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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Apr 09. 2024

새에게 부리는

입이고 손이고 도구다

부리가 하는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역할은 먹이활동과 관련된다. 먹이를 탐색하고 쪼고 부수고 사냥하고 다듬는다. 우리의 입술이나 이빨과 같다.  

   

부리는 촉감을 감지할 수 있는 촉각기관인 동시에 맛을 느낄 수 있는 감각기관이다. 촉감을 느끼는 수용기는 부리와 발에 많이 분포하며 맛을 느끼는 각인 맛봉오리(味蕾 미뢰)는 부리 끝부분에 퍼져있다. 이런 감각을 통해 부리에 접촉하는 물체를 민감하게 감지하여 질감을 확인하고 맛이 괜찮으면 먹이로 인식한다.

     

저어새가 바닷가에서 부리를 휘휘 저으며 먹이를 탐색하는 모습이 처음엔 무턱대고 휘젓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부리의 촉각과 미각을 모두 동원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부리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는 사정을 알게 된 이후로는 저어새의 먹이활동을 진지하게 지켜보게 되었다.

    

손과 같은 역할도 한다. 부리로 둥지를 틀고 나무에 구멍을 내고 물건을 조작하고 새끼에게 먹이를 준다. 또 깃털을 다듬는데 자기 깃털은 물론 서로의 깃털을 다듬어 주며 유대감을 키우고 구애도 한다. 그렇다고 부리가 늘 우호적이진 않다. 먹이와 영역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울 때는 사나운 무기도 된다.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하니 손을 넘어 망치나 칼 같은 도구라고도 할 수 있다.

    

부리로 움켜쥐고 후벼 파고 찢어발기고 비틀기가 가능한 건 구조가 특별하기 때문이다. 부리는 위턱과 아래턱으로 구성되는데, 포유류를 포함한 대부분의 척추동물은 위턱이 고정되어 있어 움직임에 제한이 있다. 이에 비해 조류는 위턱이 위아래로 움직인다. 움직이는 위턱과 아래턱은 부리를 자유롭고 재빠르게 움직이게 했고 다양한 역할을 가능하게 했다.

    

부리는 체온조절에도 관여한다. 새는 다른 종에 비해 체온이 높은데 다리와 부리처럼 털이 없는 부위를 통해 몸의 열을 내보낸다. 그래서 열대 지역에 사는 새는 부리가 상대적으로 큰 경향이 있다. 겨울에 날개 속에 부리를 넣는 행동은 부리로 발산되는 열 손실을 막기 위해서다.

     

부리 형태는 새마다 다르다. 먹이의 종류와 먹이를 탐색하고 섭취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씨앗을 먹는 새는 두껍고 짧으며 과일을 먹는 새는 큰 부리를 갖는다. 곤충을 잡아먹는 새는 가늘고 긴 편이며 물이나 바다 생물을 잡아먹는 두루미나 도요새는 더 길다. 오리류는 물이나 진흙 속의 먹이를 찾기 좋게 넓적하다. 매처럼 동물을 먹는 육식성 새는 끝이 날카롭고 윗부리가 아래로 휘었다.

     

부리는 진화론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남아메리카와 태평양에서 동식물의 표본과 화석을 채집하여 연구했는데 갈라파고스섬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부리를 가진 새를 수집해 왔다. 처음에는 각기 다른 종의 새로 보았으나 동료 조류학자 굴드의 도움으로 한 종류의 새임을 알게 되었고, 한 종의 새가 자연환경에 적응하면서 여러 종으로 분화(적응 방산)했을 가능성을 인식했다. 이후 학자들의 이어진 연구로 환경의 변화와 먹이에 따라 부리의 모양이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 자연선택의 사례가 되었다. 그 새가 핀치이며 ‘다윈의 핀치(Darwin's finches)’라고도 한다.

    

새들이 한창 둥지를 짓는 요즘이다. 까치가 둥지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면 먼저 나뭇가지로 얼기설기 엮어 틀을 만들고 진흙과 깃털을 깔고, 옆쪽에 드나들 정도로 작은 입구를 남기고 나뭇가지로 지붕까지 덮는다. 둥지를 나무고정시키고 나무 막대기끼리 얽어매어 태풍에 나무부러지고 쓰러져도 까치집은 끄떡없이 건재하니 신비롭기까지 하다. 모두 부리가 해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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