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ker's Blue.

by JunWoo Lee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마침표를 찍은 후 공허할 때가 있다. 프로젝트 막바지에 부풀어 올랐던 보람이 빠지면 그 자리에 공허감이 차오른다.


공허의 파고는 그때그때 다르지만 보통은 그리 심하지 않다.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정신 없이 빠져들어 어느새 공허감을 잊게 된다.


근데 그렇지 않을 때도 종종 있다. 그럴 때면 나 자신이 우주의 먼지처럼 느껴진다. 내가 만들어 내는 것도 다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 우주의 먼지 같은 내가 만드는 거니까.


왜 이따금씩 이런 강한 공허감이 찾아오는 걸까. 아직까지도 명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프로젝트의 성과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그럴 수도 있다. 혹은 인간에게 주어진 근원적 회의감이 여유가 생긴 틈을 타 모습을 드러냈을 수도 있다.


이유가 어떻든 공허감이 들어닥친 후엔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무지 손이 가지 않는다. 이때는 그저 공허감에 삼켜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때 난 슬럼프가 찾아왔구나 한다.


마침표를 찍은 후 느끼는 이런 공허감을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야기했다. 하루키는 한 마라톤을 완주한 후 알 수 없는 허탈감으로 달리기에 전 만큼의 열의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뛰어난 작가답게 그는 이런 공허감에 Runner's Blue라는 이름도 붙여 줬다.


아쉽게도 하루키 또한 Runner's Blue의 명확한 원인을 밝혀 내지 못했다. 그저 나처럼 이런저런 이유를 추측할 뿐이었다. 또 공허감에 대처하는 그만의 방법이 있을까 살펴보았지만 딱히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왜인지 안심이 되었다. 하루키도 마음속에 차오른 공허감을 별 수 없이 바라봤다는 사실이 위로를 줬다. 때론 극복할 수 없는 슬럼프도 있다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아무리 노력하고 빌어도 멈추지 않는 불가사의한 재난이 우리의 마음에도 있는 것이다. 그저 눈을 꾹 감고 재난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랄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돌아보면 슬럼프를 극복하려 발버둥칠수록 진만 빠졌던 것 같다. 활력을 찾기 위해 억지로 새로운 프로젝트롤 해 보려 하지만 물을 잔뜩 먹은 마음은 응해 주지 않는다.


반대로 슬럼프를 잘 넘겼을 때는 공허감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를 굳이 극복하려 하지 않았다. 언젠가 잠잠해지겠지하고 마음을 내비뒀다.


대신 평소에 배우고 싶던 걸 배웠다. 딱 정해 놓은 시간만큼만 강의를 듣고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엔 책이나 애니메이션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렇게 하는 와중에도 언제쯤 공허감이 가실까하며 불안한 마음이 든다. 근데 이제는 어느 정도 믿음이 생겼다. 이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무슨 계기로 회복이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자연스레 다시 움직인다. 마음에 활력이 생기고 만들고 싶은 게 생긴다.


슬럼프 동안 배워 둔 게 있으니 더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진다. 코딩을 활용한 프로젝트, 공간을 기획하는 프로젝트 등 전에는 안 했던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지금 내가 공허감에 대처하는 방식이 꽤나 마음에 든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고 이 또한 자나가리라 하는 것. 무(無)대처가 최선의 대처일 때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듄에 나오는 대사처럼.


삶의 불가사의함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현실이야.
막아서는 이해할 수 없지.
흐름과 함께 움직여야 해.
흐름과 하나가 되어 함께 흘러야 해.

- 영화 <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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