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향이랄까

스스로를 위한 일들

by vicai

- 엄마와의 메신져 톡 대화.

”딸, 뭐해, 집이야?“

”나 오사카. 왜?“

”..........?“

”...........??“



- 친구와의 대화


“바다 보면서 회 한 점에 소주도 마시고 싶고 드라이브도 즐기고 싶다”

“그럼 가야지”

“지금은 시간 맞는 친구들이 없잖아, 올해는 글렀지”

“혼자 가란 소리였는데..”

“.............?”

“그렇게 하고 싶으면 혼자라도 가야지, 하고 싶은 건데 혼자라서 못한다는 게 억울하잖아”



- 에어비앤비 호스트와의 대화


“0월 00일에 당신의 숙소를 예약 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따뜻한 숙소가 맞아줄 겁니다.”

“임신9주차입니다. 정말로 따뜻하면 좋겠습니다.”

“...........? 이 곳에 가족이나 친구가 있나요?”

“아니요 전 여행이라니까요?”“

”...........?“

”???“




혼자 하는 여행에 푹 빠져서, 한 때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혼행을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다녔다. 나의 결정이 하루 종일 존중받는 이 쾌락을 느껴보지 않아서 모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인정한다. 말이 안 통할만큼 끈질기게 주장만 반복하기도 했고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이를 겁쟁이 취급한 적도 있었다.


”처음이라 그래, 시작만 어렵지 다 해.“

모든 사람이 혼자여행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휴가를 계획하는 직장 상사에게 꼭 한 번 혼자 떠나보시라며 열심히 혼행예찬론을 펼쳤다. 타인의 말을 잘 수용했던 그는 절반은 본인의 의지로, 절반은 나의 입김으로 이탈리아 2주 여행을 혼자 다녀왔다.


”어땠어요, 대리님? 재밌었죠?“


”...드럽게 심심하던데“

첫 혼행을 너무 길게 해서 부작용이 생긴 거라 생각했다. 진짜 어리석게도.



일부러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만드는 편이다.

사람들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낸 뒤엔 늘 혼자 있는 시간을 둔다.

혼자만의 공간에 앉아 조용히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정리하면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그러면서 다음 스텝엔 뭘 해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해야 할 많은 일들, 하고 싶은 많은 일들 중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것을 위한 준비를 했다. 그 모든 것이 완료 되어야 마음이 편했고 한걸음 뒤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스스로를 객관화 시키는 이 과정을 즐겼다.


성향이 이러니 결혼이 참 문제이긴 했다.

대학시절 룸메이트와도 한학기만에 갈라졌는데 ㅡ 오해마시라, 그 때 갈라진 룸메이트는 지금 나의 절친이다. ㅡ 10년 넘게 혼자 살아온 내가 누군가와 함께 공간을 쓴다니. 우려는 현실이 되어 신혼 초에는 화장실도 못 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몇 달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찾은 해결법은 남편이 일어나기 두시간전에 기상하는 것. 다행히 그는 나와 성향이 정반대인 사람이라 작은 소리에도 쿨쿨 잘 자는 초 태평 스타일의 저녁형 인간 이었고, 아침형 인간인 나는 두 시간 전에 벌떡 일어나 그 동안 혼자 해오던 의식을 전부 치를 수 있었다.

물론 화장실까지도.



다양성을 인정하라.

살면서 가장 자주 명심하는 말인데, 되게 어렵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무언가 눈에 들어온 순간 내식대로의 감정이 훅 올라오기 마련이기에.

혼자만의 여행 스토리를 공유할 때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가 없나?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은가? 성격이 까칠한가?

사람에게 에너지를 얻는 이가 있고 기가 빨리는 이가 있다.

그것이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일지라도.

스스로를 잘 알기에 이런 말들은 가볍게 쳐낼 수 있었다. 그 쪽이 아닌데 눈들을 신경 쓰느라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반대로 다른 이들에 대해 기울어진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웠지만 노력하다 보니,다행히 사람에게 에너지를 얻는 이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오랜 시간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다가 만나면 되려 에너지를 얻는 경우도 있었다. 강력한 집순이 인데도 말이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건 좋은 행동이지만 그게 너무 길어지면 더 편협 되기 쉽다. 자신만의 생각이 너무 강해지기 때문. 그럴 때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다른 삶의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웠고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내가 엄마가 되었다.

다시 그 '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없는 사람이 여행을 가는 것과 아이가 있는 사람이 여행을 가는 건 다를까?

주체는 동일한데 관계라는 것이 고유의 속성마저 통제해야 할 정도로 강한 걸까? 마치 관계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출산 직후,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여 울던 때가 있었다. 정확히 뭐가 두려운지도 몰랐다. 3일에 한 번 꼴로 남편 품에서 밤마다 울었다. 아마도 그토록 자랑스럽게 쳐내던 밖의 목소리들을 다시 한 번 쳐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엄마로서의 나에게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느리지만 회복해야 한다. 나를 회복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하니까.

다시 한 번 차고 일어나 다양성을 인정 하시지요! 할 때가 왔다.

내가 나로 살기 위해서, 딸에게 비겁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여행자도 케바케고 엄마도 케바케다. 당신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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