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 리스본행 야간버스

Viagem : 여행의 기쁨과 슬픔

by viajera 비아헤라

『눈먼 자들의 도시』로 유명한 주제 사라마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갈의 소설가이다. 사라마구 하면 도시 시리즈 소설이 먼저 떠오르지만, 의외로 여행기도 집필했다고 한다. 그가 국내(포르투갈)를 여행하고 쓴 『Viagem a Portugal(포르투갈 여행)』은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여행자의 시선에서 포르투갈을 인문철학적으로 읽어낸 사색에세이라 칭할 수 있다.


『Viagem a Portugal』에서 viagem은 여행을 뜻하는 포르투갈어로, 라틴어 "viaticum"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길'을 뜻하는 via와 '관련된 것'을 뜻하는 ticum이 합쳐져 "길에 필요한 것"이라는 뜻이었으나, 점차 "길을 떠나는 행위"의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사라마구는 이 책에서 Viagem이라는 단어를 흔히 알고 있는 단순한 '여행'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Viagem을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의식의 확장, 즉 내면적 개념으로 사용한 것이다. 아래 몇 가지 『Viagem a Portugal』 인용문들이 그가 여행을 '성찰'을 키워드로 하는 사유의 흐름으로 인식한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모든 여행은 결국 안으로 향한다."


"이 여행은 내가 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여행자는 어디를 가든, 자신을 데리고 다닌다. 그러니 그가 찾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돌아온 사람은 결코 예전의 그가 아니다."




자정의 세비야에서 리스본행 야간버스에 올라탔다. 포르투갈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책이자 동명의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는 버스가 아니라 열차였지만, 소설 속 그레고리우스처럼 포르투갈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일었다. 버스가 출발한 후 이내 불이 꺼지고 하나둘 잠이 들었지만, 나는 한동안 이미 어둠이 내린 차창 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새벽버스는 곡예하듯 빠르게 달렸고, 간혹 지면의 울퉁불퉁함이 바퀴를 타고 의자 위로 올라와 좌석 위에 누윈 내 몸을 뒤흔드는 통에 새벽동안 선잠을 이뤘다 깨기를 반복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경주하듯 내달린 버스는 우리를 예상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리스본에 데려다 놓았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지하철역도 닫혀있었다. 우리 둘과 캐리어 두 개만 덩그러니 놓인 채로 6시 반이 되길 기다렸다. 역에서 교통카드를 사고 숙소로 이동했다.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라 얼리체크인이 되지 않아 짐만 맡기고 근처 카페에서 아침으로 토스트와 오렌지 주스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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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에서 가장 유명한 28번 트램의 출발지인 마르팅 모니즈로 가서 귀여운 노란 트램을 타니 정말 포르투갈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내려 부둣가로 가니 테주강이 아침 햇살을 듬뿍 받아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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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렝지구로 이동해서 나타(에그타르트)가 유래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둘러보고,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전해진 비법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파스텔 데 나타에서 줄을 서서 나타를 샀다. 내부에 자리가 없어서 테이크아웃을 해서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카페에서 가져온 음식을 먹어도 될까 싶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주위 모두가 스타벅스 음료와 나타를 먹고 있었다. 야외 테라스 자리에서 테주강을 바라보며 커피와 함께 나타를 맛봤다. 노른자가 가득한 필링은 꾸덕했고, 패스트리는 예상보다 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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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가 관광객들로 점점 붐비기 시작해서 우리는 남은 커피를 들고 근처 공원으로 가서 벤치에 앉았다. 잠이 부족해서 몽롱했는데 아침햇살을 머금고 초록초록 빛나는 풀빛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절로 맑아졌다. 산책하는 시민과 강아지들을 뜻 없이 한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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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를 하러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송아지 스테이크와 크로켓, 그리고 와인을 주문했다. 직원들이 주문을 받을 때부터 식사를 하는 내내 웃으며 자기들끼리 쑥덕거렸다. 어떤 말이 오갔는지 포르투갈어를 모르는 우리는 알 수가 없지만, 말을 몰라도 느껴지는 뉘앙스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쩐지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은 것 같아 내내 불쾌하게 식사를 하다가 점점 커지는 말소리에 화가 난 상태로 가게를 나왔다. 축 처진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가 체크인을 하자마자 침대에 뛰어들어 부족했던 수면시간을 채웠다. 달디 단 낮잠을 자고 에너지를 회복한 우리는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숙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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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고, 또 트램을 타고 언덕 위로 올라가 리스본 대성당을 봤다. 스페인을 먼저 다녀온 터라 리스본 대성당은 소박하고 제법 밋밋하게 느껴질 만큼 단정했다. 언덕을 오르느라 출출해진 우리는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우연히 들린 곳이지만 알고 보니 현지인 맛집이었다. 문어샐러드와 해물밥, 그리고 포르투갈의 로컬맥주인 슈퍼복을 주문했다. 해물이 정말 신선하고 간도 짜긴 하지만 맛있게 짭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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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메뉴가 하나둘 나올 때쯤 배가 불룩 나온 서양인 아저씨와 멋진 스타일의 여성이 함께 들어왔다. 웨이터가 우리 옆자리로 자리를 안내해 줘서 아저씨는 우리가 마치 아는 사이인 것처럼 활달하게 인사를 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 유쾌함에 우리도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잠시 후 슈퍼복을 잔에 따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오른팔을 톡톡 치며 나를 불렀다. 옆을 보니 아까 우리에게 인사를 했던 아저씨가 내가 먹고 있는 슈퍼복을 가리키며 맛있냐고 물어왔다. 훅 들어온 사교성 멘트에 파워 I인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맛있다고 얘기해 주고 식사를 이어갔다. 옆 테이블도 음식이 나와서 각자 식사를 이어가고 있는데 별안간 옆에서 또 톡톡 쳤다. 그러더니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냅다 내 손에 빈 잔을 쥐어주고는 보틀로 시킨 샹그리아를 부어주는 것이다. 마치 '우리 이거 많이 시켰는데 이거 너무 맛있어. 맥주만 먹지 말고 이것도 잡솨봐!'라는 듯이. 아찔한 사교성에 웃음이 터진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땡큐라고 인사를 하고, 얼마 있지도 않은 E력을 끌어올려 치얼스! 를 외치며 함께 건배를 했다.


얼결에 건네받은 한 잔의 샹그리아는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제격이었고, 유쾌한 아저씨와의 만남은 불쾌했던 우리의 마음을 상큼한 샹그리아처럼 바로 잡아주었다. 유리잔 안에서 찰랑이는 붉은 샹그리아 빛깔을 바라보다 오늘 여행으로 생각이 번졌다. 유쾌하지 않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여행의 일부이고, 그런 순간은 우리가 원치 않을지라도 우리의 삶 속에 언제든지 함부로 끼어들 수 있다. 뜻하지 않게 불쾌한 순간이 찾아오면 '오늘 기분 망쳤네.', '오늘 여행 망했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여행에서 '슬픔'이 있었다고 해서 그날 하루가, 그리고 여행 전체가 망한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예고 없이 닥치는 힘든 순간이 있다 하여 우리 인생 전체가 엉망이 되는 것은 아니듯이. 리스본의 몇몇 사람이 불친절했다고 해서 리스본이라는 도시를 나쁘게 볼일도 아니다. 그 속에서는 별안간 불쑥 끼어들어 '기쁨'을 건네주는 사람 좋은 만큼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도 있으니.




낯선 언어, 불친절한 태도, 예기치 않은 건배


슬픔과 기쁨이 같은 날에 공존하듯이, 여행에도 늘 진폭이 있다.


문학적인 순간들이 우리를 계속 길 위에 서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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