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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Oct 28. 2017

디지털 환경과 중국어의 궁합에 대해서 2편

한자에 내포된 의미와 편견

저번 포스트에서 중국어의 디지털 입력 방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면 이번엔 그 입력 방식을 통해 입력되는 내용에 대해 다뤄볼 생각이다.


그런데 그전에 이전 포스트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가는 게 좋을 듯하다. (이어가는 포스트이기에!)


1. 중국어는 그 언어적 특성상 타이핑하기가 비교적 어렵다. 한어병음(알파벳)에서 한자로 변환해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2. 그런데 타이핑은 지금의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주요한 입력 방식이다.

3. 때문에 입력 방식 부분에선 지금의 디지털 환경과 중국어 간의 궁합이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입력 방식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수단이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마지막에 덧붙이기도 했다. 만약 미래에 중국어까지 쉽게 입력할 수 있는 혁신적인 입력 기술이 개발된다면 입력 방식이라는 '수단'이 가져오는 문제는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그러면 결국에 중요해지는 건 화자가 손에 들고 있는 콘텐츠가 될 것이다. 더 이상 입력 방식의 한계에 이리저리 치일 필요 없이 손에 쥔 콘텐츠를 그대로 정보의 바다에 흘려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어로 생각(표상)되고 입력되는 콘텐츠는 디지털 환경과 어떤 궁합을 가질까?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선 중국어의 가장 근본적인 특징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한자는 표의 문자다."

중국어의 글자인 한자는 표의 문자로 각 글자마다 의미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国(국)은 나라를 의미하는 글자이며 火(화)는 불을 의미하는 글자이며 书(서)는 책을 의미한다. 각 글자마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표음 문자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글자인 한글의 각 글자엔 대표하는 의미가 없다. 'ㄱ', 'ㄴ', 'ㄷ', 'ㄹ' 등은 모두 소리 기호다. 의미는 소리 기호들이 조합되고 난 이후에서야 비로소 생겨난다.


그리고 이건 일반적으로 표의 문자의 글자가 표음 문자의 글자보다 정보량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얘기해서 우리는 국이란 글자보다 国(국)이라는 글자에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국가 혹은 나라라는 더 구체적인 의미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각각의 글자에 정보량이 많다는 이 특징은 중국어를 사용하여 콘텐츠를 생각해내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중국어에서 비롯된 콘텐츠와 디지털 환경과의 궁합을 따져볼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정보량이 많다. 다다익선이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참 좋게 들리기도 한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선 더 큰 정보량이 더 좋은 퀄리티를 보장하기도 한다. 더 높은 화질의 영화가 더 높은 용량을 가지는 것처럼.

중국의 유명 IT 브랜드들 상표

실제로 중국의 유명 브랜드 로고 중엔 한자를 활용해 만든 것이 많다. 한 글자에 내포된 정보량이 많은 것을 활용해 간단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로고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중국어를 아는 사람에게만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또한 한 글자에 담긴 정보가 많다는 건 그만큼 짧은 말로도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특히 이건 영어와 비교할 때 더욱더 큰 차이를 보인다.


数据 정보 data

电脑 컴퓨터 computer

冰箱 냉장고 refrigerator

技术 기술 technology


(한글은 표음문자인데도 중국어와 길이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중국과 같은 한자 문화권인 것에 그 원인이 있는 듯하다. 한자를 기원으로 하고 있는 단어들이 많다 보니.)


짧게 쓰면서도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건 이전 포스트에서 말한 중국어 입력 방식의 한계를 어느 정도 보완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장점이 있다면 반대로 단점도 있는 법.


첫 번째로 정보량이 많은 표의 문자라는 건 그만큼 외워야 할 게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포스트에서 주로 다뤄볼 단점은 외워야 할 게 많다와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번 포스트에서 다룰 내용은 중국어의 조금은 복잡한 단점이다. 글자 내에 들어있는 많은 정보량 하지만 만약 그 정보들이 그다지 좋은 것들이 아니라면? 내용이 별로인 영화라면 아무리 용량이 커서 화질이 좋더라도 별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표현을 하는 것과 동시에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도 이미 머릿속에서 언어를 통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언어는 우리의 모든 사고/표현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대해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끝이 곧 내 세계의 끝"이라는 명언을 하기도 했다. 언어는 단순 도구를 넘어 곧 우리의 세계를 정의하고 이루는 구성자인 것이다. 우리는 언어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마디로 우리는 언어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언어가 '별로'라면 어떨까? 답은 당연하다. 우리의 세계마저 '별로'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기에 언어 사용자들은 계속해서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매일매일이 급변의 연속인 지금 시기엔 더더욱 그렇다.


언어로부터 발생하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fire man을 fire fighter로 바꾸는 것, 살색을 살구색으로 바꾸는 것. 이와 같은 노력들이 언어를 바꿔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고자 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언어를 바꾸면 우리의 사고방식이 바뀌며 이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결국엔 세계가 변화하게 된다.


급변하는 디지털 시대, 언어 또한 시대에 맞춰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필요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중국어와 디지털 환경과의 궁합에서 어긋남이 발생한다. 중국어는 큰 정보량을 가진 만큼 빠르게 변화하지 못한다.


이전 포스트에서 중국의 간체자 사업이 중단되어 아쉽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은 한자를 간략화하는 간체자 사업을 한창 진행하다가 문화 손실, 상호 소통의 어려움 등의 문제가 생기자 사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문화 손실, 상호 소통의 어려움, 이것이 결국 중국어의 정보량과 관련되어 발생한 문제다.


먼저 문화 손실이다. 한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져온 글자다. 글자 하나하나에 아주 긴 시간 동안의 역사가 담겨 있다. 또 중국의 전통, 사고방식 등이 담겨 있다. 한 마디로 글자 안에 담겨 있는 정보량이 많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 인(人)은 획 두 개가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중국의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전부터 농업 사회였던 중국은 인간관계가 중요했고 이것이 글자에 묘사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정신은 관계를 중시한다는 关系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정보량이 큰 글자를 간체자 사업으로 이리저리 쳐내다 보면 자연스레 글자 안에 함유되어 있던 정보들도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동안 글자 안에 쌓여온 정보량들이 아까워서 함부로 쳐내기가 아쉬운 것이다.


그다음은 상호 소통의 어려움이다. 개개의 글자에 정보량이 많은 표의 문자라는 점에서 학습의 어려움이라는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문자를 바꾼다는 건 새로이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일매일 살아가기도 바쁜데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건 상당히 귀찮은 일일 것이다. 언어를 바꾸더라도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와 줄지 미지수다. 특히 넓디넓은 중국이기에 언어의 버전(version)을 관리하는 게 더욱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에는 정보량이 많다는 점 때문에 언어의 변화 속도가 비교적 더디다는 것이다. 그런데 웃긴 점은 정보량이 큰 문자이기에 더더욱 시대의 변화에 따른 업데이트가 시급하다는 점이다. 정보량이 많은 한자는 그만큼 강렬하게 우리의 의식을 감아쥔다. 그러니 아웃-데이트된 글자가 우리에게 끼치는 악영향이 더 클 수 있다.


사용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글자 몇 가지로 예를 들어보면 좋을 듯하다.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한자들

위와 같은 한자들은 사용자에게 성차별적인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분노, 노예, 질투와 같은 부정적인 한자에는 여성을 의미하는 女가 들어간다. 이로 인해 분노와 질투 같은 부정성을 띄는 감정을 연상할 때 여성이 결부되어 함께 떠오를 수 있다. 또한 '노예 노'자에도 여성을 의미하는 글자가 들어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경우로 용감하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에는 남성을 나타내는 男이 들어간다. 이것은 남자는 모름지기 용감해야 한다는 편견을, 그러니까 맨 박스라는 것을 형성해낼 위험도 갖고 있기도 하다.


물론 실제론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도라는 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달려있는 법. 글자 안에 여성을 의미하는 글자가 들어간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부정적인 의미와 여성을 결부시켜 연상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한자들은 표음 문자의 글자들보다 더욱더 강하게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단어들의 추상적 조합으로 형성된 의미가 아닌 구체적인 이미지로부터 비롯된 의미이기 때문에 더 쉽게 떠오른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중국어는 더욱더 업데이트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많은 정보량, 광범위한 사용 범위로 인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중국어를 업데이트해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상당히 어려운 조건을 가졌는데도 더 신경을 잘 써줘야 한다니. 중국의 언어학자들은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듯하다.

(또한 정권 유지를 위해 언어적인 수단을 많이 사용하는 공산당이기에 눈치도 봐야 한다.)


만약 이러저러한 이유로 업데이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중국어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드는 과정에 큰 걸림돌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모두가 '최신판'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아웃-데이트된 글자로 인해 편견 섞인 페미니즘으로 얘기하게 될 수도 있다.


편견 섞인 입맛을 가진다면 다양한 정보들이 부글부글 끓는 잡탕찌개와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적응하는 게 점차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그러면 이제 다시 처음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서 오늘의 얘기를 정리해보면 좋을 듯하다.

"중국어로 생각(표상)되고 입력되는 콘텐츠는 디지털 환경과 어떤 궁합을 가질까?"


일단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한자가 비교적으로 글자마다의 정보량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그 정보량이 많은 것에 따라 발생하는 장점과 단점에 대해 설명을 했다.


먼저 장점으로는 비교적 적은 글자로 많은 의미를 표현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글을 통해서든 이미지화를 통해서든 적은 노력으로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건 디지털 환경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타이핑하기가 조금 불편하다는 한자의 한 부분을 상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선 중국어에서 비롯된 콘텐츠가 디지털 환경의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보량이 많아서 학습이 비교적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과 언어의 업데이트 속도가 비교적 더딜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이 단점들은 서로 결합하여 사람의 사고 체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언어가 아웃-데이트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중국어에서 비롯된 콘텐츠가 디지털 환경과 궁합이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장점과 단점 모두 갖고 있지만 일단 눈에 더 들어오는 것은 하루 바삐 변해가는 디지털 환경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는 단점이다. 이건 정보의 부분에 있어 점차 국경이 해체되고 다양성이 폭증하는 시기에 발맞춰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더욱더 주의해야 할 듯싶다. 


물론 인간의 의식이 완전히 언어에 의해 지배되는 건 아니기에 충분한 학습을 통해 언어 내에 존재하는 편견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받아들이며 생겨나는 인식이라는 것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전 포스트에서 간체자 사업이 중지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것도 위의 문제 때문이다. 단순히 간체자가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쉬운 것은 아니다. 언어를 시대에 맞춰 바꿔줘야 한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사회에서 힘을 조금 상실하지 않았나 하여 더욱더 큰 아쉬움을 느끼는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이전에 간체자 사업이 한자를 보다 더 쉽게 만들기 위한 시도였다면, 지금은 언어를 보다 더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하는 시도가 이뤄졌으면 한다.


세계가 점차 다원화를 향해 나아가는 건 만리장성의 중국도 절대 막아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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