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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Jan 16. 2024

나이 듦을 받아들이다

호기심은 그대로

환갑이 지났고 딸이 결혼하여 손녀도 낳았으니 당연히 할아버지다. 그래도 손녀가 부르는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할아버지라 부르면 언짢아졌다. 병원이나 행정복지센터 같은 곳에 가서 아버님이라고 부르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찌 마음만 청춘일 수 있겠는가. 패기나 혈기 같은 말을 청춘이 독차지할 건 아니지만 이런 말을 내게 대입시켜 본 지 오래되었다. 몸도 여전히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반듯하다지만 내 생각일 뿐이다. 가까이 보면 얼굴 주름이 깊어 뚜렷하고 머리카락은 얇아지고 성성한데 이것도 염색이나 발모제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멀리서 보더라도 옷차림이나 겉모습에서 나이 든 사람으로 어림짐작할 수 있다.      


몸은 쇠약해 가는데 마음이 그대로라면 부조화가 생기고 억울함과 서러움만 더해질 뿐이다. 나이가 들면 마음도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야 한다. 몸과 마음의 거리는 가까워야 한다.

    

노년층을 지칭하는 단어로 노인, 고령자, 할머니, 할아버지, 늙은이같이 오래전부터 흔히 써오던 말이 있다. 이외에도 어르신이나 신중년 같은 대용어를 쓰기도 하고 시니어나 실버 같은 영어를 가져와 부정적인 느낌을 완화하려고도 한다. 틀딱충, 연금충, 할매미 같이 조롱 섞인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사실 호칭은 현상을 반영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그런데 나이 듦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은퇴 후 6개월이 지나자 서서히 기가 꺾이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정과 사회에서 위치와 비중은 낮아지고, 일자리나 사회활동을 찾으려고 하니 노인일자리전담기관이나 신중년센터 같은 곳에 가야 나이에 맞는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왔다.

     

나이 듦을 받아들임에 있어 물리적인 나이와 신체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은퇴 후 갑작스럽게 맞이하게 되는 사회 경제적 존재감의 변화, ‘사회의 짐’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과거에 얽매어 내려놓지 못하는 노욕, 고집이 더욱 견고해지는 현상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제 노인이라는 말과 현상을 받아들이려 한다. 나이 듦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고 적절한 역할을 찾아가려고 한다. 그래도 호기심만은 유지하고 싶고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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