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Woo Lee Feb 06. 2018

중국 IT 리더들의 리더십, 부능(赋能)

권위주의적 관료제에서 벗어나기

알리바바의 마윈 그리고 텐센트의 마화텅 두 CEO가 최근 강조하고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부능(赋能)이다. 부여할 부(赋)자에 능력 능(能)자를 더한 단어다. 그대로 말풀이를 하자면 능력을 부여하다가 된다. 이것만 봐선 무슨 뜻인지 잘 감이 안 잡힌다. 바이두의 도움을 한 번 받아보자.

부능의 가치를 역설하는 중국 IT계의 두 리더, 마윈-마화텅

부능(Empowerment)

부능은 리더가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권위주의적 수직 구조가 아닌 수평적 조직 구조로 구성원들이 업무에 대해 보다 더 주체성을 갖게 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한다.


사실 그다지 신선한 내용은 아니다. 수평적 조직 구조를 도입해 사원들의 주체성과 적극성을 끌어올린다. 우리는 이미 이런 말을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많이 들어본 것과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사회엔 수평적 조직 구조에 대한 신화가 가득하지만 그걸 실제로 경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선 어떤 일을 하려면 수없이 많은 상부의 승인을 거쳐야 하며 사사건건 개입하는 꼰대들에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일도 수두룩 빽빽이다.


물론 수직적 조직 구조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전에 시장이 비교적 단순했을 땐 자원과 권한을 한곳에 집중시켜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빠른 속도로 복잡하게 변화하는 지금의 시장 환경 속에서 수직적 조직 구조는 잘못된 선택을 내리기 쉽다.


많은 승인을 거쳐야 한다는 게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업무 처리 속도가 느려지는 건 물론이며 프로젝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태클을 걸기도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멋진 아이디어로 시작한 기획이 최종 결과물에선 완전 이상한 괴물의 형상을 띄게 되기도 한다.(갤럭시 S5라던가..)

명품 디자인, 갤럭시 S5

그래서 요즘엔 대기업에서도 수평적 조직 구조에 대해 배우기 위해 선진 기업에 사원들을 파견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파견을 다녀와도 달라지는 건 그렇게 많지 않다. 왜냐면 회사 구조가 바뀌기 위해선 사원이 아니라 회사의 리더가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부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에선 리더들이 수평적 조직 문화 만들기에 앞장선다. 마윈과 마화텅을 비롯한 IT기업의 수많은 CEO들이 부능의 가치에 주목하며 탈-권위주의를 향해 나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부능의 가치에서 강조하는 덕목 중 하나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리더는 자신이 이끄는 집단의 평균 성장 속도보다 더 빠르게 성장해야 한다."


부능 리더십에선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 않는 리더에겐 집단을 이끌 자격이 없다고 여겨진다. 리더의 입장에서 보면 독소 조항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중국의 많은 IT 리더들은 이 부능의 리더십을 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리더들은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무지개 빛깔의 구성원들이 서로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수평적 플랫폼을 구축해줘야 하는 것이니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부능의 리더십을 가진 리더는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한다.


(사실 이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들의 권위는 그대로 쥐고 있으면서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주체성을 갖길 바라는 건 정말 못된 심보다. 이런 못된 심보를 버리지 않는 이상 조직의 구조가 바뀌는 일은 없을 거다.)


이와 같이 리더들이 솔선수범하여 부능을 외치고 있다 보니 그만큼 효과가 나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중국의 많은 IT 기업들이 마윈과 마화텅의 부능 강조에 따라 수평적 기업 문화 조성에 힘쓰고 있다.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구성원들의 주체성을 북돋아주는 리더들이 점차 더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구성원들이 조직 내에서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결과로도 이어질 것이다. 특정 업무에 대한 자신의 재량권과 영향력을 확인한 구성원은 성취감을 느끼게 되며 성장을 추구하게 된다. 더 많은 성취를 위해 자신의 잠재 능력을 점차 더 발굴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기업 내에서 부능 가치가 잘 구현된다면 개개인은 조직 내에서 작은 CEO로서 주도적으로 회사의 자원을 활용하여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리더 혹은 회사에게도 참 좋은 일이다. 개인은 더 이상 회사의 소모적 부품이 아닌 동료로서 함께 성장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속 가능한 성장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부능의 가치가 단순히 기업 안에서만 작용하는 게 아니다. 부능은 기업 내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뛰어넘어 기업들 간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가치다. 부능은 기업들 간의 관계를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재구성한다.


시장마다 리드하는 기업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삼성, 현대, 네이버, 카카오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런 기업들은 더 많은 자원과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시장에서 거인 역할을 한다. 이 거인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저 거인들에게 달린 기업들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에서 거인은 바로 알리바바와 텐센트다. 모바일 페이(결제 방식)를 꽉 잡고 있는 슈퍼 거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거대한 돈줄기와 정보줄기(빅데이터)를 잡고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이들의 행보를 지켜보면 중국의 전체적 행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위의 두 기업이 강조하고 있는 게 부능 가치를 기업 간의 관계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시장 내 구성원인 각 기업들이 주체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의 리더들이 수평적 플랫폼을 만드는 것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건 크게 2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1. 리더 기업들은 시장 내의 다른 기업들과 수평적 동료 관계를 맺어야 한다.


2. 리더 기업들은 시장 내의 다른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해줘야 한다.


쉽게 말해 대기업이 혼자 다 해 먹는 시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부능의 가치 아래에서 리드하는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과 넓은 시야를 활용해 다른 기업들의 성장을 지지해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줘야 한다.


알리바바와 텐센트의 모바일 페이 플랫폼이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두 기업의 주도 하에 모바일 페이 플랫폼이 확대되자 기업들은 보다 더 사업하는 게 쉬워졌다. 고객들이 더 쉽게 지불할 수 있게 된 건 물론이며 기업들은 모바일 페이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정보들을 활용해서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모바일 페이 플랫폼 웨이신페이-알리페이

이와 더불어 모바일 결제 플랫폼을 제공하는 알리바바와 텐센트도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각종 거래 수수료는 물론이며 결제 정보가 쌓이다 보니 활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괜히 시가 총액 500조 원 이상의 기업이 된 것이 아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의 시가총액

그러니까 윈-윈 구조인 셈이다. 게다가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자신들이 제공한 플랫폼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새로운 기회에 투자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을 관찰하다가 잘 될 것 같으면 다가가 너 내 동료가 되지 않을래라고 하며 손을 건넨다.

(조금 잘 되는 사업이 있다 싶으면 고대로 베끼고 규모의 경제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


이런 선순환 구조가 거듭되다 보면 또 다른 거인들도 탄생하게 된다. 우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디디 추싱이 대표적이다. 디디는 텐센트의 지원을 받고 어엿하게 중국 IT계에서 내로라하는 거인이 되었다. 그래서 디디 또한 부능의 가치에 대해 역설하고 자신 또한 리더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중국의 일상 교통을 책임지는 디디

그 일환으로 디디는 이번에 공유 자전거 시장에서 공유 자전거 플랫폼을 내놓았다. 해당 플랫폼에선 다양한 기업들이 공유 자전거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디의 플랫폼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면 디디의 사용자 혹은 자원을 쉽게 끌어올 수 있기에 중소기업 입장에선 아주 땡큐인 셈이다.

(최근 이 플랫폼 때문에 공유 자전거 시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디디의 공유 자전거 플랫폼, 다양한 브랜드 서비스 제공

또한 해외 진출 시에도 디디는 부능의 가치를 품으려 한다. 우버가 글로벌 진출할 때 자기가 직접 사업을 하는 반면 디디는 현지의 기업들(우버의 현지 라이벌)에 투자 혹은 협력하는 방식으로 해외에 진출한다. 이런 디디의 전략에 최근 우버가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우리는 함께 해요, 우버 몰아내요

중국에서 이렇게 부능의 가치가 주목받는 이유는 그 효과가 실제로 여러 차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점차 복잡해지는 시장에서 중국의 리더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장이 너무 복잡하니까 내가 모르는 부분들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결국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없어."


리더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없게 됐으니 보다 더 구성원들에게 의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의지를 더 제대로 하기 위해선 구성원들이 주체성을 갖도록 힘을 주어야 한다. 말 그대로 힘을 부여하는(Empowerment) 것이다. 힘을 부여받은 구성원들은 성장하게 되고 결국엔 리더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런 부능의 가치가 있다고 중국의 업무 환경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순 없다. 수직이냐 수평이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일단 중국 IT 회사들은 엄청난 업무 시간을 자랑한다. 아예 회사에 기숙사를 만들어 거기서 먹고 자며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공동체 생활을 했던 사회주의의 영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어쨌든 부능은 복잡 다변화하는 시장에 맞는 가치라 생각된다. 실제로 일이 벌어지는 곳과 먼 곳에 있는 사람의 승인만 바라보고 있는 건 요즘 시대에 너무 위험하다. 리더는 모든 일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이 잘 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구성원들의 성장을 믿어줘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리더 또한 끊임없는 학습하고 성장해야 한다.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자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려면 깊고 넓은 시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구성원들의 주체성을 끌어올려 성장시키기 위해선 종합적인 판단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구성원들 또한 자신의 역량을 적극적으로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전처럼 타성에 젖은 것처럼 행동해선 부능의 가치가 활성화된 조직에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리더가 제공하는 자원을 활용해서 자신이 어떤 걸 더 할 수 있는지 알아내야 한다.


이와 같은 부능의 가치가 보다 더 활성화되면 시장 자체가 보다 더 탄력적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변화에 대해 시장의 기업들은 각기가 주체성을 갖고 셀 단위로 대응한다. 안 그래도 다사다난한 중국 시장이 더 빠르고 복잡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포스팅하는 입장에선 부담도 되고 기대도 된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을 한 마디 남기고 이번 포스트를 마무리하려 한다.


한국에선 꼰대란 말이 유행할 때 중국에선 부능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끄읕

매거진의 이전글 중국의 새해를 달구는 IT이슈, 라이브 퀴즈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