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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Jun 04. 2020

다이어리 앱 모지또 제작기

Team Blender

이번에 이모지 다이어리 모지또를 출시했다. 멋진 팀원들과 함께 하며 배운 점이 참 많고 결과도 만족스럽다. 이 뿌듯한 감정 그대로 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후기를 남기려고 한다.



1. 만만치 않은 일기장


처음엔 앱 카테고리 중 일기장이 제일 만만해보였다. 하지만 기획에 들어가면서부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진입 장벽이 낮은 만큼 차별점을 갖추는 게 너무 어려웠다. 웬만한 아이디어는 이미 시장에 제품으로 나와있었다. 한 마디로 일기장 시장은 레드 오션이었다!


기존 일기장들은 어떻게 차별점을 잡았는지 파악하기 위해 시장 조사를 했는데 디자인적 요소가 눈에 띄었다. 무다, 이모로그 등의 일기장은 뛰어난 디자인으로 사용자의 이목을 사로잡은 듯했다.


그런데 기획자인 내 입장에선 우리 다이어리의 핵심 차별점으로 디자인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팀 내에서 내 존재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별점을 찾기 위해 여러 일기장들을 계속 살펴보며 페인 포인트를 조사했다. 눈에 띄는 일기장은 대부분 써봤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과정 중에 한 가지 느끼는 점이 있었다.


자발적으론 안 들어가게 되네


리서치할 때 외에는 자발적으로 일기장 앱을 켜는 경우가 없었다. 심지어 유료 앱도 마찬가지였다. 돈이 아까워서 쓸 만도 한데 막상 쓰려고 하니 귀찮았다.


내가 원래 일기를 안 쓰는 사람이라 그런가? 처음엔 이런 생각이 들었다가 점차 바뀌었다. 어디서 나온 자신감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난 아래처럼 불끈 다짐했다.


원래 일기를  쓰는 사람도
쓰게 만드는 일기장을 기획해보자!


만만치 않은 일기장 기획의 시작이었다.



2. 작은 노력으로 많은 보상을!


일단 나부터 생각해보았다. 왜 난 일기장 앱을 다운 받고도 쓰지 않았을까? 답은 '귀찮다'로 뻔했지만 조금 더 파고들 필요가 있었다. 왜 일기장 앱으로 일기를 쓰는 건 귀찮을까?


나는 크게 두 가지 부분에서 생각할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A. 투입되는 노력이 크다.
B. 기대되는 보상이 적다.


노력 대비 보상이 적기에 귀찮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가정을 하고 각각을 나눠서 고민해보았다.


A. 투입되는 노력이 왜 클까?
텍스트로 하루의 기록을 남기는 게 부담스럽다. 글 쓰는 건 고민을 필요로 한다.

B. 기대되는 보상이 왜 적을까?
입력한 값 그대로 결과가 나와서 재미가 없다. 노오력해서 일기를 안 쓰면 보상도 그만큼 적다.


이런 고민 후 나는 투입되는 노력을 줄이고 보상을 늘리는 방식을 고안해보았다.


A. 투입되는 노력을 줄이자!
텍스트 대신 이모지를 입력하는 방식을 택하자.

B. 기대되는 보상을 늘리자!
사용자가 조금만 입력해도 멋진 결과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말로는 쉬워 보였지만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는 건 어려웠다. 특히 기대되는 보상을 늘리는 부분이 프로젝트 내내 속을 썩였다.


그래도 멋진 팀원들과 지속적으로 리서치와 토론을 하며 조금씩 단서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힌트는 코로나 시국에 한참 유행하던 MBTI 유형의 심리 테스트에 있었다.



3. 코로나가 던져준 힌트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해서인지 한참 심리 테스트가 유행했었다. 몇 가지 문제를 풀면 그에 맞는 심리 유형을 알려주는 테스트들이 실검에 자주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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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들이 카톡이나 인스타에 공유한 테스트 결과들을 참고했다. 심리 테스트도 일기처럼 어느 정도 입력을 한 후 보상(테스트 결과)을 받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심리 테스트들을 직접 해보니 적은 입력으로도 꽤나 괜찮은 결과물을 받을 수 있었다. 결과물들은 보통 아래와 같은 형태였다.

타이틀에 주목하세요!

결과물에서 눈에 띄는 건 타이틀이었다. 대부분의 심리 테스트가 결과지에서 사용자를 무언가로 '정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학과, 동물 혹은 식물 등으로 다양했다.


"당신에게 추천하는 학과는 간호학과"와 같은 타이틀은 복잡한 심리 테스트 결과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고 이는 바이럴도 증폭시켰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해볼 수 있는 간단한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에 착안하여 일기장을 만들기로 했다. 사용자가 하루 동안의 감정을 이모지로 입력하면 위의 심리 테스트처럼 결과물을 보여주자는 식이었다.



4. 컨셉이 필요해


지금까지 우리가 참고한 심리 테스트처럼 우리에게도 컨셉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셉이 진입 장벽이 낮은 일기 시장에서 차별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컨셉을 가져갈까 고민하던 중 작년에 중국 여행 갔을 때가 떠올랐다. 여행 중 중국 친구 한 명이 힙한 술집을 소개해준다고 해서 같이 갔는데 독특한 바텐더가 있었다.


그 바텐더는 하루 동안 내가 느낀 감정을 말해주면 그거에 맞는 칵테일을 타준다고 했다. 그래서 그 날의 감정을 하나하나 말하고 칵테일을 받았는데 뭔가 묘하게 힐링이 됐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이거 활용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었다. 일기장과도 잘 맞고 이전부터 술이 치료제(힐링)의 메타포로 쓰인다는 점도 있었다.

(실제로 찾아보니 칵테일의 유래가 약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래서 칵테일 컨셉을 우리의 일기장과 결부하여 발전시켰다. 하루 동안의 감정을 앱에 입력하면 가상의 바텐더가 그 날에 알맞은 칵테일을 타준다는 컨셉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가상의 바텐더를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가 고민이었다. 팀원들과 바텐더 캐릭터와 관련해 몇 가지 논의를 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A. 무성( 无性) 캐릭터로 만들자.

앱 디자인 외에 캐릭터를 추가적으로 그려야 하는 건 디자이너에게 부담이었다. 어디까지나 사이드 프로젝트인 만큼 업무를 최소화해야 됐다. 그래서 성별에 따라 하나씩 만들 필요가 없는 하나의 무성 캐릭터를 만들기로 했다.


B. 비(非)인간 캐릭터를 만들자.

일단 무성의 인간 캐릭터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 또 요즘 인기 많은 캐릭터를 알아보기 위해 카카오 이모티콘 샵을 살폈는데 대부분 비인간형이었다.


C. 콘셉트와 관련 있는 캐릭터를 만들자.

비인간형이라면 동물을 해야 하는 걸까? 고민했는데 바텐더하면 딱 떠오르는 동물이 없었다. 그래서 바텐더와 관련된 소재를 찾던 중 칵테일 쉐이커를 발견했다. 쉐이커를 캐릭터화 하면 콘셉트와도 연결되고 좋을 것 같았다.

칵테일 쉐이커

D. 중립적인 색상의 캐릭터를 만들자.

바텐더 캐릭터는 사용자가 입력한 가지각색의 이모지를 받아 칵테일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사용자에게 특정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 중립적인 색상을 가져야 했고 그래서 흰색을 캐릭터의 색상으로 골랐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결론을 통해 캐릭터 디자인을 해서 나온 게 '모지또(mojito)'다. 칵테일 모히또에서 따온 이름인데 앞에 moji가 붙어 있어서 이모지 다이어리 앱 이름으로 찰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모지또예요!

이름과 생김새가 정해진 후엔 간략한 스토리도 지어보았다. 제대로 된 이야기라 하기엔 민망할 정도이지만 구색은 맞춰보았다.

모지또는 감정을 재료로 칵테일을 만드는 요정이에요.
귀엽고 장난기가 많지만 칵테일을 만드는 실력은 최고랍니다.
감정을 전해주면 모지또는 하루를 돌아볼 수 있는 멋진 칵테일을 만들어줄 거예요.
그러니 순간순간의 감정을 마음속에만 묵혀두지 말고 모지또에게 전해줘보세요!

- 모지또에 대해서 中



5. 재미 그리고 또 재미


대략적인 구상과 콘셉트가 잡혔으니 이제 구체화할 시기였다.


하루의 감정을 전해주면 모지또가 칵테일을 타주는 다이어리 앱


우리의 앱을 설명하는 위 문장은 두 개의 파트로 나뉘었다.


A. 하루의 감정을 전해주면

사용자의 이모지 입력(노력)이 필요한 부분


B. 모지또가 칵테일을 타주는 다이어리 앱

사용자의 입력에 따른 결과물을 보여주는 부분


앞서 말했듯 우리는 A에서 투입되는 노력을 최소화하고 B에서 기대되는 보상을 극대화하고자 했다.


우선 A 파트에서 투입되는 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른 일기장들을 살펴보았다. 무다, 이모로그 등 간편하게 이모지를 입력할 수 있는 앱들이 많았는데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이모지 입력으로 하루를 기록하는 건 편하긴 했지만 한 번에 이모지를 하나밖에 입력할 수 없어 답답했다. 우리는 하루에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데 하나의 이모지만 입력하는 건 좀 아쉬웠다.


그때 우리가 발견한 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라이브 그리고 젠리에서 보이는 감정 표현 기능이었다. 사용자는 하트(이모지) 버튼을 마구 눌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페이스북 라이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연타할 수 있는 기능이 재밌었다. 여러 번 누른다고 뭐 딱히 크게 달라지는 점은 없었지만 그냥 재미가 있어서 좋았다.


그래서 우리도 사용자가 자신이 느낀 감정을 마음껏 누를 수 있도록 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이모지를 마구 누르면 아래의 이미지처럼 모지또 안으로 우수수 떨어지게 했다.

이모지를 눌러봐요!

기존 일기장 앱과 달리 감정을 마구 입력할 수 있게 하니 더 재미있었다. 또 진동 피드백을 주니 더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렇게 재미 요소가 들어가니 의도한 대로 투입되는 노력이 줄어드는 느낌이 났다.


그러면 이젠 보상이 주어지는 B 파트가 문제였다. 심리 테스트 결과처럼 칵테일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어려웠다. 어떤 로직으로 사용자에게 칵테일을 보여줄 건데?


일단 사용자가 입력한 이모지들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모지를 입력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 앱을 살펴보다 조색 파레토 앱(Paleto)을 찾게 됐다.


조색 앱에선 여러 색상을 혼합하면 어떤 색이 나오는지 알려주는 기능을 제공했다. 해당 앱에서 제공하는 조색 기능을 우리가 잘 활용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색 앱 Paleto

각각의 이모지마다 고유한 색상값을 갖고 있으니 위의 기능을 활용하면 색 조합 또한 가능할 것이었다. 우리는 사용자가 입력한 이모지들의 색을 혼합해 그것과 매치되는 칵테일을 형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칵테일 종류를 찾아가며 칵테일 리스트를 구성해 스프레드 시트에 올렸다. 각 칵테일의 이름, 색상은 물론 어울리는 잔 타입까지 설정했다.

칵테일 리스트 中

- 사용자가 이모지들을 입력하면 색상을 혼합하고

- 혼합된 색상과 유사한 칵테일을 찾아 매치한다.


위의 흐름으로 사용자에게 칵테일을 제공해주는 로직을 그렸다. 이렇게 하면 사용자는 자신이 입력한 이모지와 연관된 칵테일을 받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결국 사용자는 이모지를 입력하고 다음과 같은 결과 화면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모지또가 준비한 칵테일!

결과 페이지의 상단에선 이모지 입력에 따라 매칭 된 칵테일을 보여준다. 칵테일은 사용자의 하루를 하나의 소재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아래에선 사용자가 입력한 감정들이 표시된다. 폰을 이리저리 흔들면 그거에 맞춰 이모지들이 굴러다니게 해놓았다.


(이모지들끼리 부딪히면 진동 피드백이 나도록 해서 제법 귀여웠다.)


그 아래엔 추가로 포춘쿠키처럼 모지또의 한마디를 준비해보았다. 나름의 도전이었는데 콘텐츠를 짜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콘텐츠 기획자들은 참 대단한 것 같다..)


가장 아래 부분엔 텍스트를 입력하는 기능이 있다. 아무래도 일기장이니 텍스트 입력 기능은 꼭 필요했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글자 제한은 200자로 두었다.


여러 고민과 수많은 결정 번복 그리고 팀원들의 고생을 통해 나온 화면이었는데 꽤 괜찮게 나왔다. 물론 개선의 여지는 분명히 있지만 초기에 목적으로 한 바는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보았다.


일단 이모지를 입력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풍성한 결과를 얻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칵테일이 만들어지는 재미, 이모지들이 또르르 굴러다니는 재미. 매력이 존재하는 화면 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재미를 추구할 지점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했다. A와 B 화면을 잇는 중간 과정을 컨셉과 연결지어 재밌게 풀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바로 쉐-킷 기능이었다.

쉐킷 버튼을 눌러주세요!

이모지 입력 화면에서 사용자가 쉐-킷 버튼을 누르면 사용자가 직접 섞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아래처럼 팝업이 뜨고 폰을 흔들면 쉐킷이 진행되는 식이었다.

쉐킷 쉐킷

휴대폰을 흔들면 마치 진짜 이모지들을 섞는 것처럼 진동 피드백이 오도록 했다. 많이 흔들 필요는 없고 두세 번 흔들면 사용자는 쉐킷을 완료할 수 있었다.


애플의 탭틱 엔진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생동감이 들었다. 또 컨셉도 일관적으로 지켜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래서 결국 어찌어찌 기존에 목표로 했던 A, B 파트의 목표를 달성하긴 했다.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보람이 컸다. 아직 개선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의미 없는 걸 만든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앱은 충분히 Fun, Cool, Sexy했다!



6. 완성 그리고 출시..


앱을 완성하기까지 참 다사다난했다. 앞서 설명한 기능들을 구현하기까지 수많은 번복이 있었고 이로 인해 팀원들이 참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팀원들은 욕심 많은 기획자의 니즈를 매번 기대 이상으로 구현해주었다. 그래서 참으로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앱 출시일이 다가오자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다. 팀원들이 이만큼 고생해주었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출시 전날엔 잠도 설쳤다.


그런데 평가도 결국 성장의 거름이 될 테니 지금 당장은 즐기기로 했다. 나중에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모지또 오답노트를 써볼 생각이다.


글이 좀 길어졌는데 최근 아이패드 광고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모지또 식으로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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