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ende : 다시, 스페인
포르투갈의 파두가 saudade(사우다드)를 담고 있다면 스페인의 플라멩코에는 duende(두엔다)가 있다. duende의 어원은 dueño de casa, 집의 주인에서 왔다. 집에 산다고 믿어졌던, 보이지 않는 존재. 점차 축약되어 duende가 되었고, 언젠가부터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발생되는 설명할 수 없는 힘'이라는 예술의 개념으로 확장됐다.
duende를 예술 언어로 적용시킨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는 두엔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El duende no está en la garganta; sube desde la planta de los pies.
두엔다란 목소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발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다.
El duende ama el borde del pozo.
두엔다는 심연의 가장자리를 사랑한다.
스페인 출신 천재 화가 피카소(Pablo Picasso)는 더 단호하게 말했다.
Todo arte es un combate con el duende.
모든 예술은 두엔다와의 싸움이다.
포르투를 떠나 마드리드로 돌아왔다. 스페인에 다시 왔으니 점심으로 빠에야를 먹고, 추적추적 비가 오는 거리를 걸어 솔 광장(Puerta del Sol)으로 향했다. 솔 광장은 마드리드의 중심이자 스페인의 주요 도시로 통하는 국도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9개의 국도가 시작되는 킬로미터 제로 표시는 정문 앞 바닥에 새겨져 있는데, 밟으면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다. 언젠가 다시 여기에 서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빗물로 얼룩진 0km 마크 위에 발을 올려 꾸욱 눌러보았다. 겹겹이 쌓인 눈에 보이지 않는 발자국들 틈새로 내 발자국을 새기기라도 할 것처럼.
100년이 넘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스페인식 추로스의 원조 초코라테리아 산 히네스(Chocolatería San Ginés)로 갔다. 따뜻하고 걸쭉한 초코라떼에 바삭한 추로스를 찍어 먹으니 궂은 날씨에 언 몸이 녹는 것 같았다. 이베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이니 zumo de naranja(오렌지 주스)는 꼭 먹어야 할 것 같아 메르카도나 마트에서 착즙주스를 샀다. 숙소로 돌아와 상큼한 오렌지 주스를 마시니 싱그러운 오렌지 가로수가 가득하던 세비야의 거리가 떠올랐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몬세라트, 그라나다, 세비야.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스페인의 도시 중 스페인을 가장 잘 표현하는 도시가 어디일까 돌이켜보자면 그건 바로 세비야였다. 그 이유를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 때는 명확히 표현할 수 없었지만,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니 사실 선명하게.
여행이 끝난 뒤 여행의 언어를 써내려 가기 위해 이베리아에서의 나날들을 사진과 글, 지도, 그리고 기억을 재료 삼아 여러 번 복기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다 여행의 중반쯤으로 회귀하여 세비야의 스페인광장 한가운데 서있었다. 플라멩코 공연을 구경하던 중 불현듯 숨을 잠시 멈추게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댄서가 온몸의 체중을 버티듯 찍어내리는 발끝, 쥐어짜듯 나오는 폭발적인 움직임. 그 당시에는 적막이 흐르거나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이 어색하기만 했다. 플라멩코가 마냥 정열적인 기교의 춤인지 알았으니. 하지만 이제 알고 있다. 그 순간 두엔다가 왔다는 것을. 세비야에는 두엔다가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에 세비야가 가장 스페인스럽다고 느꼈던 것이다.
플라멩코 가수들은 두엔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El duende no se aprende, se sufre.
두엔다는 배워지는 게 아니라, 겪어내는 것이다.
Cuando canto con duende, no canto: lloro.
두엔다와 함께 노래할 때, 나는 노래하지 않는다. 나는 운다.
두엔다가 폭발이라면, 사우다드는 길게 남는 여운이다. 두엔다가 영혼이 불 타오르는 순간이라면, 사우다드는 영원히 식지 않는 타고 남은 따뜻한 재다. 내가 느낀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그랬다. 스페인이 타오르는 불꽃이라면, 포르투갈은 홀로 남아 파도를 묵묵히 견디며 선 등대 같았다. 스페인은 불꽃같은 춤으로 나를 흔들었고, 포르투갈은 침묵의 노래로 나를 붙잡았다.
스페인은 나에게 불처럼 다가와 내 영혼을 움직였고, 포르투갈은 바다처럼 잔잔히 밀려와 나를 잠기게 했다. 이유 모를 뜨거움과, 묘한 씁쓸함은 두엔다와 사우다드가 내 안에 잠시 스며들었다는 증거였던 것이다. 불과 물이 만들어내는 이베이라의 온도.
그걸 깨닫는 순간, 여행은 끝났지만 이베리아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은 비로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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