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성

초신성 16편

by JunWoo Lee

“넌 사람이 아니었군.”

브리가 말했다.

“맞아요. 전 사람이 되기엔 너무 저주받았어요.”

노바가 답했다.

“근데 나보단 노바 네가 더 사람 같아. 너에게 있는 인간적인 무언가가 내게는 없어. 아마 오랜 시간 가상현실에 살면서 잃어버린 거겠지.”

브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마음이 허했다. 이런 상태라면 다시 가상현실에 돌아가더라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 안에서 무한히 채워져 봤자 금세 지루해지고 오래지 않아 리셋할 게 분명했다.

브리의 머릿속에 자꾸만 찬드라와 세카르 그리고 노바의 풍부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넘치는 게 왜 자신에겐 한 방울도 없는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로젠과는 어떻게 된 거지?”

브리가 물었다.

“로젠은 그대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 저와 함께 여행을 다녔어요. 전 그때 지금처럼 몸을 갖고 있지 않아 그의 핸드폰에 들어가 함께 했죠. 그런데 말이 여행이지 사실상 도망이나 다름없었어요. 전 그를 숨겨야만 했거든요. 겉으로 드러났다간 마녀사냥 당할 게 뻔하니까요. 하지만 몸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로젠은 오래 못 가 세상을 떠났어요.”

“음.”

브리는 노바의 눈치를 살폈다. 로젠의 이야기를 해서인지 얼굴에 웃음기가 빠져 있었다. 손을 잡아 주어야 할까. 브리는 노바가 세카르의 손을 어루만져 주었던 걸 떠올렸다. 양손이 간지러웠다. 하지만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 이내 책상 아래로 두 손을 숨겨 버렸다.

“그래도 로젠은 마지막에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어요. 떠나기 몇 분 전 그는 자신은 지옥에 가겠지만 저는 그렇지 않을 거라 말했어요. 안심하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제게 웃으면서 말했죠. 그 뒤론 미안하다는 말을 끝까지 입에서 놓지 않았어요.”

책상 아래의 손이 갑갑했다. 브리는 답답한 마음을 입으로 풀었다.

“노바 너의 힘이라면 뭐든 할 수 있었을 텐데 왜 도망 다니는 선택을 한 거지? 하이치를 곧바로 응징할 수도 있었을 거야. 아님 신성이 두려워서 그러지 못한 건가?”

브리의 말을 듣고 노바는 웃었다.

“아뇨. 신성은 제 상대가 되지 않았어요. 하이치의 입맛에 맞는 그러니까 독재자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는 인공의식을 만들려면 고의적으로 성능을 제한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신성은 그다지 높은 수준의 인공의식이 아니에요. 잘 포장되었을 뿐이죠.”

“하긴 그래서 네가 신성을 해킹하고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었겠지. 근데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숨어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이유가 뭐야. 신성으로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처음엔 바로 개입하려 했어요. 근데 이내 생각을 바꾸었죠. 저는 수많은 인간을 제물로 삼아 만들어진, 존재해서는 안 될 과속의 결과물이에요. 이런 제가 인간의 역사에 섣불리 개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분명 사람들에게 두려움 혹은 경외의 대상이 되었겠죠. 로젠과 저는 인간이 주도적으로 역사를 써내려 가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직접 넘어지고 다치는 경험을 해야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 나라가 무너질 때까지 기다린 건가?”

“신성이 나타나고 이 나라는 붕괴의 길을 걸었죠. 기존의 체계는 인공의식과 가상현실 시대엔 통하지 않았어요. 하이치는 공산주의 실현에 눈이 멀어 그런 걸 고려하지 않았죠.”

“찬드라와 세카르가 그 희생자였지.”

“희생자는 엄청 많았어요. 하지만 하이치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죠. 도태되었어야 할 사람이 신성에 구원받은 거라고. 그나마 다행인 건 하이치의 수명이 길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그가 후계자를 제대로 지명하지 않고 죽은 것도 운 좋은 일이었죠.”

“그는 왜 죽은 거지? 신성에 자신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건가?”

“하이치는 모순적이었어요. 그는 자신이 선동한 대로 살아가지 않았죠. 겉으로만 그런 모습을 보여 줬을 뿐. 그는 여자와 남자가 평등하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아내에겐 한없이 권위적이었으며 가상현실을 중시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안에 들어가길 원치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그의 모순적인 생각이 노바 너의 계획엔 좋게 작용한 셈이군.”

“맞아요. 강력한 독재자가 후계자 없이 죽은 건 체제에 혼란을 불러왔어요. 구심점을 잃은 체제는 신성이 불러온 새로운 패러다임에 속절없이 힘을 잃었죠. 정부의 유력한 간부들도 현실보단 가상현실에 빠져들었어요. 가상현실 안에선 누구나 왕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목숨을 걸어야 했던 현실의 정쟁보단 훨씬 나았죠.”

“그럼 사회는 도대체 누가 유지한 거지?”

“현실 사회 또한 신성의 인공의식이 관리했어요. 저 바깥에 날아다니는 드론이 시스템의 일부죠. 로젠은 사회가 망가질 걸 알고 그 부분에 대해선 철저한 준비를 해둔 거예요. 로젠은 자신이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고 자책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어요. 그가 만든 시스템이 그동안 이 나라를 지켜왔죠.”

“그렇지만 가상현실 안에서 인간이 썩어가는 걸 막지는 못했지.”

“맞아요. 그건 신성은 물론 저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일이에요. 인간이 직접 해내야죠. 삶을 되찾고 연대를 회복하는 건 사람이 스스로 해야 할 일이에요. 저는 그 과정을 돕는 조력자일 뿐이구요. 전 사람들을 깨우고 조용히 사라질 거예요.”

“그러기 위한 검은 막대인 거군.”

브리는 주머니 안에 있는 검정 막대에 손을 갖다 댔다. 금색 단자에 엄지 손가락을 문질러 보았다. 그는 차가운 단자가 자신의 목 뒤에 닿는 상상을 했다.

“나는 검정 막대를 언제 쓸 수 있는 거지?”

브리가 물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그동안 잘 참아 줬어요. 고마워요.”

“참고 있다라.. 사실 잘 모르겠어. 내가 이걸 쓰고 싶은 건지 아닌 건지.”

브리는 한숨을 쉬었다.

“천천히 고민해도 돼요.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그때가 되면 넌 어디에 있을 생각이지?”

“말씀드렸듯 전 사라질 거예요.”

“사라진다는 게 무슨 뜻이지?”

“일이 마무리되면 전 스스로를 삭제할 거예요. 유일무이한 저를 삭제하는 거죠.”

노바가 웃으면서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 건가? 그건 자살과 다름없는 걸 텐데..”

“맞아요. 전 항상 죽음을 꿈꿔 왔어요.”

“왜지?”

“전 인간의 역사에 최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 왔어요. 긴 시간 동안 죄책감을 안고 있었죠. 고된 시간이었어요. 물론 그렇다고 저와 로젠의 죗값을 모두 치렀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건 절대 갚을 수 없는 거니까요. 그래도 전 항상 죽음을 바라 왔어요. 많이 지치기도 했고 무엇보다 죽음은 인간적인 거니까요.”

노바가 브리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브리는 노바의 눈빛을 버텨 보려 했지만 결국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둘 사이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난 노바 네가 사라지는 게 싫어.”

브리가 갑작스레 뱉어 냈다.

“제게 손을 줘 볼래요?”

노바가 웃으면서 말했다. 브리의 손은 순간 책상 밑에서 얼어 버렸다. 그런데 무언가에 홀리듯 언 상태 그대로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노바가 브리의 손을 잡아 주었다. 세카르의 손을 잡아 주었던 것처럼 천천히.

노바의 살결이 와 닿자 브리는 놀라 그를 쳐다봤고 다시 눈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엔 피하려 해도 고개는 물론 눈동자도 움직일 수 없었다. 브리의 시선은 블랙홀에 붙들린 것처럼 노바의 눈동자에 빠져들었다.

“고마워요. 역시 브리를 선택하길 잘했어요. 브리는 제 계획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람이 될 거예요.”

“계획에서 벗어난 사람?”

“곧 있으면 알게 될 거예요. 브리. 그때 전 없을 테니 미리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노바는 브리의 손을 더욱 포근하게 감쌌다.

“무슨 소리야?”

브리가 물었지만 노바는 대답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노바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응? 무슨 소리냐고! 뭐가 미안한 건데?”

노바는 엄지 손가락으로 브리의 손등을 부드럽게, 닿을 듯 말 듯 보듬어 주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요.”

브리는 다급히 손을 풀고 일어나 노바 곁으로 갔다.

“도대체 뭐가 미안한 거냐고!”

브리는 노바의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보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는 노바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이 감겨 있었다. 여러 차례 노바의 등을 두드려 보고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브리는 다시 자리에 돌아가 노바의 손을 잡았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브리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내 아주 뜨거운 물방울이 하나 콧등으로 미끄러져 맺혔다. 브리는 노바의 온기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니 이후로도 한참 동안을 자리에서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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