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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웨이브 Oct 15. 2020

그리스 결혼식에 '멋'이 있는 이유

그리스 결혼식에 초대받다 #3

"너희는 도대체 역사를 어떻게 배워? 아니, 그 많은 사건과 사람들을 어떻게 공부해?"

아테네에 있는 아크로 폴리스를 방문했던 날,  그리스 친구 엘리자베스에게 문득 이런 질문을 했었다.


그리스 역사가 곧 문명의 시작인 이 나라.

철학과 사색의 유전자를 엄청 물려받아서 결혼식처럼 중요한 날은 조용히 잔잔하게 종이와 펜을 들고 문장들을 나열하며 글로 인연을 맺는 게 어울리는 거 같은데, 

결혼식에서 만난 그리스 사람들은  정말이지 입이 떡 버러 질만큼 잘도 놀았다.  


그리스 결혼식의 낮 예식은 소크라테스였다면, 밤 파티는 그야말로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스러웠다. 음악과 술과 친구가 있다면, 이 곳에 자유가 있나니.




500여 명의 하객들의 명단과 하객들의 관계를 고려한 테이블 배치, 그리고 답례품까지. 그야말로 어디 하나 신경 안 쓴 부분이 없었다. 화가인 엘리자베스 어머니가 오늘 이 곳, 식장의 풍경이 담긴 그림을 일일이 하나하나 그려 준비하신 그림이 무려 답례품이었으니 말 다했지 말이다.

   



해가 떠 있을 동안은 우리가 예상하는 평범한 결혼식의 절차를 이어 나갔다. 신랑과 신부가 함께 행진을 하고, 축가를 부르고, 그리스 전통 음식으로 구성된 뷔페식 식사를 하고, 와인을 채우고 함께 새 인생을 시작하는 오늘의 신랑 신부를 위하여 '위하여'를 하고.


정말이지 놀랠 노자인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는 해와 달이 바통 터치를 한 이후였다.  

'우리의 낮은 당신의 밤 보다 아름답다' 누가 말했는가!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은 밤에 일어나는 건데!


나는 왜, 어째서 이 민족이 세계사의 첫 페이지부터 등장하는지를 바로 '그 밤'에 알게 되었다.

술과, 음악 그리고 가족과 친구. 인생의 중요 3요소가 모두 모인 결혼식의 밤은, 세상 가장 중요한 밤이었다.

유흥이 시작된 역사적 기록이 어딘가에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곳에도 그리스 사람이 첫머리를 장식했을 것이다. 틀림없다.





안 보면 후회할 그리스 결혼 댄스.




'멋'있었다.

결혼을 축하하는 그들만의 음악이 있었다.

신부가,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동생이 그리고 하객들에 의한.


결혼을 축하하는 한 명 한 명이 춤을 리드하면, 손을 잡고 둥글게 도는 사람들은 리더의 스텝에 맞춰 함께 따라 돌았는데, 우리나라의 '강강술래' 같기도 한 이 그리스의 웨딩 전통 춤은 'Tsamiko'라고 불린다고 했다.

 

오늘의 주인공들이 순서대로 춤을 리드했지만, 가장 압권이었던 댄스는 신부의 아버지 그러니까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의 춤이었다. 아버지의 춤을 보고 그리스 남자를 다시 봤을 정도였다. 하객을 의식할 법도 한데 거침이 없는 손, 발 동작과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는, 정말이지 아시아권에서는 볼 수 없는 춤사위였다.

영상을 보면 알 테지만, 아버지가 취하지 않으셨지만( 식 초반이라 확실히!) 취권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넘어질 듯 아닐 듯 가볍고 현란하게 리드하는 춤 솜씨가 과연 고수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이 'Tsamiko'는 남자들이 추는 춤으로 전해 내려온다 하니, 남정네들의 춤사위가 보통이 아닐 수밖에.

내 친구 엘리자베스는? 신부의 동생으로서, 엘리자베스의 춤을 보고 우리는 그녀를 '자이언트 버터플라이'라고 불렀다. 펄펄 날아다녔던 거대한 분홍 나비라고 그 후로도 몇 날 며칠을 놀려 댔다.


하객들이 하나 둘 나가 손을 잡고 둥글게 둥글게 추는 걸 보니, 와인 몇 잔에 알딸딸해진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스테이지로 나가 보았다. 보기에는 진짜 어렵지 않았는데, '이쯤이야' 할게 아니었다.

정 박에 딱딱 떨어지게 몇십 명이 원을 그리며 돌기 때문에, 템포가 빠른 춤에서는 발이 엉키기 십상이었다. 발이 엉키면? 서로 끌어당기는 힘에 맥을 못 추고 끌려 다녀야만 했다. 양 쪽에서 끌어당기는 종이 인형처럼 처음 몇 번은 검은 머리 이방인은 그렇게 돌려졌다. 돌리고 돌리고! 살기 위해 발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그리스인 패치를 장착하고 돌고래 소리를 지르며 딱딱 발을 맞춰 춤을 추고 있는 내가 보였다. '켜라, 조르바. 오늘만큼은 내가 이 구역 자유인이어라' . (영상 마지막 부분에서 유일한 검은 머리를 찾아보세요. 네. 저예요!)


이렇게 한 사람씩 돌아가며 춤을 추고 하객들도 모두 나와 추다 보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밤 10시가 됐고, 자정이 지나가고, 여자들은 하이힐을 벗어던졌고.

전통 음악이 흐르던 시간이 지나고는 유행가라고 해야 할까? 그리스의 멜론 탑 100에 있을 거 같은 노래들로 밤을 지새웠다. 언제까지? 진짜로 둥근 해가 뜰 때까지.



자이언트 버터플라이와 하객들


 흔들리는 시야로 바라보는 해돋이는 더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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