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초신성 13편

by JunWoo Lee

찬드라와 전 함께 살았어요. 가난했지만 행복했죠. 적어도 우리 둘만의 미래는 그려 볼 수 있었거든요. 우리는 곰팡이 슨 매트리스 위에서 많은 상상을 했어요.

우리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요. 사진으로만 보던 멋진 풍경도 직접 보고 싶었죠. 오로라나 빙하 같은 것들이요. 찬드라는 그런 걸 하면 정말 살아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고 했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전 알고 있었어요. 우리에겐 그 상상을 이루는 게 너무나도 어렵다는 걸요. 하루하루 벌어먹기도 벅찼거든요. 전 하루 종일 서서 레몬즙을 팔았고 찬드라는 음식을 배달했어요.

그런데도 돈이 모이지 않았죠. 방세를 내기 위해선 돈을 모아 둬야 했고 그러려면 하루에 정말 최소한의 돈으로 생활해야 됐으니까요. 사는 게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라는 생각을 안 한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집에 돌아오면 항상 다리가 부어 있었죠. 찬드라와 전 항상 서로의 다리를 풀어 줬어요. 찬드라는 발을 주무르는 솜씨가 좋았죠. 그의 손은 정말 마법 같았어요. 피로는 물론이고 제 몸도 녹아내렸으니까요.

그렇게 몸이 녹아내리면 전 하루 동안 느낀 불만을 모두 잊어버렸죠. 다음 날에 일할 게 두렵긴 했지만 찬드라와 함께 상상을 하면 금방 괜찮아졌어요. 그렇게 전 하루하루를 버텼죠.

그런데 찬드라는 그렇지 않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찬드라는 저에게 상상이 아닌 불만을 얘기했어요. 전 그때부터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죠. 찬드라가 점점 좌절하고 있다는 걸요. 그때부터 우리는 희망을 품고 잠들지 못했어요.

처음엔 찬드라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찬드라는 우리가 상상한 걸 정말 이루고 싶어서 그랬던 거 아닐까 싶어요. 우리의 상황 때문에 원하는 대로 안 되니 불만이 쌓인 거죠.

찬드라가 제일 자주 말한 불만은 물가였어요. 왜 급여는 쥐꼬리만 한데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를까. 생활비는 물론이고 방세 내는 게 정말 말도 안 되게 힘들었으니 저도 그 불만에 공감하긴 했어요.

그런데 찬드라는 불만에 더 깊게 파고들었죠. 그가 찾아낸 이유는 정부였어요. 정부가 잘못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거였죠. 특히 신성이라는 놈 때문에 더더욱요.

인민을 이끄는 별, 신성. 당시엔 이 표어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어요. 붉은 바탕에 노란 글씨로 쓰여 있었는데 그 촌스러움을 아직도 기억해요. 온 길거리와 인터넷에서 매일 같이 봤으니 그럴 수밖에요.

신성은 정부가 인공의식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 세계였어요. 정부는 신성이 모든 인민들의 숙원, 공산주의 사회를 가능케 해 줄 거라 말했죠. 그런데 모두의 숙원인 것치곤 신성이 사람들의 삶에 녹아드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어요.

왜냐면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가상현실에 의지하길 주저했거든요. 그건 미지의 세계였고 잘 이해되지도 않았어요. 어떻게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거지? 이런 얘기가 곳곳에서 들렸어요.

정부에선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홍보물을 뿌렸죠. 신성에서 만두를 먹으면 현실에서 먹는 것과 맛이 똑같다. 그리고 훨씬 더 많이 먹을 수 있다. 이런 내용의 홍보물이 거리에 가득했어요.

또 도시 곳곳에 신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았죠. 저도 지나가다 궁금해서 한번 경험해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현실과 똑같은 맛의 만두. 음. 아니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가격은 말도 안 되게 저렴했죠.

정부에서 이렇게 홍보를 많이 하니 신성에 접속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동시에 반발하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죠. 바로 신성이 현실 사회를 파괴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한 번 신성의 맛을 본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에서 뭘 사 먹지 않게 됐어요. 제가 일하는 과일즙 가게의 손님도 많이 줄었죠. 전 사장님의 근심이 무서웠어요. 그의 근심 때문에 전 언제든 잘릴 수 있었으니까요.

찬드라가 일하는 가게의 사장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찬드라하고 전 안심하고 일할 수 없었죠.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어요. 저희만 그런 게 아니라 옆 가게 또 그 옆 가게도 다 마찬가지였겠죠.

사람들은 분노했어요. 왜냐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거든요. 신성에서 판매되는 것들은 그만큼 강력했어요. 경쟁할 방법이 없었죠. 그래서 신성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신성 보이콧 운동을 시작했어요.

보이콧 운동이 여기저기 퍼지니 신성도 주춤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는 안심했죠. 정부에서 이제 무슨 대책을 내놓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결국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신성은 전보다 더 강력하게 홍보됐죠.

이때부터 찬드라는 신성을 완전히 혐오하게 됐어요. 매일 저녁마다 우리가 꿈꿔온 모든 걸 신성이 망쳐 놓았다고 말했죠.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가 저녁마다 신성을 타도하는 집회에 나가기 시작했어요.

저는 찬드라를 혼자 집회에 내보내기 불안해서 매번 함께 했어요. 저흰 거기서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죠. 그동안 저희가 먹고사는 거에 치여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됐어요.

“물가가 치솟는 이유는 신성 때문이다. 사람들을 가상현실로 내모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실을 고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은 인민들을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한 가상현실에 가두려 한다.”

이 말은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분노케 했어요. 너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여 당을 욕해댔죠. 저는 찬드라가 그렇게 분노한 목소리로 울부짖는 걸 처음 봤어요. 저도 분하긴 했지만 사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더 컸거든요.

진실을 알아 버린 이상 이젠 침대에 누워 상상하던 시절로 돌아가지 못하겠지.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가득했어요. 사람들의 분노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거리로 뛰쳐나갈 것 같았죠.

그런데 사실 그러기도 전에 사건은 허무하게 마무리됐어요. 아마 집회 안에 당의 끄나풀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집회에서 분노가 극에 치닫고 길거리 시위로 나아가려고 하던 그때 공안들이 저희의 아지트에 들이닥쳤어요.

그래서 저희는 뭐 하나 해 보지도 못한 거죠. 그냥 한 데 모여 분노를 토해내기만 하고 사회를 바꾸지 못했어요. 집회 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안에게 잡혀 구치소로 들어가게 됐죠. 저와 찬드라도 그랬구요.

저희는 잡혀 들어가면서 딱히 저항을 하지는 않았어요. 저항해 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알아서였을까요. 아니면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넋이 나가 버린 거였을까요. 그때의 무기력한 찬드라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그때 찬드라는 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어요. 저를 집회에 끌어들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예요. 근데 저는 그런 건 상관없었어요. 집회에 가기로 한 건 어디까지나 제 선택이었으니까요. 전 그저 찬드라가 걱정될 뿐이었죠.

찬드라는 완전히 무기력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투쟁의 한 보를 디뎌 보려고 하던 때에 마주한 압도적인 권력에 새파랗게 질려 버린 거죠. 딛고 일어서지 못할 좌절. 찬드라하고 꿈꿔 왔던 모든 상상이 무너져 내린 날이었어요.

그렇게 저희는 각각이 공안국의 심문실로 들어가게 되었죠. 두려웠어요. 내가 어떻게 될까란 생각보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죠. 전 찬드라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정말 걱정됐어요.

심문실에서 유치장을 오가는 길에 잠시라도 찬드라를 마주치길 간절히 기도했죠. 그런데 제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어요. 저흰 서로 마주치지 못하는 교묘한 일정에 따라 심문을 받고 있었거든요.

심문을 받으며 전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놨어요. 거짓말을 하면 찬드라와 엇갈리게 될 것 같았거든요. 만약 찬드라도 거짓말하고 저도 거짓말하면 둘 사이에 안 겹치는 부분이 분명 생길 테니까요.

이게 통했는지 어느 날 절 담당하던 심문관이 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어요. 그는 그 제안이 찬드라에게도 똑같이 갈 것이라고 얘기했죠.

심문관의 제안은 신성에 완전히 이주할 생각이 있냐는 거였어요. 완전히 이주한다는 말이 이해되지 않아 물었더니 기막힌 대답을 하더군요. 정신을 그대로 가상현실에 업로드해서 신성의 주민이 되는 것. 이게 심문관이 한 말이었어요.

이 말은 곧 현실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의미했죠. 가상현실에서 모든 생활이 이뤄지는 게 가능한지 저희로 테스트하고 싶은 것 같았어요. 저희를 가상현실이라는 감옥 안에 가두고 실험을 하겠다는 거였죠.

그런데 저에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신성의 완전 이주자가 되면 찬드라와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 정도 생기는 거니까요. 만약 안 한다고 했으면 공안은 어떻게든 절 찬드라와 떨어트려 놓으려 했을 거예요.

그래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고 완전 이주를 하겠다고 말했어요. 아마 심문관은 찬드라를 설득하기 위해 제 말을 전할 테니까요. 전 어떻게든 찬드라와 함께 하고 싶었어요. 그게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상관없이요.

다행히도 저희는 함께하게 됐어요. 심문관이 저에게 말해 줬죠. 저희 둘 다 신성에 가게 되었다구요. 그땐 정말 안심이 됐죠. 그래. 이게 어디야. 이런 마음이 가득했어요.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저를 신성에 업로드할 날만을 기다렸죠.

드디어 저희가 신성에 업로드되는 날 저는 아주 많은 주사를 맞고 다양한 기계에 옮겨 눕기를 반복했어요. 그러다 보니 몸이 노곤해지더군요.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기력이 없어져 의사가 하는 말에도 대답하기 귀찮았어요.

그때 전 느꼈죠. 이렇게 점점 현실 세계에서 멀어지는 거구나. 한편으론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도 어느새 흐릿해지더라구요. 제 마음은 찬드라 하나만 부여잡고 있기에도 벅찼으니까요.

그렇게 계속해서 찬드라에 대한 생각을 부여잡고 있다가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요. 그 뒤에 눈을 떴을 땐 우리의 방이었죠. 찬드라와 제가 함께 꿈을 그렸던 방이요. 저는 정들었던 우리의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어요.

순간 헷갈렸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지. 꿈인가 현실인가 아니면 가상현실인가. 분간할 수가 없었어요.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제 손등을 강하게 꼬집어 보기도 했죠.

이게 만약 현실이라면 그동안 내가 겪은 일은 다 꿈인 걸까. 그런데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였어요. 현실이라고 하기엔 제 옆에 찬드라가 없었거든요. 전 항상 찬드라와 함께 아침을 맞이했어요.

그 생각에 이르렀을 때 벽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어요. 익숙한 목소리였는데 금세 절 가상현실에 업로드한 의사라는 걸 기억해 냈죠. 의사는 제가 가상현실에 막 진입한 상태라 정신이 불안정할 수도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 뒤에 의사의 지시대로 여러 가지 행동을 해 보고 느낌을 말해 줬어요. 의사의 목소리엔 흡족함이 묻어났죠. 전 제가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 최대한 의사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어요. 절차가 빨리 끝나야 찬드라를 저에게 보내 줄 것 같았거든요.

절차는 생각보다 길었어요. 아마 가상현실의 제가 현실의 저와 일치하는지를 파악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결과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만약 둘이 같지 않으면 지금의 전 가짜라는 소리니까요.

절차가 끝나고 의사는 제가 현실의 저와 똑같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찜찜했지만 별 수 있나요. 또 조금 다르다 하더라도 여전히 찬드라를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았어요.

전 의사에게 찬드라를 언제 만날 수 있는 거냐고 물었죠. 마치 과제를 다 끝낸 아이가 당당하게 초콜릿을 요구하듯 전 정말 당찼어요. 벽 너머로 의사의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는데 그다지 나쁜 느낌은 아니었어요.

의사는 금방 침대 제 옆자리에 찬드라가 나타날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 했죠. 전 아주 오랜만에 찬드라를 보는 거라 서둘러 거울 앞으로 달려갔어요. 그동안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부어 있는 게 일상이었거든요.

저는 거울을 보면서도 수시로 매트리스를 확인했어요. 찬드라가 왔을까. 저는 매무새를 정리하고 다시 매트리스에 가서 앉았어요. 저는 항상 제가 눕는 자리에 앉아 찬드라를 기다렸죠. 찬드라가 어떻게 나타날까 궁금했어요. 아무리 상상해도 감이 잡히질 않았죠.

저는 그냥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어요. 눈을 뜨면 찬드라가 제 눈앞에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눈을 꾹 감았다 뜨기를 반복한 지 5분쯤 되었을 때였어요. 그때 눈을 감고 있었는데 옆에서 인기척이 들려왔죠.

저는 조심스레 눈을 떠 보았어요. 그리고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찬드라와 눈이 마주쳤죠. 저는 곧바로 찬드라를 꼭 안아 주었어요. 아주 오랜만에 찬드라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참 포근했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저는 다시 찬드라의 얼굴이 보고 싶어 안은 걸 잠깐 풀었어요. 찬드라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죠. 세카르. 찬드라가 가녀린 입술로 말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오랜만에 흘리는 행복의 눈물이었죠.

찬드라는 제 얼굴을 왼손으로 감싸더니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어요. 그러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했죠. 저는 고개를 여러 번 가로저었어요. 절대 미안할 일이 아니니까요.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다 해결된 일이라고 답해 줬죠.

그리곤 찬드라에게 입맞춤을 해 주었어요. 그런데 느낌이 참 별로였어요. 마치 나무줄기에다가 키스를 하는 것 같았죠. 이상해서 다시 키스를 해 보았어요. 마찬가지였어요. 찬드라의 부르튼 입술만이 느껴질 뿐 전과 같은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요.

정말 낯설었어요. 마치 다른 사람 입술 같아서 무서웠죠. 왜 이렇게 됐을까. 전 찬드라의 얼굴을 바라보다 한 가지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요. 가상현실에 업로드되다가 잘못된 게 아닐까. 이 생각이 들자마자 저는 매트리스 옆 벽을 마구 쳐댔어요.

찬드라는 제가 벽을 치는 걸 신경 쓰지도 않았어요. 그저 넋이 나가 허공을 쳐다봤죠. 그리고 미안해 세카르라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었어요. 그 텅 빈 말은 제 행복의 눈물을 금세 좌절의 눈물로 바꾸어 버렸죠.

제가 자꾸 벽을 두드리니 이상하게 여겼는지 의사의 목소리가 벽을 통해 다시 들려왔어요. 무슨 일이냐 묻길래 곧바로 찬드라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했죠. 찬드라가 제대로 업로드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의사가 그렇지 않다고 찬드라는 완벽하게 업로드된 거라고 말했어요. 지금 찬드라의 모습이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못 박았죠. 그 말을 끝으로 벽에서는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전 벽을 계속해서 치며 목소리가 나오길 기다렸지만 헛수고였어요. 저는 정신적으로 지쳐 버렸고 제 뒤에서 찬드라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어요. 망가져 버린 찬드라를 전 퉁퉁 부은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문득 한 기억이 떠올랐어요. 집회에서 찬드라하고 제가 잡혀갈 때의 기억이었죠. 그때도 찬드라는 넋이 나가 미안하다는 말만을 반복했어요. 사실 찬드라는 이미 망가진 상태였던 거예요. 집회에서 아니 그전부터 망가지기 시작했겠죠. 제가 찬드라와의 하루하루에 만족하고 거기에 머물고 있을 때 찬드라는 끊임없이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던 거예요.

전 찬드라를 다시 꼭 안아 줬어요. 어떻게든 그를 원래대로 돌려놓겠다고 결심했죠. 매일 같이 노력하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했어요. 어쨌든 찬드라가 가상현실로 온 것도 우리를 위해서였을 테니까요. 찬드라는 조금 망가졌을 뿐 의지가 아예 없어진 건 아니었어요.

그 뒤로 며칠간 정신없이 가상현실에서 사는 법을 익혔어요. 제가 찬드라의 몫까지 해내야 했으니까요. 저희는 그렇게 가상현실에서 새롭게 출발했어요. 그다지 좋은 시작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저희는 다시 함께하게 됐으니 그걸로 되었죠.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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