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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Jul 27. 2024

울릉도 성인봉 가는 길

또 가야겠다

울릉도에 왔다. 2015년에 이어 두 번째다. 그땐 5월 봄이었다. 식물에 막 관심 갖고 들여다보던 시기였고 외딴섬으로 동경의 땅이었고 식생이 특별한 곳이라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왔었다. 마침 봄이라 숲이 초록으로 막 짙어가고 있었다. 이번엔 7월 여름이다. 여름 숲은 예상대로 울창하다. 이 숲을 보기 위해 배를 타고 멀미를 견디며 먼바다를 건넜다.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성인봉으로 가는 길이다. 성인봉에 오르는 가장 빠른 안평전에서 시작하는 길은 초반부터 가파르다. 숲은 빽빽하게 우거지고 덕분에 길은 그늘지고 시원해서 숨은 차지만 땀은 덜 하다. 9년 전 성인봉을 오르며 보았던 육지와 다른 식생은 변함이 없고 여전히 마음을 설레게 하면서 봉우리 오르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파른 경사를 얼마간 오르니 산비탈을 옆으로 지나는 길 좌우에는 고사리류, 관중, 고비 같은 양치류가 지면을 뒤덮었다. 이색적이다. 한 여름이라 꽃이 많진 않으나 그 자리에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큰두루미꽃은 갈색 점이 박힌 둥근 열매를 키우고 섬노루귀, 큰연영초와 섬말나리도 큰 잎을 펼치고 열매를 달고 있다. 꽃이 아니어도 충분히 풍경이 된다.

<일색고사리><큰두루미꽃><섬노루귀>

바닷가나 밭처럼 보이는 평지에서도 자주 보던 꽃이 여기 등산로 주변에도 흔하다. 이름이 궁금했다. 미나리과 식물은 잎과 꽃이 비슷하고 종류도 많아 구별이 쉽지 않아 갑갑할 지경이다. 도감과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니 섬바디다. 꺾으니 줄기 안쪽은 비어있고 하얀 액이 나온다. 울릉도에서는 돼지가 좋아해 돼지풀이라 부르며 소먹이로도 쓰여 한때 인기 있는 목초였단다.


마가목이 숲에서 심심치 않게 자라고 설익은 초록 열매가 땅에 떨어져 있다. 지금은 잔잔하나 지난 저녁에 바람이 상당했나 보다. 설악산에서 흔히 보는 육지의 마가목에 비해 키, 잎, 꽃, 열매가 커서 ‘우산마가목’으로 달리 부르며 구분하기도 한다. 오징어 어획량이 줄어든 이후 열매가 혈액순환에 좋은 마가목을 재배한다는데 곳곳에서 심어 가꾸고 있다.


울릉도에서 자라는 식물 이름에 ‘큰’, ‘왕’, ‘섬’, ‘울릉’ 접두어처럼 붙이는 경우가 많다. 온난 다습한 해양성 기후나 바람이 많은 특별한 기후와 토양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태학적으로 육지와 다른 특징을 갖는다. 꽃과 잎이 육지에 서식하는 종과 비교해 확연히 커서 큰이나 왕을 붙인다. 그 외에도 털과 가시를 없애거나 잎 표면에 두꺼운 막질을 형성하면서 이곳 환경에 적응해 왔다.

     

한참을 올라 능선길에 다다랐다. 다른 등산객도 긴 숨을 내쉬며 쉬어간다. 꽃은 작으나 붉은 꽃의 유혹이 강렬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이삭여뀌와 도둑놈의갈고리가 쉼터 주변에 드문드문 보인다. 경사길을 오르면서도 이 붉은 유혹에 끌려 꽃을 보며 가쁜 숨을 골랐다. 뿌리를 찧어 나온 즙으로 파리를 잡는다는 파리풀이 많다. 파리풀꽃만 찾아 꿀을 빠는 나비가 있다. 생김새와 낮에 활동하는 습성이 영락없이 나비인데 찾아보니 뿔나비나방이다. 다음에 만나면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잘 기억해야겠다.

<섬바디><이삭여뀌><파리풀과 뿔나비나방>

능선길에서 만나는 섬초롱꽃은 즐거움이다. 해안 절벽에는 군락을 이루기도 하나 여기서는 한두 개체가 드문드문하다. 근연종인 초롱꽃과 비교하여 잎이 두껍고 줄기에 털이 없으며 꽃 안쪽에 자주색 반점이 많다는데 차이를 비교해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금강초롱꽃을 만나기 위해 설악산 공룡능선을 걸었던 오래전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산에서 만나는 초롱꽃은 언제나 감동이다.

     

노란 꽃이 아름다운 뱀무와 고추나물을 지나 산 정상부에 가까이 왔다. 성인봉 정상을 2~3미터 앞두고 길은 곧지 않고 곡선으로 한번 굽이진다. 바로 오르지 않고 돌아가는 이 길이 좋다. 물을 급하게 들이켜지 않게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운 설화처럼 정상에 오르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정상에서도 산 아래 풍경을 다 볼 수 없다. 높다고 하여 함부로 내려다보지 않는 속 깊은 마음이다. 10여 미터 아래에 있는 전망대로 내려와야 비로소 나리분지가 보인다. 성인(聖人)은 아무에게나 붙여주지 않는다.

<섬초롱꽃><섬초롱꽃><뱀무>

이번 울릉도에서 좋은 것만 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섬 일주도로가 개통되었고 울릉공항 개항을 앞두고 증가하는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개발이 한창이다. 풍광이 좋은 섬의 가장자리를 따라 개발이 활발한데 해안은 울릉도 특산식물이 자라는 땅이기도 하다. 이곳은 협소하기도 하여 훼손되면 식물은 삶터를 잃게 된다. 위태로운 절벽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더 위태로워 보인다.

     

항구에서 배가 더 멀어지기 전에 갑판으로 나와 섬을 되돌아보았다. 섬에 도착하면서 가장 먼저 보았리꽃이 해안 절벽에서 여전히 붉게 강렬하다. 일주도로를 따라 산비탈과 해안가에 지천으로 피어 이즈음 울릉도를 대표하는 꽃이다. 바닷바람에 줄기가 움직이며 참나리꽃이 흔들리는데 또 오라는 손짓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번에 꽃으로 만나지 못한 풀과 나무를 보기 위해 또 가야겠다.


좌에서 우로  <섬기린초, 섬말나리, 섬쑥부쟁이, 왕해국, 금불초, 노랑물봉선, 도둑놈의갈고리, 덩굴곽향, 좀꿩의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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