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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아웨이브 Sep 14. 2020

발리 새해에는 공항도 문을 닫아야 한다고?

답은 전통이다, 발리


발리 국제공항도 24시간 문을 닫는 날, 녀피(Nyepi



발리에서 지낸 곳은 남쪽에 위치한 '뭉구(Munggu)'. 인도네시아 외교부에서 주관하는 국제문화예술교류 프로그램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나를 비롯해 이탈리아, 그리스, 독일, 피지, 통가, 러시아, 일본, 영국, 태국에서 선발된 예술가들이 발리 전통음악과 춤을 배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뭉구에 있는 예술센터에서 총 세 달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발리 멤버들과 사원에서 단체 사진


뭉구! 이곳은 어떤 곳인가? 발리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 함께 할 수 있는 자그마한 동네였다. 우리가 거리를 지나가기라도 하면 동네 꼬마들이 모여들어 '불레, 불레 (외국인! 외국인!; 보통 서양사람들을 지칭)하며 따라다니는 외국인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이었다. 어디서 그랬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라고! '살아보는 발리'에 이보다도 완벽한 곳이 과연 또 있었을까?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일주일간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발리, 뭉구 지역에 터를 잡기 시작한 건 3월이었다. 오전에는 발리 전통악기인 ‘가믈란’을 수업받고 가정식 점심을 먹고 나면, 전통 춤을 배우면서 오후를 보냈다. 수업이 끝나는 오후 2-3시부터는 온전히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예술회관에서 숙소까지는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은 다 끝났기 때문에 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여유를 부리며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때로는 비키니에 원피스 하나만 걸치고 자전거로 20분 정도에 있은 '에코 비치’에 가서는 오전 내내 흘렸던 땀을 해수욕으로 씻어내고 석양이 내려올 때 즈음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옆집 아주머니가 전담으로 챙겨주시는 쌀밥과 나물, 고기반찬으로 저녁 식사를 하면, 그룹 멤버들과 각 나라의 사는 얘기를 나누는 그런 느슨하고 꽉 찬 하루하루를 보냈다.


발리 전통의상과 메이크업을 하고 사진 찍던 날


그렇게 맞이한 3월 말 무렵. 언제부턴가 마을 군데군데에 있는 회관에서 커다란 탈이라고 해야 할지, 아님 인형이라고 해야 할지, 뿔 달리고 무서운 괴수 형체스러운 '것'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건 뭐 웬만한 발리 가정집에는 들여다 놓을 수도 없을만한 크기였는데 그 정도가 어느 정도냐 하냐면, 건물 2-3층은 훌쩍 넘을 정도라 목을 꺾어 올려다보아야 할 크기였다. 더군다나 그렇게 큰 '것'은 양손에 길고 날카로운 손톱도 가지고 있었고, 한번 휘둘리다 얻어맞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것만 같은 도깨비방망이까지 들고 있었으며, 이빨은 송곳니가 가득하고 얼굴은 화로 가득 차 빨갛게 상기된 표정을 하고 있는 '것'들이라 그야말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악의 끝을 표현하고 있는 형상이었다. 섬뜩하고 잔인하고 살벌하고 괴이하고 망측한, '세상 부정적인 단어를 나열해서 표현하면 딱 이런 모습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이 '것'의 정식 명칭은 ‘오고 오고(Ogoh-Ogoh)’. 힌두교 설화에서 전해져내려 오는 나쁜 영을 상징한다고 한다. '오구 오구'가 생각나 잠시 귀여운 느낌일 거라 상상하는 분이 있다면, 그런 생각은 잠시 넣어두시라.


악의 상징, 오고오고! 꿈에 나올라 무섭다



힌두교 발리 지역에서 사용하는 달력 ‘사카(Saka)’에 따라 우리가 있던 그 해는 '3월 30일'이 일 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새해 하루 전 날 밤, 우리는 하얀 전통 옷을 입고 격식을 차린 그루들과(발리에서는 선생님을 '그루'라고 부른다) 그 가족들과 함께 거리로 나갔다. 뭉구 마을 사람 모두가 흰 의복을 차려입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횃불을 들고서 가지각색 모양을 한 수십수백 개의 ‘오고 오고’를 따라 퍼레이드 행렬에 따라나섰다. 사람들을 따르는 수레 중에는 인도네시아 전통악기인 ‘가믈란’도 있었는데 '딩동댕동 딩딩동댕동' 소리를 내며 연주해주는 연주자들 덕택에 마을 전체가 시끌시끌하고 소란스러운, 화려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녀삐 하루 전날 밤,  오고오고와 횃불을 들고 퍼레이드


다음날 오전은 밤새 거리를 쏘다닌 턱에 다들 늦잠을 자고는 늦은 아침을 먹고 있던 즈음이었다. 예술원 원장 격인 '파니카'가 오늘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날이니 집에 있으면서 쉬라는 말을 전했다.


“오늘은 비행기도 뜨지 않아요. 공항도 문을 닫아요. 모든 상점도 폐쇄합니다. 오늘 하루는 밤에 불도 켜서는 안 됩니다.”

“네? 뭐라고요? 공항도 문을 닫는다고요? 불을 켜지도 말라고요?”


그랬다. 발리의 새해 첫날. 여기에서는 녀삐(Nyepi)라고 부르는 날이다. 오늘 하루 동안은 즐겁고 밝은 것은 멀리해야 한단다. TV와 라디오도 끄고, 심지어는 발리에 하나뿐인 국제공항도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무려 24시간 동안 이착륙하는 비행기도 없단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도 금하고 있기 때문에 오직 순찰하는 경찰만이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고 한다. 관광객도 예외는 아니다. 힌두교를 믿지 않는 외국인 관광객일지라도 모두 호텔 숙소에서 지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그루들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녀삐에는 나쁜 영이 발리섬에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들과 마주치지 않게 하루 종일 집안에서 조용하게 침묵을 유지해야 하며, 집에 찾아오지 못하도록 밤에는 불빛까지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낮에는 햇빛 짱짱한 발리에서 평소처럼 선풍기를 틀고 전날 쌓인 피로를 풀며 낮잠을 자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도 했다. 문제는 밤이었다. 불을 켤 수 없다니! 가로수 등까지 꺼져버린 마을은 칠흑 같은 밤이었다. 상상해보라, 빛 한줄기 없는 밤이라니! 형광등은 정말로 안된다는 말에 우리는 촛불 몇 개를 마당에 켰다. 맥주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쁜 신이 우리를 찾지 못할 정도라 생각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정도로 볼륨을 낮춰 음악을 틀었다. 그리스 친구 엘리자와 함께 조금 걷자 하고 문밖으로 나왔다. 핸드폰에 있는 플래시를 켜고 집 앞을 저벅저벅 걸었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숙소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와는 떨어져 있는 마을 끝머리에 있었기 때문에 경찰과 마주칠 염려는 없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멍멍멍'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뿐. 불빛 하나 없는 논밭 한가운데에서 코코넛 야자수를 끼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늘 유난히도 달과 별빛이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와, 별 진짜 많이 보인다!"

우리는 그렇게 조용한 새해 첫날을 보내야만 했다.



새해 전날 횃불과 함께 행렬했던 그 많은 '오고 오고’ 들은 어떻게 됐을까? 어디로 갔을까? 상상이나 했을까. 몇 달을 걸쳐 만든 '오고 오고' 작품들은 녀삐 맞이 축제와 의식이 끝난 바로 그 날, 불 태어졌다고 한다. 나쁜 기운과 영은 '오고 오고'와 함께 활활 타는 불속으로! 녀삐와 관련된 의식을 하나 더 덧붙이자면, 새해를 맞이하기 3-4일 전, 마을 사람들 전체가 흰 전통의상을 입고 대나무 줄기로 엮어 만든 깃발과 함께 바다에 모두 모인 날이 있었다. ‘멜리스(Melis)’라고 부르는 의식인데 ‘신성한 물’이라고 생각하는 바닷물로 얼굴이나 몸을 적시면서 한 해 동안 덮여 있던, 신께 용서를 빌고 싶은 기억을 씻어내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날이라고 한다.



여기는 신들의 섬, 발리다.

새해 맞이 정화 의식을 위해 바다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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