 시작, 세비야 대성당에 안치된 콜럼버스에게는 여정의 종착이었던 것이다. 같진 않지만 닮아 있는 이 두 항해자는 세계일주 항로 개척, 신대륙 발견 같은 반박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과 함께 침략, 폭력이라는 이면의 모습처럼 명확한 명과 암이 공존한다. 화려한 세비야 대성당을 거닐며 비록 그들의 navegación(항해술)은 위대했을지 몰라도 그들의 travesía(여정)에는 회의적인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비야 대성당의 부속건물로 시내 전망이 한눈에 보이기로 유명한 히랄다 탑으로 갔다. 아주 옛날 아랍인들은 말을 타고 올랐다는 계단 없는 비탈길을 굽이굽이 34번을 돌아 전망대에 오르니 세비야 시내 전경이 펼쳐졌다. 탑을 오르느라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시원한 바람이 식혀주었다.
대성당을 나와 발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마젤란이 출항했다고 알려진 과달키비르 강이 보였다. 강변에는 우뚝 솟은 탑이 보였다. 알고 보니 강을 지키는 요새였던 탑을 대항해 시대에 신대륙에서 들어오는 황금을 보관한 것에 비롯하여 '황금의 탑'이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세비야의 곳곳에 대항해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과달키비르 강에서 만난 또 다른 항해들도 있었다.
한낮의 햇빛을 잔뜩 머금었다 반짝이는 윤슬로 뱉어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데 수면 위를 건너는 배가 보였다. 조정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한 보트에 한 명이 타고 유유히 흘러가기도 하고, 한 보트에 여러 명이 탔지만 한 몸처럼 손발을 맞춰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지나가기도 했다. 대항해처럼 인생은 거대한 travesía이지만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개인의 travesía, 그리고 여럿이 함께하는 travesía가 펼쳐지고 있다.
과달키비르 강에는 유난히 내면의 travesía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황금의 탑 아래 계단에 걸터앉아 책을 보는 노신사의 모습이 그랬다. 그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여 나도 노신사 옆에 자리 잡고 챙겨 온 책을 잠시 읽어보았다. 둘러본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내적 항해들이 보였다. 강둑에 혼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사람까지. 다시 세비야를 찾는다면 소소한 travesía, 그리고 내적 travesía에만 초점을 맞추리라 생각하며 세비야 여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나에게 세비야는 끝없는 travesía의 항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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