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지킴이 군무새
※사전 알림
해당 포스트에서 군무새는 '모든 남성'을 이르는 말이 아님.
오늘은 헬조선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핵심종, 군무새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웹서핑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군무새란 말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웹상에서 젠더 간 갈등이 일어날 때 자주 보이는 단어다. 그런데 검색해도 딱히 합의된 정의가 없어 글 앞부분에서 미리 군무새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고자 한다.
이 정의는 어디까지나 내가 주관적으로 내린 것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군무새의 정의와 다를 수 있다.
1) 군 문제에 대한 책임을 애꿎은 대상에게 묻는 자.
2) 군대의 질서/방식을 일반 사회에 적용하려는 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번째 정의의 군무새에 익숙할 거라 생각한다. 첫 번째 정의의 군무새는 군 문제에 대해 여자 탓만 해대며 울부짖는 자들을 이른다.
(사실상 남자를 군대에 보내고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 건 여자가 아닌 국가다.)
다 큰 성인이라면 자기 권리는 자기가 직접 챙겨야 한다. 괜히 여자를 닦달한다고 떨어지는 건 없다.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정부에 따져야 한다.
물론 그 과정 중에 이익 관계 당사자(여자)들과 논의를 할 순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군무새는 논의는커녕 그저 여자들에게 분풀이만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군무새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갈등만 양산해낸다. 그리고 그 텅 빈 갈등은 곧 감정싸움으로 번져 문제 해결을 더욱더 어렵게 만든다.
가뜩이나 풀기 어려운 군 문제인데 거기에 화까지 끼얹어서 좋을 게 뭐가 있나? 책임 관계와 이익 관계를 제대로 따지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게 좋을 것이다. 우선 정부에 책임을 묻고 향후의 방향에 대해선 이익 관계 당사자들과 논의해보아야 한다.
젠더 갈등 프레임에 빠져 쉐도우 복싱을 하는 건 정말 정력의 낭비다. 진만 빠지는 군무새 대신 정부에 맹렬히 따지는 매서운 매가 되는 게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위와 같은 군무새는 그 수명이 비교적 짧다고 생각한다. 쉐도우 복싱을 해서는 얻는 게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정의의 군무새 탈출은 지능 순이다.
그런데 두 번째 정의의 군무새는 그렇지 않다. 첫 번째 정의의 군무새보다 우리 안에 더 촘촘히 박혀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엮여 있으며 탈출을 위해선 지능과 더불어 큰 용기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이번 포스트에선 두 번째 정의의 군무새에 대해 파헤쳐 보고자 한다.
두 번째 정의의 군무새는 군대의 질서가 사회에 잘 적용되거나 그렇지 않을 경우 다음과 같이 우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시
군대 가서 사회생활 배우고 그러는 거지. 그래서 회사에서 군필자를 더 좋아하잖아.
걔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냐 군대를 안 다녀와서 그런가.
연수원에서 당연히 애사심 길러야 하는 거 아냐? 요즘 애들은 너무 예민하다니까.
회식 빠진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다들 군기가 빠졌어.
신입 사원한테 개인 시간이 어딨어.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이등병처럼 회사 다녀야지.
나 때는 말야 상사한테 함부로 말도 못 걸었어.
여자들은 군대를 안 다녀와서인지 조직을 위해 생각할 줄을 몰라.
상사가 까라면 까는 거지 뭔 놈의 말이 그렇게 많아!
위의 사례에서 보이는 것처럼 군무새는 헬조선의 군대식 꼰대 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에 큰 역할을 한다. 유교식 꼰대 문화와 크로스 하여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군무새는 군대와 일반 사회의 질서를 동일시한다. 서로 연결 지어선 안 될 것을 서로 긴밀히 연결시켜 사고한다. 이는 아주 큰 오류를 갖고 있지만 군무새들의 인식 체계는 이미 군생활과 헬조선화를 거쳐 무뎌진 지 오래기에 그 자명한 오류를 인식하지 못한다.
군무새들이 자주 하는 말을 한 번 들어보자.
"군대나 사회나 다 사람 사는 곳인데 비슷하지."
과연 그럴까?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일단 군대라는 조직의 특징에 대해 먼저 짚어보자.
군대는 특수한 조직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여러 가지 예외 조치가 허용된다. 군대에선 청년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게 용인되며 국민의 알 권리도 군사 보안 앞에선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군대는 국가 안보를 위해 합법적으로 무력을 운용하며 그에 필요한 특수 질서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특수 질서라 함은 철저한 상명하복 관계를 전제로 한다. 윗사람의 명령이 아무리 말이 안 되더라도 일단 따라야 한다. 한 마디로 까라면 까는 것이다. 일반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강압이 개인에게 가해진다.
그래서 훈련소에는 민간인들이 군대식 질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조교하는 과정이 있다. 군기가 빠짝 들어 상명하복식 질서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주입된 군기에 신병은 군대 시스템의 한 부품으로써 본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물론 이런 상명하복 질서가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군대에선 수직적으로 연결된 강력한 질서 체계가 유효할 수도 있다. 왜냐면 목숨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강압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에 나설 용자가 얼마나 될까. 내 목숨이 가장 중한데 조직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라니 말도 안 된다.
이러니 군대라는 조직에선 어쩔 수 없이 강압적인 질서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죽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야 인생은 실전이야. 인생은 전쟁이라고!"
정말로 극단적인 군무새다. 실제로 참혹한 전장에 가서도 인생은 전쟁이야라는 말이 나올까 싶다. 그러니까 결국 군대의 질서는 극단을 전제로 한 체계라는 것이다. 때문에 군대식 상명하복 질서는 일반 사회와는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
사실 군대라는 집단도 스스로를 일반 사회와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다. 훈련소에서 시행하는 민간인의 때를 벗기는 탈-사회화 과정과 제대 시기에 이뤄지는 재-사회화 교육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내가 있던 부대엔 아싸 캠프라는 제대 교육이 있었다. 말년 휴가 때도 아싸 캠프를 이수하기 위해 반드시 부대로 복귀해야 했다. 그동안 일반 사회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으니 재-사회화 과정이 필요하단다. 다양한 강사들이 와서 가지각색의 강의를 해준다.
이처럼 군무새의 요람인 군대조차 스스로를 사회와 분리하여 생각하고 있는데 왜 군무새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그들은 제대를 하고 나서도 그곳의 질서를 사회에서 찾거나 적용하려 한다.
항상 의문이 들었다. 사람들이 예전처럼 유교를 많이 접하지도 않는데 왜 유교식 꼰대 문화가 여전히 사회에 가득한 걸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군무새에서 찾았다. 유교식 꼰대 문화가 군대식 꼰대 문화로 전이된 것이다. 그리고 그 몹쓸 것을 전이하는 생태계 교란종이 바로 군무새다.
군무새들은 사회에 군대 질서가 만연해 있음에도 별다른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 그 질서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그 속에서 피해를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쟤네가 군대를 안 다녀온 걸 내가 어째? 이런 생각을 할 뿐 구조 자체에 대해선 회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군대식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승진의 발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군대 다녀온 것을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겠다는 심리 때문인 걸지도 모른다. 국가가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으니 이런 어긋난 보상 심리가 생겨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더 정신을 명료하게 잡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군대와 사회는 엄연히 다른 곳이다. 이 점을 확실히 인지하고 헬조선의 군대발(发) 상명하복 문화를 쏘아봐야 한다. 안 그러면 아 원래 이런 거구나하고 빨려 들어가기 일쑤다.
그동안 생각 없이 빨려 들어가길 반복하여 빚어진 지금의 행태를 보라.
까라는 대로 까야하는 갑-을 행태
더러운 계급의식에 물들어 아랫사람한테 온갖 무리한 요구 혹은 성폭력, 성추행을 하는 추악한 모습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단지 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것
짬이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의견이 묵살당하는 것
신입 사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개인 시간을 빼앗기는 것
군대처럼 운영되어 애사심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식 연수원
헬조선에선 정당한 권리 요구를 하는 사람이 전체주의적 질서 앞에서 사회 부적응자로 취급받는다. 진짜 사회 부적응자는 군대 질서를 못 잃고 그대로 일반 사회로 끌고 오는 군무새 무리가 아닐까.
물론 헬조선에 이미 굳게 자리 잡은 군무새 문화에 저항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놔버려야 하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적극적으로 저항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문제가 있다는 것만큼은 철저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딘가에서 돌풍이 일어났을 때 그 돌풍에 더욱더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멘탈이 제대로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맞이한 미투 운동이기에 펜스룰 같은 유치한 대응이 나온다 생각한다.)
이 문제는 중요하다. 왜냐면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계속해서 입대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헬조선의 군무새 문화가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군무새들끼리의 연대가 계속된다면 헬조선의 꼰대 문화 또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군무새의 계속된 충원을 막아내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군대와 일반 사회가 다르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문제 인식은 반성으로 이어지고 내적 반성들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군대 다녀온 남자만 군무새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근묵자흑이라고 군무새 혹은 군무새 문화가 판치는 곳에 있으면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도 군무새가 될 수 있다. 대학교 군기 문제가 대표적 예이다. 군대의 전체주의적 질서가 피어나는 새싹들에게도 물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자든 여자든 군필자든 아니든 모두 군무새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군무새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때문에 평소 군대식 꼰대 문화에 대해 계속해서 반성과 사색을 해야 한다. 무엇이 군무새 문화일까. 평소부터 분간해내고 분리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 논의하는 게 중요하다. 군무새 무리를 몰아내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이 대화하고 갈등해야 한다.
물론 이런 노력에도 군무새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수많은 남자들이 2년 동안 갔다 오는 군대의 힘은 그만큼 강력하다.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군대 또한 선진화될 필요가 있다.
끝에 와서 다시 말하지만 군무새가 울부짖는 질서는 극단을 전제로 한 군사 집단에서 만들어진 질서지 일반 사회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반성과 대화 그리고 갈등이 모여 돌풍이 일고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더러운 꼰대 문화가 휩쓸려나가길 소망한다.
사지로 내모는 사회에 살 것인가.
양지로 나아가는 사회에 살 것인가.
선택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