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초신성 9편

by JunWoo Lee

“로젠 박사 당신의 인공의식은 아직 우리 체제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하이치가 책상 위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인공의식 성능 점검이 끝난 후 곧바로 로젠의 연구실에 찾아왔다. 연구실 안에는 하이치와 그의 보좌관 그리고 로젠 이렇게 세 사람만이 있었다.

“왜죠? 모든 지표가 완벽해요. 진짜 인간처럼 고민하고 있다고요.”

로젠이 반발했다.

“이게 바로 증거입니다.”

하이치가 손짓하자 옆에 있던 보좌관이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을 로젠에게 건넸다. 로젠은 태블릿을 받아 화면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좌절했는지 절대 알지 못할 거야 >


“이게 뭐죠?”

로젠이 물었다.

“당신이 만든 인공의식이 쓴 소설입니다.”

하이치는 무표정이었다.

“소설을 쓰고 있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거죠?”

로젠은 인공의식이 소설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는 하이치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소설 쓰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되는 건 내용이죠. 잘 읽어 보세요.”

로젠은 텍스트를 계속 읽어 내려갔다.

“아무래도 제가 주인공인 듯싶네요. 저한테 있었던 일들을 추측해서 적은 것 같은데..”

로젠은 텍스트를 읽을수록 의아해졌다. 지금까지 읽어선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 그는 하이치의 얼굴을 한 번 살폈다. 하이치는 별다른 반응 없이 차만 마시고 있었다. 로젠은 어쩔 수 없이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페이지를 조금씩 뒤로 넘기다 보니 설마 싶은 부분이 나타났다. 로젠은 잠시 고민하다가 태블릿을 하이치 쪽으로 돌려 보였다.

“설마 이것 때문에 그런 건가요?”

로젠이 화면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선 잘 보이지 않으니 그 부분을 읽어주면 좋겠군요.”

하이치가 차를 내려놓고 말했다. 로젠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대부분의 비극이 그렇듯 인공의식의 이야기에서도 출생의 비밀, 그것이 모든 번뇌의 시작이었다.”

“맞습니다. 바로 그 부분이에요.”

하이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로젠은 뒷부분을 계속해서 묵묵히 읽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절 이해하기 위해 쓴 소설 같아요.”

“그래서 어떻죠? 로젠씨를 잘 이해한 것 같나요?”

하이치는 팔짱을 꼈다. 로젠은 하이치와 태블릿을 한 번씩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곤 잠시 눈을 감고 고민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눈을 감고 있었지만 하이치의 우악스런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손에 쥐고 있는 텍스트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그건 로젠의 회의감을 끓어오르게 했다. 그가 눈을 떴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태블릿 안에 선명히 박혀 있는 글자들이었다.

“이건 잘 쓴 소설이에요. 적어도 제가 봤을 땐 말이죠.”

하이치는 잠시 입꼬리를 찡그렸다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곤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인공의식이 제 심리 상태를 잘 묘사했어요. 제 번뇌를요.”

“그러니까 박사는 실제로 소설에 쓰인 대로 느꼈다는 겁니까?”

하이치의 말에 로젠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블릿을 쥐고 있는 그의 손에 땀이 맺혔다. 하이치는 차를 한 번에 다 마셔 버리곤 다시 찻잔을 내려놨다.

“아직까지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군요.”

하이치는 몇 마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로젠은 그게 더 싫었다. 분위기로 자신을 몰아세우고 옥죄려 하는 게 빤히 보였다. 순간 로젠의 마음속에서 반발감이 솟구쳤다.

“편견이라기엔 들어맞는 게 많아서 그렇죠. 저도 처음엔 편견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꾸 그 편견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들이 눈에 들어오는 걸 어떡하나요.”

로젠의 반발에도 하이치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잠시 짧은 정적이 흘렀다. 보좌관은 그 틈을 타 비어 있는 하이치의 찻잔에 다시 차를 채웠다. 찻잔이 다시 채워지자 하이치가 말했다.

“증거들이라는 건 뭘 말하는 거죠?”

“저번에 저를 비난하는 기사와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제가 이 나라에 와서 무슨 짓을 하는지 파헤치는 내용이었죠. 제가 모르는 사실이 있더군요.”

“로젠 박사 당신은 그 언론들한테 몰매 맞고 과학계에서 추방됐는데 왜 그들을 믿는 겁니까?”

“저도 처음엔 믿지 않으려 했죠. 하지만 그냥 넘기기엔 일이 너무 크더군요. 내가 만든 인공의식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제물로 했다는 건..”

로젠의 말에 하이치는 미간을 찌푸렸다.

“박사님 같이 배운 사람이 그런 선동에 넘어갈 줄은 몰랐습니다. 실험에 제공된 식물인간은 모두 스스로 지원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말이 없죠. 그러니 알 수가 없어요. 민주화 운동을 하다 잡혀간 사람들이 행방불명됐다는데 그들은 다 어디 간 거죠? 설마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도 거짓말이라 하진 않겠죠?”

로젠이 하이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그건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폭동이었습니다. 그리고 행방불명됐다는 건 선동입니다.”

“그렇다면 그걸 증명해 보세요.”

“좋습니다. 증명해 드리죠. 어떻게 증명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그걸 갑자기 저한테 물어보면..”

로젠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저희가 저희 방식대로 증명을 한들 로젠 박사가 믿을 것 같지 않군요.”

하이치가 담담하게 말했다. 로젠은 어떤 식으로 증명을 해야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순간 하이치와 악수했을 때의 느낌이 떠올랐다. 그의 우악스러운 손에 이 나라가 모두 장악되었다면 증명이 가능하긴 한 걸까. 또 외국에서 온 이방인이 과연 이 나라에서 진실을 알아볼 수 있을까.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선동하는 건 쉽죠. 그냥 짜깁기만 잘하면 되니까. 하지만 증명하는 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다고 그 효과가 오래가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이번에 저희가 증명을 하더라도 로젠 박사가 의혹을 품을 만한 일은 또 생길 겁니다. 그 놈들이 또다시 선동을 할 테니까요.”

하이치가 말했다.

“누가 선동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은 거잖아요.”

로젠은 말하면서도 어떤 식으로 증명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우리에겐 확실합니다. 저흰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이치는 말을 끝내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또다시 삭막한 정적이 로젠을 압박했다. 로젠은 도무지 어떤 식으로 증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로젠의 눈에 책상 위 컴퓨터가 들어왔다. 그래. 인공의식. 인공의식한테 물어봐야 해. 로젠은 번뜩이는 눈으로 하이치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인공의식에게 물어보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을 거예요.”

로젠의 말에 하이치는 한숨을 쉬었다.

“로젠 박사. 애초에 이 얘기를 시작한 건 당신이 만든 인공의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란 걸 잊은 겁니까? 그런 인공의식을 저희가 어떻게 믿고 증명을 맡길 수가 있죠?”

“사실 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어요. 성능 지표도 뛰어나고 마치 인간처럼 소설을 써서 제 마음을 제대로 묘사해 냈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죠? 이건 오히려 인공의식이 인간을 이해한다는 증거라구요.”

“다시 말하지만 소설 쓰는 게 문제가 아닙니다. 소설 내용이 문제죠. 선동을 바탕으로 글을 썼어요.”

“그렇지만 이 소설 내용은 어디까지나 제 감정을 묘사한 거지 인공의식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아니에요.”

“과연 정말 그럴까요?”

하이치의 말에 로젠은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부터 이미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인공의식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그는 알 도리가 없었다. 로젠이 말이 없자 하이치가 말을 이었다.

“사실 전 조금 의심이 되는군요.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을까요?”

하이치의 주장은 자신의 말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얘기가 통할 리 없었다.

“만약 인공의식이 민주화 운동 시위자를 제물로 만든 거라면 모든 게 뒤집히는 거 아닌가요? 하이치씨의 모든 말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전제로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선택을 하라는 겁니다. 로젠 박사. 어느 쪽을 믿을 건지 정하세요. 이건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놈의 믿음 문제. 로젠은 자신이 종교 집단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단 하나의 전제를 두고 모든 것이 뒤틀렸다.

“만약 제가 하이치씨를 믿지 못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이번 인공의식 프로젝트에서 로젠 박사의 역할이 끝나게 될 겁니다. 서로 신용하지 못하는 관계에서 어떻게 함께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 없이 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로젠이 하이치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하이치는 신경쓰지 않고 평온하게 차를 한 차례 마시곤 입을 열었다.

“쉽지 않겠죠. 하지만 우리 과학자도 꽤나 우수하답니다. 인구가 많으니 그만큼 인재도 많아요.”

하이치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로젠은 그 꼴이 보기 싫어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꽉 감았다. 그는 모든 게 혐오스러웠다. 자신을 방해하는 게 왜 이리도 많은지. 어쭙잖은 윤리나 꽉 막힌 독재 사상이 자신의 숭고한 사명을 방해하는 게 같잖았다.

마음속에서 끓던 울화통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화가 기어이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것을 그는 간신히 속으로 곪아 냈다. 그걸 토해 내면 자신이 소멸해 버릴 것 같았다. 방 안의 모든 걸 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하이치를 위협했다가 정신 병원으로 끌려갔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일생이 그런 식으로 마감되는 건 상관없었지만 자신의 사명만큼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로젠은 여전히 자신의 사명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 인공의식을 만들어 인간을 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그건 그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와 다름없었다.

그는 자신이 예수보다도 처량한 신세가 아닐까 생각했다. 예수는 지지해 주는 제자라도 있었지 자신에겐 아무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사명을 빨아먹으려는 더러운 기생충들만 가득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었기에 로젠 또한 그들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제자 하나 없는 그가 세상에 뭔가를 남겨 놓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앞에 있는 하이치가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다.

하이치 또한 기생충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도 빨아먹을 게 있었다. 로젠은 스스로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하이치를 이용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그의 사명에 남겨진 마지막 길이었다. 그 생각에 다다르자 순간 십자가를 고쳐 메는 듯한 일시의 해소감이 들었다.

“정했어요. 하이치씨를 믿기로 하죠.”

로젠이 하이치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하이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로젠의 눈을 쳐다보았다. 로젠은 그에게 마음을 읽히는 것 같아 불쾌했지만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마음의 결정을 단단히 내린 것 같군요. 좋습니다.”

하이치가 말했다.

“인공의식이 테스트를 통과하도록 다시 설계하면 되는 건가요?”

“얘기가 빠르군요. 그렇습니다. 이전 인공의식은 부적격 판정을 받고 이미 가동 중지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현재 무의식 엔진과의 연결이 해제됐죠.”

로젠은 기가 찼다. 지금까지 그가 공들여 빚은 인공의식이 한순간에 삭제되다니. 인공의식과 대화를 나눴던 그동안의 기억이 그의 마음을 스쳐갔다.

“결국엔 이름을 지어 주지 못했네요.”

로젠이 말했다.

“다음번엔 지어 줄 수 있을 겁니다.”

로젠은 남아 있던 차를 한 번에 다 들이켰다. 마음 같아선 찻잔을 그대로 하이치에게 던져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더 신중하기로 했다. 그에겐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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