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 문자에서 디지털 문자로!
이번엔 중국의 디지털 환경과 중국어의 궁합에 대해 다룬다.
언어라는 건 인간의 의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인만큼 어떤 분야를 다루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주제라 생각한다. 중국의 디지털 환경을 구성하는 바탕, 중국어에 대해 알아보면 중국의 IT 분야를 더 탄탄하게 이해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중국어를 중국의 디지털 환경과 연결 짓기 전에 중국어 자체에 대해 먼저 간단하게 설명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을 절망시키는 언어일 것이다. 외워야 할 게 태산 같고 발음할 땐 성조를 생각하느라 온 얼굴이 베베 꼬일 것 같다.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실제로 중국어는 외국인이 배우기 어려운 언어를 뽑을 때 항상 상위권에 랭크되는 언어이다. 표의 문자이기 때문에 한자를 일일이 다 외워야 하며 한어 병음과 성조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문법은 다른 언어에 비해 비교적 단순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다.
심지어 외국인이 힘들게 보통화(표준어)를 배우더라도 각 지방마다 존재하는 사투리에 멘붕 당하기 일쑤다. 엄청나게 넓은 땅을 가진 만큼 사투리도 굉장히 다양하고 각 방언마다의 차이도 크다. 예를 들어 보통화에서는 숫자 10을 十(shi)라고 발음하고 숫자 4를 四(si)라고 발음하는데 광동 사투리에선 두 개 모두 si라고 발음한다. 그래서 밥 먹고 계산할 때마다 매번 헷갈린다.
또한 아예 중국어와는 다른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광둥어, 챠오샨어 같은 것도 있어서 보통화(표준어)를 배운다고 중국의 모든 곳에서 말이 통할 거라고 기대하는 건 조금 어려울 수 있다. (소수 민족 언어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그래서 중국 매체에서는 이런 발음 상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상 콘텐츠에 보통 중국어 자막을 다는 편이다. 한자를 병기하면 발음 차이 때문에 생기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론은 중국어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어려운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중국인들이 대단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물론 모국어이기에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근대화 시기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국어가 너무 어려운 탓에 중국의 발전이 늦어졌다고 보기도 했다. 어려운 언어 때문에 지식이 권력 계층에 독점되어 사회 발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근대화 이후 지식인들은 중국어의 어려움을 비판했으며 최대한 쉽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결과로 나온 것이 간체자와 한어 병음이다.
한국에서도 쓰는 기존의 한자를 번체자(繁体字)라 부르며 보통화에서 쓰는 비교적 새로이 구성된 한자는 간체자(简体字)라 부른다. 간체자는 쉽게 말해 번체자를 간단하게 만든 버전이다. 각종 규칙에 따라 기존 글자를 더 쉽게 기억하고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예를 들어 ‘나라 국’ 자를 쓸 때 우린 번체자로 國라고 쓰지만 중국에선 간체자로 国라고 쓴다.
(물론 대만과 홍콩, 기타 화교 지역 등에서는 여전히 번체자를 쓰고 있기도 하다.)
간체자 사업이 실행된 이후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한자들이 간체자화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문맹률이 상당히 많이 개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간체자화에 따라 생겨나는 문화 손실, 소통의 문제로 현재는 간체자 사업이 중단된 상태이다.
개인적으론 간체자 사업이 중단된 게 아쉽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오랜 역사를 가지고 넓은 범위에서 사용되는 언어인 만큼 새로운 시도에 대한 반발과 비판이 있는 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다음으로는 한어 병음이다. 한어 병음은 한자를 읽을 수 있는 발음 기호라고 보면 된다. 로마자 표기법을 쓰고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의 ‘나라 국’ 자 国의 한어 병음(발음)은 guó이다. (여기서 o 위에 있는 표시는 성조가 몇 성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보통화엔 총 4가지의 성조가 있다.)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은 저 글자를 ‘구어’라고 읽는 것이다.
(한어 병음 이전엔 주음 부호라는 것을 쓰긴 했지만 대만으로 그 소유권이 넘어감.)
한어 병음이 생기고 나서 중국어는 이전보다 더 표준화될 수 있었다. 발음을 표시하는 표준화된 방법이 생긴 것은 물론이요 로마자로 표기하다 보니 외국의 지명과 인명을 쓰는 게 보다 더 편리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한어 병음은 디지털 시대에 와서 중국어를 입력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 되었다.
이와 같은 문자 개혁은 근대화 시기와 1949년 신중국 설립 이후 적극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겉보기에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어렵다고 느끼는 중국어도 사실은 계속해서 파란만장한 개혁의 과정을 거쳐온 것이다.(개혁이 없었다면 지금보다도 더 어려웠을 수도..)
그러면 이제부터는 위와 같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온 중국어와 현재의 디지털 환경이 어떤 궁합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중국어의 디지털 입력법
언어는 소통을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 소통을 하기 위해선 일단 입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디지털 환경에서 언어를 입력하는 주요한 방법은 ‘키보드 타이핑’이라 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현재 중국인들은 주로 한어 병음이라는 로마 표기법으로 중국어를 타이핑한다. 아래와 같이 알파벳을 입력하면 그 알파벳에 해당하는 한어 병음(발음)을 가진 한자들이 선택지로 제시되는 방식이다.
‘guo’라는 알파벳을 입력하니 ‘guo'라는 한어 병음을 가진 한자들이 주루룩 선택지로 나타났다. 선택지에서 우선순위에 놓이는 한자들은 일반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거나 이전 글자와 조합이 잘 맞는 것들이다. 나름대로 설계가 잘 되어 있어서 아주 쓰임이 적은 한자를 쓰는 게 아닌 이상 보통 선택지에 내가 쓰고 싶은 한자가 뜬다.
그런데 어쨌든 알파벳에서 한자로 변환 처리를 해줘야 한다는 점에서 불편한 건 여전하다. 처음엔 알파벳 조금 쓰고 변환하고 또 조금 쓰다 변환하는 게 귀찮아서 아예 처음부터 다 알파벳으로 쓰고 한 번에 변환하려고 했다. 그런데 입력한 알파벳 값이 길어질수록 선택지의 정확도가 떨어졌다.
특히나 입력 과정 중에 이름과 같은 고유 명사가 있으면 심할 경우 한 글자씩 변환해줘야 한다. 예를 들어 내 한자 이름은 李俊雨(이준우)인데 매번 마지막 글자 雨(우) 때문에 한 번에 변환하지 못한다.
물론 변환 프로그램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애플의 기본 입력기의 경우 내 한자 이름에서 ‘yu(우)’를 지칭하는 글자로 ‘雨(비 우)’를 제시해줘야 하는데 자꾸 ‘宇(우주 우)’를 선택지로 제시해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李俊(이준)까지만 쓰고 그다음 雨(우)는 따로 한 글자를 써서 변환해줘야 한다.
물론 이런 문제는 언어 데이터 분석 기술이 진보하면서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파벳에서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금방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건 기술적인 진보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적 약속을 바꾸는 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언어를 입력하기 위해 일련의 변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디지털 환경에서 이점보다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최대한 간편하고 빠르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은데 부차적인 변환 과정이 걸림돌이 된다. 고속도로에 탔지만 톨게이트의 연속이다.
이런 타이핑의 어려움 때문에 중국인들이 음성 메시지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중국 사람들은 웨이신의 음성 메시지 기능을 아주 활발하게 사용한다. 텍스트 대화가 익숙한 한국과는 조금 다르다.
위의 화면에서 보이는 ‘누르고 말하기’ 버튼을 꾹 누르고 있으면 음성이 녹음되는 상태로 진입한다. 그리고 버튼에서 손을 떼면 그전까지 녹음된 음성이 상대방에게 보내진다. 보내진 음성 메시지는 화면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표시된다. 메시지 구름을 누르면 소리가 재생되고 구름 옆에 쓰인 숫자는 총 재생 시간이다.
중국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아예 음성 메시지로만 대화를 주고받는 경우도 흔하다고 한다. 길거리를 돌아봐도 스마트폰 마이크를 입에 대고 중얼중얼 거리는 사람이 참 많다. 자세히 보면 대부분이 웨이신으로 음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사람마다 음성 메시지 기능에 대한 선호도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넓디넓은 중국의 디지털 소통을 책임지는 웨이신에서 아주 눈에 띄는 곳에 음성 채팅 기능을 갖다 놓았다는 건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니즈가 그다지 높지 않은 기능을 저렇게 눈에 띄는 곳에 배치했을 리 없다.
(카카오톡도 설정 조작을 통해 음성 메시지 발송 버튼을 눈에 띄는 위치에 활성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디폴트 값은 음성 메시지 버튼 비활성화 상태라는 점.)
메신저의 입력 기능은 주요 사용자의 언어적 특성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타이핑이 비교적 귀찮다는 중국어의 특성은 중국에서 메인 입력 방식으로 텍스트와 음성을 병용하게 된 큰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한다. 만약 중국어도 한국어처럼 변환 과정 없이 쭈욱 써 내려갈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음성 메시지가 발달할 수 있었을까?
물론 이런 궁합의 어긋남으로 인해 중국의 자연어 분석 기술이 발전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편과 불만이 쌓이면 그건 그대로 니즈로 변환되기 마련이니까. (어쩌면 타이핑을 뛰어넘는 다음 세대 입력 방식을 발명하는 건 중국이 될 수도..)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타이핑이 매우 매우 주요한 디지털 입력 방식인 시대이다. 때문에 타이핑 시 변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중국어가 현재 디지털 환경의 어느 특정 방면과는 조금은 어긋난 궁합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뭐 지금 궁합이 안 좋다 하더라도 내일도 안 좋으라는 법은 없다. 모든 요소는 항시 변한다.
언젠가는 찰떡궁합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