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성 14편
“그 뒤로 어떻게 됐죠?”
브리가 세카르에게 물었다.
“저희가 가상현실에 적응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러니까 거의 한 달쯤 되었을까요. 찬드라는 사라졌어요.”
세카르가 말했다.
“사라졌다구요?”
“네. 아주 흔적도 없이요. 그때는 멍청하게 벽만 두드리고 있진 않았어요. 윗놈들한테 말 거는 법을 알았으니까요. 방 안에 있는 전화기로 신성 총괄 관리 센터에 전화를 걸었죠. 거기 책임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제가 전화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브리와 노바는 세카르의 말을 유심히 들었다.
“책임자는 찬드라가 자살했다고 말했어요. 믿을 수 없었죠. 찬드라가 조금 우울하긴 했지만 점점 나아지는 중이었거든요. 분명 그놈들이 무슨 짓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때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저 그들에게 자살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어요.”
세카르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눈시울이 다시 붉어지기 시작했다. 세카르는 눈물을 참아 내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노바는 세카르의 손을 다시 꼭 잡아 주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대신 말해 줄게요.”
브리는 넋 놓고 세카르를 쳐다보다 정신을 차리고 노바를 바라봤다. 노바는 브리를 보고 말했다.
“그들은 찬드라가 자살해서 그의 삶이 리셋되었다고 말했어요. 우울했던 삶을 벗어내고 신성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세카르에게 말했죠. 그때 세카르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을 거예요. 유일한 희망이었던 찬드라를 잃었으니까요.”
“그럼 찬드라는 진짜 자살한 거야? 아니면..”
브리는 말하다가 순간적으로 세카르의 눈치를 봤다. 세카르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눈썹 사이로 조금씩 눈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찬드라씨는 자살하지 않았어요. 그는 신성에서 리셋 기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는지 실험하기 위해 희생된 거였죠.”
노바의 말에 세카르는 고개를 아예 숙여 버렸다. 그의 허벅지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보였다. 노바는 한편으론 세카르의 손을 보듬어 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그의 슬픔을 짜내는 말을 했다.
“그때 찬드라씨는 완전 이주자 중 활동량이 가장 낮았어요. 연구자들이 얻어낼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이 없었죠. 그래서 그가 가장 먼저 리셋 기능 실험의 희생자가 된 거예요.”
“그걸 동의도 없이 한다고? 아무리 가상현실이라고 해도 하나의 인격이 끝나는 건데..”
“그 실험에 자원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찬드라씨는 연구자들한테 좋은 제물이었어요. 평소 무기력에 시달린 사람이었으니까 자살했다는 거짓말을 덧붙이기도 좋았죠.”
브리는 한숨을 크게 쉬고 세카르를 봤다. 그동안 자신을 품고 있던 신성이 다른 누군가엔 지옥과 같은 곳이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리셋 기능 실험은 어떻게 됐지?”
브리가 물었다.
“성공했어요. 찬드라씨의 인격은 신성의 다른 어딘가에서 완전히 새로운 인격으로 형성됐죠. 하지만 연구자들은 세카르씨에게 그의 리셋된 인격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지 않았어요. 신성의 질서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맞아. 그건 신성의 강력한 규율이었지. 이전 삶의 경험이 리셋된 삶에 영향을 주는 건 신성의 질서에 위배되는 거였어. 리셋을 하고 나면 이전 인격의 삶은 완전히 밀봉되어 중앙 데이터 베이스에 백업되지.”
브리가 말했다.
“리셋을 한 인격은 이전 삶의 기억을 모두 잊게 된다. 세카르씨는 이 말을 듣고 좌절했을 거예요. 그리고 결국엔 자살을 택했죠. 이에 연구자들은 기뻐했구요. 단번에 실험 케이스를 하나 더 확보하게 되었으니까요.”
노바가 말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데이터화된 인간은 더 이상 진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나 보군.”
“연구자들은 마치 신이 된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들은 신성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피조물인양 다뤘죠. 그렇게 두 사람은 아주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서로 다른 시간을 보내게 된 거예요.”
세카르는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노바는 세카르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세카르씨 곧 그가 올 거예요.”
노바의 말에 세카르는 고개를 들었다.
“찬드라가 온다구요?”
노바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브리는 노바가 무슨 말을 하나 싶었다.
< 삐 >
브리는 노바와 세카르를 한 번씩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세카르는 브리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브리는 놀란 기색으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얼마 뒤에 심문실 벽면에 있는 화면이 켜졌다. 경찰서 앞 상황이 생중계되고 있는 듯했다.
“찬드라씨가 곧 온다네요.”
브리가 말했다. 브리의 말에 세카르는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저.. 그럼.”
세카르는 울먹이느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가보세요. 얼른!”
노바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바의 말에 세카르는 심문실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고 노바와 브리는 말없이 심문실 벽의 화면을 보았다. 얼마 안 가서 세카르가 경찰서 앞 계단에 나타났고 거기서 뭔가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많은 사람이 세카르를 주변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 드론이 경찰서 앞에 내려앉았다. 평소 브리가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드론이었다. 세카르는 곧바로 드론의 캐비닛 앞으로 가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브리는 화면으로 보는 게 답답해서 심문실 밖으로 나가 경찰서 앞이 보이는 창가 쪽으로 갔다.
브리가 창문을 활짝 열었을 때 캐비닛이 열리고 있었다. 브리는 문이 열리는 속도가 답답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문이 열렸을 때 답답함과 간절함은 순식간에 환희로 바뀌었다.
찬드라와 세카르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누가 먼저라 할 새도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브리는 물론이고 주위의 모든 사람이 넋을 잃고 찬드라와 세카르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건 마치 폭죽놀이의 피날레 같았다.
브리는 먼 창가에서도 둘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달 모양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행복의 눈물이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의 감정은 범람했다.
그들의 모습은 방송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갈 것이었다. 순간 브리는 노바를 떠올렸다. 노바의 계획이 결국엔 이거였구나. 그는 서둘러 심문실로 돌아갔다. 심문실에서 노바는 그 둘을 보고 있었다. 찬드라와 세카르는 경찰서 앞에서 얘기를 얼마 나누더니 드론을 타고 어딘가로 떠났다.
“저 둘은 어디로 가는 거지?”
브리가 물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상황 설명을 듣게 될 거예요. 거실 소파에 손을 잡고 앉아 편안하게요.”
노바가 웃으면서 말했다.
“다 너의 계획대로 흘러가는군. 저 둘의 재회 장면을 모두가 볼 수 있게 한 것도 의도한 거겠지.”
“약간의 운이 따라주기도 했구요.”
“둘이 서로 눈물을 흘리며 껴안는 걸 보고 주위 사람들의 넋이 나갔어. 같은 사람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다니.”
“다들 신성의 피해자죠. 전 그들을 구하고 싶어요. 그래서 이제 제 어머니 얘기를 마무리지어 보려 해요. 제 계획의 마지막 단계니 조금만 참고 들어 주면 돼요.”
마지막 단계라니. 노바와의 대화는 언젠가 끝이 나는 것이었다. 이게 다 끝나면 노바와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순간 브리의 마음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 심문도 얼마 안 가서 끝난다는 얘기군.”
“네. 아쉽지만요. 그래도 그다음이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