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말의 해에 어울리는 식물

내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by 이른아침

2026년 새해를 맞으며 어떤 식물을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해 보았다. 병오년은 말의 해다. 병(丙)은 불과 붉은색을, 오(午)는 말을 상징하여 “붉은 말”의 해라고 한다. 힘차게 내달리는 말의 기상에 불같은 열정이 더해진 이미지다. 그런 기운에 어울리는 식물로 산작약이 먼저 떠올랐다. 산작약은 하늘 향해 곧게 뻗은 꽃줄기 끝에 크고 붉은 꽃 하나를 피운다. 그 꽃이 마치 말을 타고 숲을 달리는 병사의 손에 들린 붉은 깃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기에 나만의 시선에 머물기보다 더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외형에서 말의 모습을 닮은 식물을 억지로 찾기보다는 시선을 돌려 이름에 ‘말’이 들어간 식물을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말채나무, 곰의말채나무, 흰말채나무 그리고 마편초가 있다. 이들 식물 이름에서는 자연스럽게 말채찍이 연상된다. 가지가 가늘고 길며 잘 휘어져 말채로 쓰기에 알맞은 공통점이 있다. 말과 함께 떠오르는 도구가 채찍이다. 채찍은 말이 잘 달리도록 자극을 주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전하는 의사전달 수단이다. 주마가편은 달리는 말에 채찍을 더한다는 뜻으로, 잘하고 있는 사람이나 일에 더 분발하도록 격려하거나 몰아붙여 독려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옛사람들은 말채나무를 집 주변에 심어 후손에게 게으름을 경계하고 바르게 이끌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말채나무에는 마을을 지켜낸 전설이 남아있다. 어느 마을에 추석이면 지네가 몰려와 곡식을 빼앗아 먹었다. 사람들이 걱정하자 말을 타고 지나던 장수가 보름달이 뜨기 전 술을 빚어 마을 어귀에 놓아두라 일렀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지네를 벤 장수는 말채를 땅에 꽂고 떠나며 지네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이후 말채는 나무로 자랐고 지네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말채나무라 불렀다.


또 하나는 계룡사 갑사 입구에 군락을 이룬 말채나무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어떤 지체 높은 양반이 말을 타고 절을 찾았다. 잘 걷던 말이 절 어귀에서 꿈쩍도 하지 않자 말채나무 가지로 엉덩이를 치자 걸음을 옮겨 절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 뒤로 갑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말채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이처럼 말채나무는 자식을 바르게 이끌고자 했던 마음을 담은 교훈목이자,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또 부처의 진리 앞으로 이끌어 교화하는 상징목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아 왔다. 비록 지금 사람들은 말채나무가 심어진 뜻을 잊었을지라도 나무는 그때의 바람과 믿음을 고스란히 품은 채 전국 곳곳에서 노거수가 되어 우리 곁에 남아있다. 이렇게 말채나무와 관련해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이 나무가 우리 삶과 깊이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말오줌때와 말오줌나무는 잎이나 가지에서 말의 오줌 냄새가 난다고 여겨져 붙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어떤 냄새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향기로운 쪽은 아닐 것이라 짐작하게 된다. 이러한 냄새는 잎과 가지를 갉아먹거나 해를 끼치는 곤충과 초식동물이 가까이 오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며, 최근에는 식물들끼리 위험이나 스트레스를 알리는 신호 물질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말냉이, 말나리, 말털이슬도 이름에 말이 들어간 식물들이다. 여기서 말은 동물인 말(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단어 앞에 붙어 ‘크다’는 뜻을 더하는 접두어처럼 쓴다. 실제로 말냉이는 같은 집안 식물인 냉이보다 키와 꽃이 더 크다. 말나리와 말털이슬도 같은 분류의 식물에 비해 몸집이 큰 편이다. 식물뿐만 아니라 동물 이름에서도 말벌, 말매미와 말조개처럼 큰 경우에 말을 붙인다. 한편 ‘작다’는 의미를 더할 때는 ‘쇠’를 쓴다. 쇠물푸레나무, 쇠백로, 쇠박새, 쇠살모사 등이 사례다.


마가목도 말과 관련이 있는 나무다. 찬바람 속에서도 마가목의 겨울눈은 크고 붉어 생기가 느껴진다. 겨울눈 속에서 싹은 다가올 계절의 준비를 이미 마치고 봄이 오면 망설임 없이 새싹을 밀어 올린다. 이처럼 굳세게 돋아나는 새싹을 말의 이빨에 비유하여 마아목(馬牙木)이라 했고 이것이 지금의 이름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겨울을 견뎌내는 붉은 겨울눈과 봄을 향해 단숨에 나아가는 새순의 기세는 붉은 말의 이미지와 닮아있다. 새해 첫날 멀리 일출을 보러 서두르는 대신 집 근처 마가목의 붉은 겨울눈을 찾아보자.


<말채나무> <마가목 겨울눈> <말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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