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끝에 낙을 만드는 방법

<F1 더 무비> - 조셉 코신스키

by 비안

* 이 글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장안의 화제 <F1 더 무비>를 보고 왔다. F1이라고는 슈마허밖에 모르지만 브래드 피트가 스포츠카를 운전한다니, 이건 극장에서 안 보면 후회하겠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보고 난 후 주인공 ‘소니’에 빙의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 악셀을 세게 밟고 싶어져 혼이 났다. 지난 몇 달 간 애써 쌓아 올린 자랑스러운 티맵 점수가 좀 전의 운전으로 한 번에 4점이나 깎여 버렸지만, 아깝지 않다.

영화는 예상했던 것처럼 시쳇말로 도파민을 풀충전 시켜주었고, 플롯도 생각했던 대로 흘러갔다. 그럼에도 이렇게 여운에서 못 벗어나는 건, 클리셰도 잘 만들면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잘 서빙한 영화였다.

주인공 소니의 클리셰는 한창의 시기에 세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기대주였다가 한순간의 사고로 모든 커리어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도박과 이혼으로 얼룩진 30년을 보낸 것. 영화는 그의 재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F1으로의 복귀는 첫걸음부터 쉽지 않았다. 꼴찌 팀인 Apex의 오너인 친구 루벤이 구원 요청으로 부른 줄 알았더니 9번째 후보였던 것. 그나마도 낙하산이라며 냉대하는 팀과 새파랗게 어린 파트너 드라이버의 노골적인 반감. 게다가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는 차까지. 이런 분위기는 한동안 계속되지만 그는 그저 묵묵히 그의 할 일을 한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 한 발짝씩 나아가는 것. 아무도 그를 믿지 않는 가운데 그 자신만이 스스로를 믿는다. 아니, 어쩌면 자신을 믿는다기보다 30년 만에 마주한 목표를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집념 하나로 임했는지도 모르겠다.

소니의 무모한 전략은 모두의 불신과 만류에 부딪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밀고 나간다. 그리고 그 일관성은 조금씩 변화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은 그를 믿기 시작한다. 그가 오기 전, 패배감을 감추려고 노력하면서 Apex 팀이 애써 가져 보려던 의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열정이 팀을 채웠고, 사람들은 “어쩌면”을 꿈꾸게 됐다. 어쩌면 1등을 할지도 몰라 하는.

그러나 30년을 내내 소니를 쫓아다닌 불운은 그에게 못 다 받은 빚이라도 있는 것 마냥 발목을 잡았고, 그 “어쩌면”의 기회가 될지도 모를 마지막 대회 직전에 소니는 다시 한번 고꾸라진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희망을 잃은 루벤이 우리는 못한다고 하자 소니는 대답한다. “We can’t, if we don’t try.” 그리고 우승을 거머쥔다.

이런 결말은 영화니까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면 언젠가 보상이 찾아온다는 아름다운 결말. 현실에서는 그 보상이 언제 올 지도, 이 고통은 도대체 언제까지 겪어야 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이 고통에 굴복하고 세상을 원망할지, 아니면 다시 한번 다음 도전을 믿어 볼지.

소니가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건, 뻔하게도 포기하지 않아서다. 포기하지 않는 것의 미덕은 익숙한 이야기지만, 소니의 끈기에는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가 매 순간의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그 극복의 결과들이 다음 기회의 발판이 되었던 것. 막연한 기대감이었던 우승이 현실이 된 건, 고생 끝에 찾아온 보상이 아니라 그가 만든 결실이었다.

개인적으로 삶이란 우상향의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라가는 날도 있고, 떨어지는 날도 있다. 그러나 올라가는 날들을 계속 만들다 보면, 어느 날 뒤돌아 봤을 때 우리는 출발점보다 높이 있을지도 모른다. 설령 비슷한 지점이더라도 괜찮다. 떨어지는 순간들만 내버려 뒀을 때보다는 훨씬 높아져 있을 테니. 그리고 그 오르내린 걸음들이 어느새 계단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다시 떨어져도 나를 더 단단하게 붙들어 주는.

그러니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일단 이겨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또 모른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날 버린다고? 하는 그 순간, 바로 문 앞에 승리가 와 있을 수도. 넘어져도 괜찮다. 일어서면 그만이다. 그렇게 낙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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