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아웨이브 Sep 02. 2020

스코틀랜드 대학생들은 펍에서 어떤 음악을 들을까?

여기는 전통이 살아있는 곳,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를 여행하는 내내 밤이면 밤마다 애정 하는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이 추천하는 라이브 뮤직 펍을 찾아다녔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스코틀랜드의 수도 글래스고(Glasgow)에서 들렸던 음악도 분위기도 일품이었던 한 펍(pub)에서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오늘 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만나는 펍은 어떨까?'

오늘 들린 이 펍은 글래스고 대학교 앞에 있어서 그런지 술과 테이블, 딱 펍의 기본 요소만을 갖춘 스코틀랜드의 여느 펍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더 세련됐다고나 할까? 더 젊은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펍을 보다 세련되고 젊게 만들어준 건 인테리어였다. 특히, 일등공신은 천장. 대충 나무 가지들을 얼기설기 올려둔 사이로 작은 전구 줄을 듬성듬성 올려둔 모양새가 멋스러웠고 호박색을 내뿜는 조명들이 춥고 차가운 스코틀랜드의 겨울밤을 아늑하게 만들어 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추운 겨울과 대비되는 따듯한 호박색 조명



문을 열고 들어서서 카운터를 찾고 기네스 300ml 한 잔을 시켰다.(그렇다, 이곳 스코틀랜드는 맥주의 기본 사이즈인 500ml와 함께 작은 사이즈 맥주도 판매한다. 술은 못하지만 기분을 내고 싶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사이즈란 말인가!

자주 오는 단골처럼 주문한 흑맥주 한 잔을 들고 음악 밴드가 가장 잘 보일 것 같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오늘은 보이밴드구먼(Boyband)!' 대학가 근처라 그런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청년 여섯일곱 명이 펍 가장자리에 원형으로 옹기종기 앉아 있다. '오늘은 사람이 여럿이라, 악기도 다양하네? 신기한 악기들도 보이네?' 오늘 이곳에 모인 악기들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달랐다. 예를 들자면 생긴 건 바이올린인데 서울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거 같은 악기, 피들(fiddle)이 그랬다. 이 피들로 말할 거 같으면, 바이올린과는 꼭 닮은 쌍둥이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숨어 있다. 생김새는 누가 누군지 구별이 안 되는 꼭 닮은 쌍둥이인데 성격으로 말하자면, 한 명은 아빠를 닮고 또 다른 한 명은 엄마를 닮아 성질 자체는 매우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보통 바이올린은 작곡자가 있고 악보가 있는 곡을 연주한다면, 피들은 귀로 듣고 들어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곡들을 주로 연주하기 때문에 정확성보다는 즉흥 연주 쪽에 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이 악기는 태생이 춤 반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흥을 돋우기 위한 빠른 리듬감을 주로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선율을 연주하는 바이올린과는 달리 지속하는 음을 찾을 수 없다. 음들을 재빨리 바꿔가면서 박자를 쪼갠다고 할 수 있다. (피들과 바이올린에 대해 여러 정보들을 찾아보다 재밌는 구절이 있어 공유해본다. 이 구절 하나로 구구절절한 긴 설명을 줄여줄 것 같다.)

해석) 피들과 바이올린의 차이가 뭐야?라는 질문에 나이가 많은 연주자는 이렇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피들과 바이올린의 차이가 뭐냐고? 바이올린에는 맥주를 흘릴 수 없겠지!!"



나무가지와 전구줄을 활용한 인테리아가 돋보이는 곳



오늘 이 밴드에는 여러 명이 모인 만큼 피들을 포함해서 기타도 보이고 플루트처럼 생겼지만 플루트는 아닌 것 같은 관악기와 작은북처럼 생겼지만 작은북처럼 연주하지 않는 타악기들도 보인다. 이 나라의 전통악기 군으로 생각된다. 연주는 스코틀랜드의 민속음악이 그렇듯 발재간을 부리고 싶을 만큼 신난다. '신난다'라는 한 단어로 깔끔하게 표현될 만큼 흥이 난다. 연주를 듣고 있자니 내심 또 물음표들이 올라온다. '전통 음악 전공자들인가? 여기도 한국의 국악과처럼 전공이 있으려나? 아 아니, 전공자들은 아닌가? 음악 동호회인가?' 뭐 아무렴 어떠한가. 전공자들이라면 부럽다. 본인들 연습실처럼 마주 보고 둘러앉아 맥주 한 잔 놓고 연습도 하고 돈도 벌고! 음악 동호회라 해도 부럽다. 공부에 지친 날 주섬주섬 악기 챙겨서 친구들과 음악으로 기분도 내고.



스코틀랜드 수도, 글래스고 대학가의 어느 펍



자, 그런데 오늘 여기 글래스고의 이 펍이 하이라이트였던 가장 큰 이유가 있다.

때는 오늘의 보이 밴드 음악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시간. 연주팀의 쉬는 시간에 예상치 못한 상황이 연출됐다. 밴드 테이블 바로 옆자리에 남자 세명과 함께 앉아있던 금발의 젊은 여자분이 대뜸 반주도 없이 생목으로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왁자지껄 시끄럽던 곳이 한순간 마법처럼 싹- 조용해지더니 이내 공간에 여자의 목소리만이 남겨졌다.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주인공 에리얼이 마녀에게서 빼앗긴 목소리를 다시 찾고 처음 부르는 그 노래, '아아아~ 아아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와 같은 파급력이었다.

분명 예쁜 목소리는 아니었다. 공기 반 소리 반 공명이 있는 목소리였지만 간드러지거나 부드러워서 귀를 사로잡는 소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거칠고 투박했다. 멜로디도 예쁘기만 하지는 않았다. 꾸밈없고 장식 없이 몇 개의 음만 딱딱 짚어 내는 단순한 선율이었다. 따르던 인간문화재 원로 선생님이 늘 하신 말씀이 있다. '예쁘기만 한건 감동이 없어. 예쁘다, 하고 뒤돌아서면 끝이야. 예술은 감동이 있어야 해. 감동이 있으려면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명력은 강약도 있어야 하고 거칠기도 하면서 부드럽기도 해야지!' 이 여자의 이 노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고 제목도 모르는 아무개의 아무 노래지만, 대자연 속에서 오랜 시간 흘러 흘러 내려온 스코틀랜드 사람들 특유의 야성적이면서도 순박함을 담고 있는 그런 소리였고, 그런 민요였다. 지구 저편에서 온 나까지 단번에 감동시켰으니, 이 목소리와 이 노래에 어찌 생명력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는가! 여자의 노래가 끝나고 펍에 있는 모두가 손뼉을 쳤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 여자 진짜 매력 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펍에서 흐르는 음악







매거진의 이전글 9와 3/4 승강장은 잊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