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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Aug 12. 2024

뭐~ 상수룩?

깔끔하고 단정하면 되었다

내 옷차림은 그저 그렇다. 신경 써서 입는데도 남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입는 스타일이 튀지도 특색이 있지도 않고 큰 변화도 없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직장에 다닐 때보다 격식을 차릴 필요도 없으니 더 단순해졌다. 단순해지니 뭘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선호하는 옷차림은 있다. 면바지에 셔츠를 주로 입는다. 면바지는 오래전부터 입던 옷이라 여유가 있어 편하다. 지금껏 살쪄본 적 없는 마른 체형이라 수년 전에 입었던 옷도 잘 맞는다. 뱃살이 조금 붙기는 했어도 허리둘레가 크게 변하지 않아 그대로 입을 수 있다.


어쩌다 양복을 입거나 구두를 신으면 어색하고 직장에 다닐 때 입었던 옷은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몸에 붙는 스타일이라 갑갑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슬림핏 바지는 선호하지 않았으나 유행이라며 아내와 딸이 권해서 마지못해 입었다. 그때는 그게 괜찮아 보였던 시기였다. 유행에 둔감했던 또래 친구들도 직장 동료들도 하나둘 슬림핏 옷을 입었다. 나온 배가 더 부풀려 보여도 그런 스타일이 유행이었고 몸에 붙은 옷이 대부분이라 다들 그렇게 입었다. 이제 펑퍼짐한 옷은 아저씨 스타일이던 시기가 지나고 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스타일의 루즈핏이 유행하고 있다.  


이번 여름에 겨울옷과 봄옷을 정리하면서 오래되거나 불편하고 유행도 지난 몸에 붙는 버릴 옷 몇 개를 골랐다. 유행은 돌고도니 또 이런 옷이 유행할 시대가 올 텐데 망설여졌지만 여유롭게 정리된 옷장을 생각하며 헛옷 수거함에 밀어 넣고 돌아섰다. 다시 몸에 붙는 옷이 유행하더라도 그때는 내 스타일대로 입어야겠다는 생각도 한 몫했다.

 

슬림핏을 권했던 딸이 요즘 내가 입는 셔츠와 면바지 차림을 보고 '상수룩'이라며 괜찮다고 했다. "뭐~ 상수룩?" 여유 있는 면바지에 적당한 셔츠를 입는 스타일이라고 딸은 설명했다. 인터넷 검색하니 나무위키에 "홍상수 영화감독이 입은 하늘색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 패션 스타일이 시초"라는 설명과 함께 사진도 있었다. 이 조합으로 여성들도 편하게 입으면서 상수룩이라 굳어지게 되었단다. 감이 왔다.


별거 아닌데 상수룩, 아빠가 평소에 입던 옷차림인데 이제 안 거야 딸~


면바지에 셔츠를 입게 된 건, 드라마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에서 현빈이 주로 입던 면바지와 셔츠에 셋업재킷을 더한 스타일이 맘에 들고부터다.  도무지 따라가지 못할 얼굴과 몸매를 가진 배우의 옷맵시지만 옷 스타일이라도 그렇게 입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 슈트 대신 셋업재킷이나 면자켓을 몇 번 구매했고 캐주얼복으로 면바지와 셔츠를 입었다. 시대가 변해 정장이 아닌 세미정장이나 캐주얼 복장으로 간편하게 입는 경향이 되면서 사무실에도 가끔 면바지를 입고 갔다.


흰색 면바지는 튀어서 차마 선택하지 못하고 미색, 짙은 회색, 검은색을 입거나 청바지를 입는다. 많은 것 같으나 색깔별로 하나씩 딱 4개로 계절에 상관없이 입는다. 셔츠는 무늬가 있는 것보다 단색을 선호하, 흰색을 자주 입었는데 관리에 번거로움이 있어 요즘엔 푸른색 계통도 입는다. 배색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위아래 같은 색은 멀리하고 같은 계열의 색이라면 짙고 옅게 알맞게 배색다. 바지가 검정이면 셔츠는 흰색으로 하거나 그 반대로 하여 되도록 다른 색으로 구성한다. 더운 요즘엔 미색 바지에 딸이 사준 리넨 소재의 청색 셔츠를 시원하게 입는다.


또 다른 습관이 있는데 말하기 겸연쩍고 저어 되나 이왕 옷차림 이야기를 꺼냈으니 써야겠다. 셔츠는 긴팔을 입는다. 얇은 팔목 나이 들면서 손과 손목에 거뭇거뭇 나타난 잡티를 가리고 싶고 반팔보다 긴팔이 훨씬 멋져 보였다. 앞에 말한 드라마에서 현빈도 긴팔만 입었다. 그때부터 나도 긴팔을 선호했고 여름에 더우면 걷으면 되었다. 다만, 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는데, 족저근막염 때문에 멋진 로퍼 같은 신발 대신에 검정 등산화를 주로 신는다. 아쉽지만 말이다.


그리고 딸아~ 아빠가 마르긴 했어도 아직 허리 꼿꼿하게 바르고 근력운동으로 가슴도 펴지고 어깨도 반듯해서 환갑 넘은 할아버지이지만 아직 괜찮지. 깊어진 주름과 성성해진 머리카락은 간 세월과 산 삶의 흔적이니 부끄럽지 않으나 이 나이에 자세가 흐트러져 무너진 건 내 관리부족이겠지. 여기에 더해 옷매무새도 깔끔하고 단정하다면 괜찮은 할아버지 아닐까~


* 대문 그림은 딸이 그린 아빠 모습(처음엔 주름이 없었으나 더 나답게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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