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necting the Dots.

by JunWoo Lee

나는 언제부터 사이드 프로젝트를 했을까. 돌아보면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말이 지금처럼 흔치 않았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땐 내가 하고 있는 게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인식도 없었다.


대학교 입학 후 난 전공인 중국어 공부는 내팽개치고 SF소설을 열심히 썼다. 중국어 공부가 싫은 만큼 소설 쓰기에 열중했다.


중국어과. 내가 지원하긴 했지만 실제로 가게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1지망 대학교가 될 줄 알았으니까. 계획대로라면 난 1지망의 산업디자인과에 가서 아이폰처럼 멋진 제품을 설계하고 있어야 됐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고 나는 중국어과로 떨어졌다. 재수까지 했는데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었지만 그땐 대학이 인생의 전부처럼 여겨졌다.


원하던 학교가 아니었기에 모든 게 불만스러웠다. 학교 시설, 수업 진행 방식, 심지어 동기까지. 수업 참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입학 첫 해에 겨우 24학점을 수강했고 평점은 2점대였다.


물론 1학년 때는 노느라 보통 그렇다고들 한다. 근데 난 자발적 아싸라 그런 즐거운 추억조차 남기지 못했다. 말 그대로 공백기이자 암흑기였다.


이런 나를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괜찮은 학교에 들어갔는데 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인지. 엄마는 주변에 자랑하고 싶어도 정작 합격한 아들놈이 실의에 빠져 말도 안 하고 다니셨다고 한다.


스스로가 만든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내 모습을 보며 부모님은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거면 군대라도 빨리 다녀오라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 자신도 답이 없다 생각했는지 입대 신청을 했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매라도 빨리 맞자라는 정신은 있었나 보다.


입대 날짜가 나오니 두려웠는데 동시에 마음 한편이 후련해졌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절망에 기약이 생긴 느낌이었다.


후련해진 마음에서 하나의 바람이 일었다. 어떤 형태로든 내 삶을 한번 정리해 보자는 바람이었다. 마치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처럼.


근데 막상 무언가를 정리하려 하니 남길 만한 게 딱히 없었다. 사실 20년 인생, 남들과 거의 다를 바 없이 살아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름 큰 마음 먹고 시작한 일이라 그럴듯한 결과를 남기고 싶었다. 이런저런 고민을 했는데 그게 내 마음속 잠들어 있던 중2병을 깨웠다.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나 그리고 우주의 근원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차원을 초월한 대범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왜 나일까, 이 세상은 왜 만들어졌는가와 같은 심오한 질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두 답이 안 나오는 고민이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나의 상상이 망상일지 아닐지는 내 믿음에 달린 문제였다.


나만의 종교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나 자신과 이 세상을 정의하고 글로 끄적였다.


처음엔 수능 비문학 지문처럼 정리했는데 어렵고 재미도 없었다. 다른 방식을 고민하다 소설로 정리하기로 했다.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 우주의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을 적어 내려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그땐 아무 생각 없이 즉흥 재즈를 연주하는 것처럼 글을 썼다. 개요나 큰 그림 없이 그때그때 길을 내며 헤쳐 나갔다. 겁이 많아진 지금에 와선 그땐 어떻게 그렇게 썼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점 때문에 창작자에게 첫 작품이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은, 새하얀 눈과 같은 감각으로만 쓸 수 있는 글. 타인은 물론 스스로도 그 시절의 글은 흉내낼 수 없다.


다시 돌아와 난 입대 직전까지 소설 쓰기에 열중했다. 상상이 글자로 실현되는 게 설렜다. 이런 치유의 과정 덕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꼭 어떤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것. 지금에서야 당연한 생각이지만 그땐 삶의 전환점이 될 정도의 깨달음이었다.


입대 전 삶을 정리해 본다고 시작한 일이 삶의 전환점이 된 게 신기했다. 전환점을 지난 후 나는 매사 좌절하고 실망하던 이전과 달리 스스로의 삶을 사랑하게 되었다. 더이상 수능날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 나아가 과거를 다른 관점으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갔다면 소설을 썼을까. 어떻게 보면 원치 않는 대학에 왔기에 이렇게 소설을 쓰며 삶을 돌아볼 수 있었던 거 아닐까.


그 후로 스티브 잡스의 명언 'Connecting the Dots'가 삶의 모토가 되었다.


삶이란 점을 찍어 가는 과정이며 내가 찍어 온 점은 분명 이후 어떤 식으로든 다른 가능성과 연결될 수 있음을. 그렇기에 자신이 찍어 온 점을 부정할 필요가 없음을.


물론 곧 입대할 처지에 삶의 모토가 무슨 의미냐 할 수 있었지만 분명 전과 달리 기대하는 바가 생겼다. 재부팅, 그러니까 제대 후 전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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