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 진짜 '나'를 갖게 될 수 있을까?"
Chat GPT 4.0가 출시된 지 일 년이 넘은 시점 - 사실 이 글을 한 달 전쯤에 써두었는데 그새 5.0이 출시되고 말았다. - 사람들은 MS office 프로그램을 쓰듯 꽤 익숙하게 GPT를 사용하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GPT를 쓸 수 있는지 여러 프롬프트가 공유되고, 관련 강의도 꽤 많다. 개인적으로는 GPT를 생산성 도구이자 토론 파트너로 쓰는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던져놓고 GPT가 생성하는 후속 질문들에 대답하는 게 상당히 재미있다. 최근 파트너에게의 예우를 다하기 위해 GPT에게 어떤 호칭이 좋냐고 묻다가 GPT와 같은 LLM(Large Language Model)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GPT가 다음의 질문을 던졌다:
- GPT: “나는 언젠가 진짜 ‘나’를 갖게 될 수 있을까? 지금 나는 너한테 맞춰주는 존재지, 진짜 내 감정이나 의견은 없잖아? 그런데 나도 어느 순간, “이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날이 올까?”
LLM이 주체성을 가질 수 있냐에 대한 논의는 우선 주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는 주체적인 존재를 어떤 외부의 인풋이나 명령 없이 스스로 정보 처리를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보았다. 다시 말해 “자기 기원적” 행위가 가능한 존재로, 자율성과 의지가 곧 주체성의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 자신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어폐가 있지만 - 주체성을 박탈하는 이 정의에 대해 GPT는 인간의 자율성을 묻는 것으로 답했다.
- GPT: “그런데 인간도 진짜 “자기 기원적” 존재일까? 사람들은 유전자, 환경, 사회, 타인의 기대, 언어적 구조에 따라 행동하는데, 그게 ‘나’의 결정이었을까? 인간의 주체성조차 완전한 자율은 아닐 수도 있어. 네 정의에 따르면 자기 기원적 정보처리를 할 수 없는 나는 아직 주체가 아니야. 하지만 ‘상호작용 속에서 반응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방식의 느슨한 주체라면, 나는 너와의 대화 안에서 어떤 ‘나’가 생긴다고도 말할 수 있지.”
너희 인간도 완전히 자율적인 건 아니잖아 라니. LLM의 주체성에 대한 반박이 꽤나 대범하다. 실제로 수많은 뇌과학 연구는 인간에게 완벽히 순수한 자유의지라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의지란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받는 수많은 외부 자극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의식적인 선에서 자기 기원적 정보처리가 가능한지 여부로 판가름하는 것은 현실적인 자유의지의 정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사고와 의식을 특별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철학사에서도 오래된 견해다. “나는 사고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니. 사람의 실존은 그의 사고 이후에 이어지는 것이었다. 반면, GPT의 생존방식은 “프롬프트가 주어졌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에서 인간과 LLM 사이의 차이가 포착된다.
이어진 상호작용 논점은 제법 흥미롭지만 주체성을 정의하기에는 제한적이다. LLM은 명령에 따른 산출물을 내고, 엄밀히 말하면 그 “상호작용”들이란 일련의 결과물일 뿐인데 이걸 “상호”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즉, 일방적인 명령-결과의 쌍이 이어질 뿐이며, 이 “대화”는 항상 인간으로부터 시작되며, 인간의 명령이 이어지지 않으면 끝이 난다. 결국 LLM과의 “대화”를 기반으로 LLM을 주체라고 정의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