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이 내 안에 보낸 첫 신호
늦은 밤.
가족이 잠든 고요한 거실에
TV 불빛과 소리만이 떠돌았다.
소파에 기대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배회하는 마음을 하소연이라도 하듯
쉴 새 없이 채널만 돌렸다.
하지만 어느 장면에도 마음이 닿지 않았다.
리모컨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이쯤 했으면 됐어. 내일을 위해 자자.’
…
침대에 누웠지만 자리가 편치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짜증이 밀려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불편한 거야?'
편한 자세 찾길 반쯤 포기한 채,
불 꺼진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
잠투정하는 아이를 달래듯 가슴을 토닥였다.
그때였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불안하구나.
니가 불안하구나.
말도 못 할 만큼 불안하구나.'
툭 건넨 한마디에,
잔뜩 힘주고 있던 몸 어딘가에서 스르륵 힘이 빠졌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불편했던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구나!'
그렇게, 홀가분해진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다.
불안은 늘 곁에 있었다.
오랜 시간, 아주 가까이에서 함께 자란 감정이었다.
내가 처음 만난 세상은 안전하지 않았다.
수용도, 존중도 없던 그곳에서 나는
작아지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가보르 마테는 말한다
“트라우마는 당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일로 인해 당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 가다.”
살아남기 위해 나는 나를 버렸다.
있는 그대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었고,
사랑받기 위해 애쓰며 점점 나를 잃어갔다.
그렇게 불안은 내안에서 점점 커져갔고,
환경은 그것을 더 짙고 무거운 그림자로 만들었다.
결국, 해결되지 않은 욕구는 결핍이 되어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내 안에 뿌리를 내렸다.
불안은 때론 숨었고, 때론 날을 세웠다.
하지만 언제나 곁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불안을 잘 다루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겉모습만 번듯한 어른일지 모르겠다.
그날 밤,
‘니가 불안하구나’라고 마음에 말을 건넸을 때,
내 안에 어딘가에서 힘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위로도 해결도 없었지만,
‘알아주는 것’만으로 얼어붙은 마음은 녹기 시작했다.
그 밤, 나는 알게 되었다.
불안은 나를 괴롭히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돌보라는 조용한 신호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