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 그린 듯이 아름다운 그리움의 도시

Saudade : 포르투에서 배우는 그리움의 언어

by viajera 비아헤라

우리나라가 한(恨)의 정서가 있듯,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정서는 Saudade(사우다드)이다. 한(恨)이 억눌려 풀리지 않은 마음이라면, Saudade는 이미 사라진 사랑했던 대상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가깝다. Saudade는 라틴어 solitas(고독, 혼자 있음)에서 유래된 말로 포르투갈어로 넘어오면서 그리운 대상이 사라진 뒤의 고독으로 뜻이 변화하였다. 포르투갈의 민속음악 fado(파두)를 설명할 때 흔히 이렇게 말하곤 한다. "O fado fala da vida, do amor e da saudade." 파두는 인생, 사랑, 그리움을 노래한다. 파두의 saudade처럼 나는 포르투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그리운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포르투에서의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를 했던 일정이었던 렐루서점으로 갔다. 오픈런을 해서 포토존인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하기 위해 9시에 예약을 해놨었지만, 이삼십 분 늦는 바람에 줄을 서서 9시 타임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서점 내부로 들어가니 해리포터의 움직이는 계단에 모티브가 된 화려한 계단이 바로 펼쳐졌다. 기념사진을 남기고 인파를 헤치며 서가 곳곳을 둘러보았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들을 한 섹션에 모아두고 전시하고 있었고, 역시나 해리포터 시리즈가 많이 있었다. 각국의 해리포터 책이 있었지만 역시나 한국어 판본은 없었다. 스페인어 판본을 꺼내보았지만 아직 초보 수준인 나에겐 아직 어려웠다. 역시 해리포터는 영어로 쓰였으니 영국판 원서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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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있는 카페에 가서 포르투갈식 샌드위치인 프란세자나와 오믈렛을 늦은 아침으로 먹고 롤링여사가 해리포터 시리즈 집필 초반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썼다고 알려진 마제스틱 카페로 갔다. 마제스틱 카페는 무려 100년이 넘은 고풍스러운 카페로, 커피를 주문하고 우아한 내부를 둘러보고 있자니 마치 과거로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 것만 같았다.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100년 전 어느 날 속으로 들어가 포르투의 예술인들과 커피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다가, 시곗바늘을 힘껏 돌려 롤링여사가 집필하던 날들로 가 그녀의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니 어느새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실제로 있어본 적 없는 시대에 대한 그리움도 saudade라고 할 수 있다면, 포르투는 그런 감정을 품게 하는 도시였다. 김이 폴폴 올라오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오늘 산 해리포터 원서도 읽고 롤링여사의 기운을 받으려고 노트를 꺼내 괜히 글도 끄적여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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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가 푸른빛의 아줄레주로 뒤덮인 산투 일데폰소 성당을 지나 상 벤투역으로 갔다. 피파클럽 월드컵에 관한 촬영을 하고 있어 내부는 인파로 붐볐다. 촬영이 끝나고 한산해진 역사를 둘러보았다. 거대하지만 섬세한 아줄레주 벽화로 수놓아진 중앙 홀을 바라보니 가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이라고 불릴만하다 싶었다. 색색의 타일로 뒤덮인 거리를 걷다 보니 전시된 상품의 일러스트가 예쁜 기념품샵이 있어 끌리듯 안으로 들었다. 친절한 직원이 설명해 주기로 이 가게의 모든 상품은 포르투갈의 예술인이 디자인한 것이고, 판매 금액은 그들을 후원하는 데 사용된다고 했다. 양말, 퍼즐, 티코스터, 파우치 등 정말 다양한 제품이 있었다. 엽서와 티코스터, 그리고 마그넷을 골랐다. 오늘이 포르투에서의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포르투의 풍경이 그려진 일러스트를 바라보니 벌써 그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본 풍경이 그려져 있고 더군다나 포르투갈 화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 기념으로 간직하기에 더 의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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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가에서 걸어 내려오니 인파트 동 엔히크 광장이 나왔다. 어제 내린 비 때문에 물기를 가득 머금고 반들반들 초록을 내뿜는 잔디 위에 피크닉매트를 깔고 앉아 잠시 여유를 즐겼다. 알록달록한 건물들 사이로 히베이라 거리와 도루강이 보였다.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 지나가는 여행객, 조깅하는 시민, 갈매기까지... 모든 풍경이 마냥 아름다워 보였다. 놓칠 세라 잊힐 세라 끝까지 눈길을 주어 눈에 더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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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추적추적 비가 오더니 오늘은 햇볕이 너무 뜨거워 매트를 접고 골목 아래 강변으로 내려갔다. 히베이라 거리를 걸어 올라가니 동 루이스 1세 다리가 나왔다. 인도를 걸어 강을 건너서 빌라 노바 데 가이아 지구로 갔다. 포루투의 유명한 통조림을 파는 판타스틱 상점으로 들어가니 내부가 테마파크처럼 화려했다. 한국말이 유창한 직원이 있어 한국어로 한국과 포르투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태어난 연도와, 지금 2025년이 그려진 통조림을 기념으로 하나씩 골랐다. 근처에 있는 푸드코트에 들어가 슈퍼복 생맥주를 한잔씩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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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갔었지만 맑은 전망을 보고 싶어 다시 모루정원으로 갔다. 정원 앞에 있는 통창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어느새 해가 넘어가며 마지막으로 하늘을 불태울 듯 빛을 뿜어냈다. 황금빛이 보랏빛으로 서서히 번지더니 노을이 사그라들고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졌다. 모루정원에 올라 야경을 바라보며 길거리 버스커들의 버스킹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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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도 점점 차지고 저녁식사도 해야 해서 나가려는 찰나에 입구에서 재밌는 광경이 펼쳐졌다. 입구에서는 이름 모를 아저씨가 EDM 버스킹을 하고 있었는데, 모루정원의 맞은편 수도원 전망대에서 EDM 음악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입구 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 맞은편 전망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인파 선두에 지휘자가 있었다. 둠칫둠칫 신명 나는 EDM 리듬에 맞춰 모자를 쓴 남자가 한 손을 흔들며 춤추면 전망대의 군중도 한 손을 흔들며 춤추고, 동그라미를 그리면 따라 동그라미를 그렸다. 춤사위는 더욱 가열차져 양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좌우로 흔들면 따라서 하트를 만들며 춤추는 것이다. 언제부터,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런 게 중요한가.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웃고 즐기며 마에스트로 뒤에 줄지어 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뒤로 사람이 붙고, 또 모이고 모여 입구 쪽을 가득 채운 대형을 만들었던 것이다. EDM 연주가 끝나자 지휘자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서로를 격려하는 박수를 치고 해산했다. 이 장면들이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춤추는 사람들, 핸드폰을 들어 촬영하는 사람들, 뒤늦게 춤을 따라 춰보는 우리, 그리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 얼굴 위로 피어난 순백의 행복한 미소. 포르투를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만든 영화 같은 순간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끝나는 순간, 나는 벌써 포르투가 그리워졌다.




여행을 다녀온 지 1년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포르투를 앓고 있다. 다른 어떤 도시도 이렇게 그립진 않았다. 포르투의 고즈넉한 풍경, 도시가 주는 차분한 분위기, 고요히 사유했던 걸음들, 물 먹은 잔디의 풀빛, 도루 강의 짙은 물결, 머리를 마구 헝클어놓던 거친 강바람, 기상천외하게 변하는 날씨, 길거리에서 엽서를 그리는 화가, 친절한 사람들, 어딘가 허술한 버스커들, 그리고 극적으로 유쾌한 순간들까지.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서 포르투에서 보고 느꼈던 모든 것이 더욱 소중하고 그립다.


포르투는 보고 있을 때도, 떠난 뒤에도 사무치는 그리움의 감정을 남겼다.


나에게 포루투는 Saudade라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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