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이름을 묻다 Ⅱ

형태와 생태를 관통하는 식물명

by 이른아침

이전 글에서 식물 이름이 어근, 접두어, 접미어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졌음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식물명에서 실질적 의미를 지닌 어근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몇 가지 사례와 그 속에 담긴 뜻을 짚어보려고 한다.


전체적인 모양

이름만 들어도 생김새가 그려지는 식물이 있다. 층층나무가 대표적이다. 이름 그대로 ‘층층’이 식물명과 나무의 정체성을 잘 나타내는 어근이다. 무엇이 층을 이루는지 상상해 보자. 지금 층층나무 앞에 서 있다면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바로 가지다. 줄기 마디마다 사방으로 돌려난 가지들이 수평에 가깝게 뻗어 나가며 질서 있게 층을 이룬다. 봄에 흰 꽃이 피면 눈이 내려앉은 탑처럼 보이고, 가을에 열매가 검붉게 익어갈 때도, 겨울에 가지만 남아도 층을 이룬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 층을 만드는 식물도 있다. 층꽃나무와 꽃층층이꽃이다. 이름 속에 똑같이 ‘층’이라는 어근이 있지만 층을 이루는 대상이 층층나무와 다르다. 이들은 무엇으로 층을 쌓을까? 꽃이다. 줄기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꽃들이 촘촘히 무리를 지어 피며 마치 꽃다발을 층층이 쌓아 올린 듯한 인상을 준다. 나무와 풀로 분류되고 삶의 방식이 다른데도 층을 이루며 살아가는 지혜는 닮아있다.


잎, 꽃, 열매의 생김새

잎의 모양에 따른 이름이 있다. 잎자루 끝에 7개의 잎이 모여 달린 칠엽수, 새 깃처럼 좌우로 마주나는 잎이 한자 非(비) 자를 닮은 비자나무, 새순이 나오는 모습이 붓처럼 생긴 붓순나무 등이다. 풀에서는, 잎이 톱날처럼 생긴 톱풀, 잎이 손바닥 모양으로 퍼진 모양을 우산에 비유해 우산나물, 솔잎처럼 가느다란 잎을 가진 솔나물과 솔나리가 있다.


꽃에서 비롯된 이름도 많다. 연꽃과 백합을 닮은 꽃을 피우는 나무라고 하여 각각 목련, 백합나무라 하고, 꽃이 병을 닮아서 병꽃나무와 긴병꽃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꽃 모양에서 따온 이름은 나무보다 풀에서 많이 나타나며 그 가운데 별꽃, 붓꽃, 닻꽃, 나팔꽃, 투구꽃, 패랭이꽃, 족도리풀, 물레나물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꽃 모양이 무엇을 닮았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고 실제로 보아도 수긍이 간다.


열매에서 유래된 이름도 있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미선나무는 열매 모양이 옛날에 가례나 의식에 사용되었던 둥그스름한 부채를 닮아있고, 산딸나무는 산속 나무인데 딸기랑 비슷한 열매가 달려서 얻어진 이름이다. 골무꽃의 열매는 바느질할 때 손가락에 끼는 골무가 연상되며, 도둑놈의갈고리와 도깨비바늘은 열매가 옷이나 털에 잘 붙는 습성에 착안한 비유적인 이름이다.


이처럼 어근은 식물의 전체적인 외형을 나타내기도 하고 잎, 꽃, 열매의 생김새를 담기도 한다. 잎은 영양분을 생산하는 공장이고, 꽃은 가장 눈에 띄는 얼굴이다. 열매 또한 씨앗을 보존하고 퍼뜨리기 위한 손발이다. 이들 기관은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동시에 우리가 식물종을 구분할 때 고려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니 이 기관들의 모양을 관찰하고 특징을 따서 이름을 지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고 지혜로운 결과이겠다.


색깔, 맛이나 냄새

때로 식물이 갖는 색깔이나 냄새 같은 감각적 요소를 이름에 담기도 한다. 녹나무와 주목은 나무껍질의 빛깔에서 비롯되었으며, 붉나무는 가을에 붉게 물드는 잎을, 벌노랑이는 벌판을 노랗게 밝히는 꽃색을, 삼백초는 잎, 뿌리, 꽃 세 부분의 흰색을 가져와 이름으로 삼았다. 생강나무나 오이풀처럼 싱그러운 향으로 코끝을 자극하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누리장나무, 누린내풀처럼 피하고 싶은 냄새도 있다. 이에 비해 소태나무, 쓴풀, 고삼(苦蔘)에서 느껴지는 쓴맛은 배앓이하던 어린 내게 어머니가 건네신 익모초 즙의 강렬함이 떠오른다. 입안에 머금기조차 힘들던 그 맛이다.


쓰임새

익모초처럼 식물의 쓸모가 이름이 된 경우도 많다. 윷을 만들기에 적합한 윤노리나무, 잎이 크고 두꺼워 떡을 찌거나 싸기에 좋았던 떡갈나무, 뼈의 통증이나 골절에 효과가 있는 골담초 등으로 사례가 적지 않다. 또한 조리를 만드는 데 쓰는 조릿대, 복통을 멎게 하던 이질풀, 지혈제로 사용한 피막이 그리고 뿌리 즙으로 파리를 잡았던 파리풀 등도 용도에서 이름을 따왔다. 단순한 풀이나 나무가 아니라 약재나 생활 도구로 요긴하게 사용했던 우리 곁의 동반자였음을 말해준다.


살아가는 생태

겉모습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지켜보아야 알 수 있는 식물의 생태를 반영하기도 한다. 상록성으로 사철 푸르다는 특징에서 비롯된 사철나무, 밤이 되면 잎을 서로 맞대어 포개고 잠을 자는 수면 활동을 하는 모습에서 좌귀목(佐歸木)이라 부르던 것이 변해 자귀나무가 되었다.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라는 습성을 그대로 담은 양지꽃, 낮이 아닌 모두 잠든 밤에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 기생하는 생존 방식을 담은 겨우살이와 백양더부살이 등으로 다양하다. 이들 이름은 한순간만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낮과 밤이나 계절의 변화 그리고 식물 간의 관계를 세심하게 지켜본 관찰의 흔적이다.


지금까지 이름의 중심축인 어근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았다. 여전히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이 각양각색으로 달라 하나로 모아지지 않거나 어원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운 이름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의미가 직관적인 이름들은 그 자체로 식물의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고 명명의 배경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름을 들여다보면서,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수십 수백 년 전 선조들이 어떤 의미로 명명했는지를 추정하며 교감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식물을 관찰하면서, 그 이름을 지었던 옛사람의 시선과 나의 관찰이 일치하는지 가늠해 보자. 이것도 식물과 식물명을 마주하는 새로운 즐거움이다.


<층층나무> <층꽃나무> <꽃층층이꽃>
<닻꽃> <투구꽃> <족도리풀>
<미선나무> <산딸나무> <골무꽃>

많은 작가님들이 관심 가져주신 덕분에 3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 편에서는 식물 이름을 구성하는 부분 중 접두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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