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이름을 묻다 Ⅰ

이름을 부른다는 것

by 이른아침

식물을 마주할 때 이름을 불러보자. 처음 만난 사람과 이름을 주고받으면 서먹함이 가시고 이름을 부르면 한결 깊어지듯, 식물과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이름을 알아주고 불러주는 데서 시작된다. 이름을 모를 땐 식물은 그저 풍경의 일부일 뿐이지만 이름을 기억하고 부르는 순간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며 말을 걸어오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식물 이름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았다. 오랜 세월 곁에서 지켜보며 관계가 쌓인 끝에 만들어진 결과이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잘 자라는지,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를 살피던 누군가의 눈에 들어와 이름이 지어졌다. 그렇게 붙여진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며 지역의 경계를 넘어 널리 불리다가 고유한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식물이 견뎌온 시간과 그를 지켜본 사람들의 눈길을 마주하는 일이다.


부를 때 이름 속에 담긴 뜻을 안다면 식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고 더 다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 식물 이름의 유래와 배경을 밝히려 많은 이들이 노력을 해왔고 그 결과를 담은 연구서들이 꾸준히 발간되어 왔다. 그 가운데 나무 이름에 담긴 규칙을 체계적이고 흥미롭게 정리한 『우리 나무 이름 사전』(박상진 저, 441쪽)은 식물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박상진 박사는 이 책에서, 식물명은 실질적인 의미를 담은 ‘어근(語根)’과 그 앞뒤에 붙는 ‘접두어’와 ‘접미어’의 조합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어근만으로 된 것, 어근에 접두어나 접미어 중 하나만 붙은 것, 어근 앞뒤에 접두어와 접미어를 모두 붙인 것 등 네 가지로 나누었다. 나무에 국한된 설명이지만 그 원리를 풀까지 넓힐 수 있으며, 이 구조를 바탕으로 식물 이름들을 보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오직 어근만으로 이루어진 이름이다. 나무는 머루, 다래, 칡, 진달래, 철쭉, 으아리 등이며 풀은 벼, 쑥, 냉이, 머위, 둥굴레 등이다. 이처럼 군더더기 없이 불리는 이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식물들이다. 허기를 달래주던 나물이고 곡식이었으며 추위를 견디며 맞이한 봄날의 햇살을 함께한 꽃이었다. 산과 들에서 마주칠 때마다 긴 수식어를 덧붙여 부를 필요가 없을 만큼 우리 선조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식물들이다.


두 번째로는 어근 뒤에 접미어를 붙이는 구성이다. ‘나무’와 ‘풀’이나 그와 동일한 의미의 한자 ‘수(樹)’, ‘목(木)’, ‘초(草)’를 붙이는 구조는 우리 식물 이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나무 중에는 감나무, 단풍나무, 칠엽수, 회양목 등이며, 풀에서는 꿀풀, 토끼풀, 개망초, 익모초이며 이외에도 여러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병조희풀, 된장풀, 골담초, 인동초 등은 나무이지만 '풀'이나 '초'가 붙어있어 헷갈린다.


또한, 쓰임새를 고려하여 ‘나물’을 접미어로 붙이기도 한다. 산과 들에서 만나는 식물 중에 섭취 가능여부를 쉽게 판단하기 위한 의도이지 않을까 싶다. 참나물과 돌나물, 광대나물처럼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피나물이나 동의나물처럼 독성을 지닌 식물도 있으니, 나물이라는 이름만 믿고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된다. 솜나물, 장대나물, 등골나물처럼 지금은 먹지 않으나 이름으로 보아 옛날에는 먹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것들도 있다.


줄기가 뻗어 나가는 생태적 특징을 잡아내 인동덩굴, 으름덩굴, 환삼덩굴처럼 덩굴성 식물에 ‘덩굴’을 붙이고, 찔레꽃이나 영춘화, 메꽃, 상사화처럼 꽃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어 ‘꽃’이나 ‘화(花)’를 접미어로 더하기도 한다. 난초과에 속하는 식물들은 은난초, 새우난초, 복주머리란, 자란처럼 ‘난초’나 ‘란(蘭)’을 붙여 한 무리임을 보여주려고도 한다.


세 번째는 어근 앞에 접두어를 붙여 식물의 개성을 구체화한 경우다. 이때 접두어는 서식지, 크기, 색깔, 형태, 털의 유무, 냄새와 맛 등을 뜻하면서도 짧은 단어로 나타난다. 이들 접두어는 엇비슷한 식물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점을 분별할 수 있게 한 동시에 차이를 나타내 불러준 장치이다. 자연을 세심하게 살펴 이름으로 구별하고자 한 선조들의 관심과 지혜가 담긴 셈이다.


네 번째는 어근에 접두어와 접미어를 모두 붙인 경우다. 이렇게 하여 해당 식물의 살아가는 모습이나 고유한 성질을 잘 표현하려고 했다. 물오리나무는 이정표 삼아 5리마다 심었다는 오리나무에 비해 계곡 등 물이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습성을 반영한 이름이다. 좀깨잎나무는 깻잎을 닮은 잎의 크기가 작으므로 작다는 뜻의 ‘좀’을 더한 것이며, 긴병꽃풀은 꽃잎이 기다란 병 같은 풀이라는 뜻이다.


모든 식물명을 이 네 가지 틀 안에 억지로 담을 필요는 없다. 애초에 어떤 규칙에 따라 지어진 것이 아닐뿐더러 오래전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명을 받아들이거나 최근에는 외래어를 그대로 빌려온 이름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도 구조를 더듬어 이름의 뿌리를 찾아 살핌으로써 조금이라도 식물의 경이로운 세계로 다가서고 싶기 때문이다. 오늘도 식물 하나를 골라 이름을 불러보자.




식물 이름에 대해 욕심내어 담다 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식물 이름을 구성하는 부분 중 어근과 접두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핀 내용으로 2편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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