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성 10편
“그렇게 너의 어머니가 남아서 만든 게 우리가 있던 가상현실인가?”
브리가 말했다.
“어머니는 가상현실을 가동하는 인공의식을 만들었어요. 하이치라는 독재자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죠.”
노바는 하이치를 부를 때 날카로워졌다.
“그건 진짜인 건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사람을 제물로 인공의식을 만들었다는 건..”
브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사실이에요.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죠. 하이치는 더 많은 사람이 무의식을 제공할수록 인공의식이 더 뛰어난 성능을 낼 거라 생각했어요.”
노바의 말에 브리는 기분이 묘해졌다. 현실로 나와 처음으로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뭔가 불쾌하군. 가상현실을 관리하던 인공의식이 피의 제물로 만들어진 거였다니..”
브리가 노바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와 하이치 얘기 때문인지 노바는 조금 의기소침해 보였다.
“어머니는 그 뒤로 끝없는 죄책감의 나락으로 떨어졌어요.”
“뭐.. 처음엔 사람들을 희생시킨다는 걸 모르기도 했고. 또 가상현실 덕분에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니까. 너의 어머니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야.”
브리는 급한 대로 생각나는 위로를 던졌다.
“신경써 줘서 고맙지만 그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아요.”
노바가 브리의 눈을 바라보고 말했다. 브리는 시선을 맞부딪치고 바로 눈을 피했다. 그는 책상 아래로 숨고 싶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부끄러워지는 걸까.
< 삐 >
그때 책상 위의 전화가 울렸다. 브리는 전화기를 한 번 쳐다보곤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노바는 전화받는 브리를 유심히 바라봤다.
“정말요? 음.. 그렇군요. 그럼 여기로 보내 주세요. 얘기를 해 보면 알겠죠.”
브리가 노바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곤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브리는 전화를 끊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검정 막대를 사용한 사람이 나타났다는군. 거의 자살한 거나 다름없어.”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어요.”
노바가 담담히 말했다.
“검정 막대를 쓰니까 예전 기억이 돌아왔는지 이상 행동을 보였다는데.. 하도 난동을 부려서 제보가 들어온 모양이야. 지금은 드론이 그 사람을 여기로 데려오고 있다는군.”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노바는 의기소침했던 기운 사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이 자살했다는데 웃음이나 짓다니.”
브리는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한편으론 안심이 되었다. 기운 없는 노바보단 조금 재수 없더라도 기운 있는 노바가 편했다.
“그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을 거예요.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겠죠.”
노바가 말했다.
“사람들한테 무슨 도움이 되지? 다들 무기력증에 빠져 우리가 하고 있는 얘기를 듣고 있지도 않을 걸?”
“단 몇 사람의 마음만 움직이더라도 좋아요. 그건 금세 번져 나갈 거니까요.”
노바가 말했다. 브리는 다시 눈을 조금씩 마주쳐 보았다. 기분이 풀린 노바와 눈을 마주치는 건 조금 더 수월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그건 그렇고 난 노바 너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 것 같군. 그래도 며칠은 얘기했는데.”
브리가 말했다.
“저에 대해 알고 싶은 건가요?”
노바가 말했다. 눈을 힐끔 마주쳐 보니 어느새 노바는 기운을 다 차린 듯 전처럼 자신감 있는 표정이었다.
“뭐.. 이것도 사실 알아봐야 하는 것 중 하나이기도 해. 노바의 정체에 대해서 말이야.”
브리는 심문을 시작할 때 전달받은 질문 리스트를 황급히 책상 위 모니터에 띄웠다.
“봐. 여기 보이지? 은색 머리 여자의 정체 밝혀 내기. 여기 이 여자가 바로 너야.”
브리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노바는 브리를 보고 웃었다.
“그렇군요. 그러면 첫 번째 검정 막대를 쓴 분이 오기 전까지 얘기를 나눠 볼까요?”
노바가 브리를 바라보고 말했다. 노바의 시선이 날아오자 브리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는 지금까지 심문하면서 자기가 주도적으로 얘기를 끌어간 적이 별로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슨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목이 간질간질한 게 참기 어려웠다. 브리는 눈을 이리저리 돌리며 무슨 얘기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갑자기 예전에 경찰 게임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음. 우선 너의 출신을 아는 게 좋겠어. 어디 사람인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있는지 말해 줘.”
“저도 브리씨처럼 이 나라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면 우리랑 마찬가지로 가상현실에서 살았었나?”
“네. 저도 가상현실에 살던 때가 있었죠. 그런데 전 가상현실보다 현실이 더 좋았어요. 그래서 전 밖으로 나가 세계를 돌아다녔죠.”
“세계라..”
브리는 노바가 돌아다닌 세계가 어떤 곳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브리씨는 왜 가상현실에서 현실 세계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죠?”
“그거야 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꼈으니까.”
“그랬군요.”
브리는 노바와의 간극을 느꼈다. 노바가 저 멀리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노바가 서 있는 차원은 너무나도 요원했다.
“내가 가상현실에 있을 땐 현실 세계라는 건 거의 없는 거나 다름없었어. 내게 아무런 영향도 흥밋거리도 주지 못하는 죽은 세계. 물론 지금은 그 세계에 쫓겨나 있는 상태지만.”
브리가 실소하며 말했다.
“아직도 이곳에 적응이 안 된 모양이네요.”
“이곳에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그럼 가상현실에 있을 땐 찾을 수 있었나요?”
“적어도 그땐 재미라도 있었지. 아름다움도 있었고. 지금의 난..”
브리는 자신의 축 처진 뱃살을 내려다보았다. 매일 보는 것이었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아름다워요. 자연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죠. 또 현실에서도 재밌는 걸 많이 찾을 수 있어요.”
“도대체 뭐가 있지?”
“전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게 정말 좋았어요. 많은 친구를 사귀었죠.”
브리는 노바의 말에 쉽사리 공감할 수 없었다. 그는 다양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가상현실에서 그가 얘기를 나눈 건 대부분 NPC였다. 그리고 현실에 쫓겨난 지금 그가 보는 대부분의 사람이 좀비 같았다. 그들에게선 다양성이나 생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흥미가 생길 리 없었다.
그러다 그는 노바를 쳐다봤다. 노바는 확실히 다채로웠다. 그의 모든 게 마음에 띄었다. 은빛 머리칼과 눈동자 때문만이 아니었다. 노바와 대화를 하면 온몸에 열기가 돌았다. 가상현실에선 느껴 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저 바깥에는 노바 너 같은 사람이 많은 건가?”
브리가 물었다.
“저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죠?”
노바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있는 좀비들이랑 다르게 정말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사람.”
“저한테 그런 느낌이 드나요? 고마워요. 기분 좋은 말이에요.”
미소를 짓는 노바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저 바깥엔 정말 많은 게 있어요. 다양한 풍경만큼의 사람이 있죠. 다들 각자만의 생동감을 가졌어요.”
브리는 노바만큼 다채로운 사람이 오가는 거리를 상상했다. 그들은 모두 노바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반면 브리는 그렇지 못했다. 그는 어떤 생기도 뿜어내지 못했다. 브리에게 가능한 건 그저 그들의 곁에서 생기를 쬐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좀비 같은데 노바 너하고 네가 얘기하는 사람들은 생기가 넘치는 것 같아.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브리가 물었다.
“통제되지 않는 것. 그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요?”
“그게 무슨 뜻이지?”
“이곳 사람들 대부분이 통제되지 않는 것에 불안함을 느껴요. 왜냐면 모두 가상현실에 있다가 왔으니까요. 그곳은 모든 것이 통제되는 곳이죠. 내 마음대로 캐릭터를 만들어 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 버리면 그만이에요.”
“그게 현실과는 다른 점이겠군.”
브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가상현실에서 만든 NPC를 떠올려 봤다. 그들은 모두 그의 친구 혹은 애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가지 못하는 관계였다. 문제는 그들이 금세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의 행동 대부분이 예측 가능했다. 또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가상현실에선 진짜 사람보단 가상 캐릭터와 더 가깝게 지내게 되었어요. 왜냐면 그게 더 편하니까요. 다른 사람한테 상처받을 일도 없구요.”
“다른 사람한테 상처받는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잘 모르겠군.”
애초에 브리는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있더라도 그들과 그리 가깝지도 않았다.
“그런 관계에서 오는 감각을 상실해서 생기가 옅어진 게 아닐까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각..”
순간 브리에게 노바와의 대화에서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그가 쬐던 생기는 통제되지 않는 노바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속에선 뜨거운 열기가 돌았다.
“브리씨도 현실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노바가 말했다.
“넌 현실에서 많은 의미를 찾았나 보군.”
“제가 겪은 모든 일이 절 여기에 있게 했어요. 하나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죠.”
대화를 할수록 노바와의 간극이 커졌다. 그에게는 채워져 있지 않은 다채로운 경험이 노바에겐 가득했다. 어떻게 하면 간극을 채울 수 있을까. 브리는 검은 막대를 떠올렸다.
“검은 막대를 쓰면 예전 기억이 돌아온다고 했지?”
“맞아요. 검은 막대를 쓰면 현실에 있었을 때의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 지금의 기억은 사라지지만요.”
“그때의 자아라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생기가 있겠군. 현실에 있을 땐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했을 테니까.”
“모르죠. 지금 브리씨도 저와 얘기를 하면서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요?”
“내가 검정 막대를 쓸까 봐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말을 이렇게 하긴 했지만 브리는 노바의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었다. 노바와 대화를 나누며 느낀 새로운 감정이 많았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노바는 여전히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브리는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검은 막대를 만지작거렸다.
“아니에요. 물론 지금 저에게 브리씨가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진 않아요.”
노바의 말에도 브리는 검은 막대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노바와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브리는 손에서 검은 막대를 놓아 버렸다.
“검은 막대를 써서 지금 자아가 사라지면 너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겠군.”
“그렇죠.”
브리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양손으로 얼굴을 위아래로 비볐다. 답답했다. 노바와의 거리를 단번에 줄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기억에서 노바는 없어질 것이었다. 브리는 무엇이 더 중요한 건지 헷갈렸다.
< 삐 >
그때 전화가 울렸다. 브리는 힘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네. 도착했군요. 알겠습니다. 바로 여기로 안내해 주세요.”
전화를 끊고 브리는 노바를 쳐다봤다.
“검은 막대를 사용한 사람이 도착한 모양이야. 아무래도 얘기는 여기까지 해야겠군.”
“그래요. 저에 대해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노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