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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May 01. 2024

손녀의 슬픈 눈빛

할아버지도 헤어지기가 늘 아쉽단다

큰 손녀가 슬픈 눈으로 기차를 탔다. 헤어질 때면 매번 보는 눈빛이다. 외갓집에 내려와 지내다 서울로 올라갈 때 기차역까지 바래다주는데, 더 어렸을 때는 함께 가는 줄 알다가 기차에 타서 엄마와 둘만 의자에 앉으그제야 깨닫고 슬픈 눈빛을 보였다. 두 돌이 지나고는 할아버지가 함께 가지 않는 걸 인식한다. 그래서 기차역에 도착하면 기운이 빠지다가 기차에 오르면서부터 눈빛이 슬퍼진다.

      

요즘 기차 유리창은 안에서 밖을 보는 것과 달리 밖에서는 안이 투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불투명해서 손녀 눈빛까지는 볼 수 없는데 매번 딸은 손녀의 표정 담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준다. 그 눈이 오늘은 더 슬퍼 보였다.

     

더 슬퍼 보인 건 내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딸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힘들 때나 우리가 보고 싶어 하면 손녀를 데리고 와서 지내다 갔다. 짧으면 사나흘 길면 2주 정도 있었다. 둘째 손녀를 낳고는 더 자주 더 오래 머물다 간다. 이번에는 큰 손녀가 장염에 걸려 어린이집에 다닐 수 없어서 왔다. 그런데 다른 때와 달리 손녀에게 짜증을 몇 번 부렸다. 할아버지와 헤어짐을 눈물이 고이도록 아쉬워하는 손녀에게 말이다.

      

더 예뻐만 해도 모자랄 손녀를 다그친 게 걸려 오늘은 기차를 타는 손녀의 눈을 보지 못했다. 기차가 떠나기 전에 차창 밖에서 안을 찾아보아도 불투명한 유리창 때문인지 딸과 손녀를 볼 수 없었다. 딸이 전화로 건너편 좌석이라 내가 눈길을 준 곳이 아닌 자리에 앉았단다. 목을 더 길게 빼고 안을 들여다보는데 그만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역을 막 나서는 참에 딸이 동영상을 찍어 보내왔다. 자리에 앉아 할아버지를 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뒷모습에서 엄마를 돌아보며 눈물이 쏟아질 듯한 눈으로 변한 얼굴로 이어지는 짧은 영상이었다. 짜증 낸 할아버지는 이미 잊어버리고 헤어지는 아쉬움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요즘 손녀는 색연필로 도화지에 선을 긋고 도깨비 같은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다. 벽이나 바닥에 함부로 그리지 않는 조심성도 있다. 아직 손 힘이 어설퍼 곧잘 도화지 밖으로 나오기 일쑤인데 이번엔 식탁에 물감을 발라놓아 짜증을 냈다.

     

밥도 반찬도 가리지 않으며 먹여 주지 않아도 혼자서도 숟가락질을 잘하는 편이다. 그날은 그냥 먹여 주고 싶었다. 연달아 밥을 가득 얹은 수저를 입에 가져갔다. 입을 벌리는데 먼저 준 밥 반은 입 안에 있었다. 빨리 먹으라는 눈치를 주었다. 배불리 많이 먹이고 싶은 마음만 있었고 손녀의 밥 먹는 속도는 생각 없었다.


손녀는 풀이나 꽃, 곤충 같은 자연물을 좋아한다. 산책도 좋아해서 자주 밖에 나가 풀잎이나 꽃잎을 따서 개미 밥이라며 주고 열매와 돌멩이를 주어서 손에 가득 들고 다닌다. 때로 곤충을 만지고 더러울 듯한 것도 줍는다. 그게 원인인지 접촉성 피부염이 생겼다. 만지지 못하게 막았다. 즐거움을 하나 빼앗았다.

     

오늘은 기차 시간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옷 입기, 머리 묶기, 신발 신기를 뿌리치거나 천천히 했다. 시간 개념이 없는 두 돌 지난 아이를 기다려 주지 못하고 보챘다. 아침에 출근하는 할머니를 보며 서울에 가지 않고 여기서 함께 살겠다는 손녀를 윽박질렀다.

     

그런 할아버지와 헤어지기 아쉬워 슬픈 눈빛을 보였다. 이번엔 어쩌다 짜증 냈어도 할아버지도 헤어지기가 늘 아쉽단다. 눈물이 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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