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대단하게 여겨지는 사회

가장 가까운 창작을 잃다

by JunWoo Lee
"사랑과 존경은 동시에 받을 수 없다."

존경이라는 것에는 어느 정도 상대와의 거리가 존재한다. 서로 간에 상하관계가 만들어지고 힘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것에는 그런 관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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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말 中


자소서에 취미란이 있거나 누군가 내게 취미를 묻는다면 항상 글쓰기라 답한다.

근데 그러면 자주 들려오는 말이 있다.


"멋지다!"

"대단하네!"

"오 대박! 작가였어?"


한때는 치켜세우는 말이 부담스러워 어디 가서 글 쓴다는 말을 안 하기도 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글을 쓴다고 하면 대단하다는 말을 듣게 되는 걸까?


글쓰기가 비교적 희소한 취미라서?

혹은 그냥 형식상의 칭찬이려나?

아니면 한국 특유의 겸손 문화 때문인가?


다양한 가설을 내려보고 주위 사람들과 얘기해보던 중 한 가지 결론을 내리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경외하는구나.


신전의 오벨리스크처럼 느껴지는 글쓰기. 사람들은 글쓰기가 중요한 것엔 십분 공감하지만 선뜻 다가가지는 못한다. 글쓰기 앞에만 서면 자신감이 하락하고 손마디 하나하나가 마비된다. 마치 무언가에 압도된 것처럼..


왜 그럴까? 선천적으로 글쓰기에 소질이 없기 때문일까?

권위적인 오벨리스크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의 소질엔 전혀 문제가 없다. 사실 글쓰기를 경외롭게 만든 건 우리의 역사와 사회다.


유교 체제에서 글쓰기는 지식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엘리트들의 몫이었다. 기본적으로 문맹률이 높았으며 사대부/군자의 글만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유교 사회에선 문자화 된 것에 권위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후 한글이 창제되고 보편 교육이 실행되면서 문맹률이 줄었다. 하지만 헬조선엔 아직도 유교 사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글쓰기를 경외하는 성향도 여전하다. 즉 글쓰기라는 오벨리스크는 여전히 건재한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한국의 교육/수험 제도는 그 오벨리스크를 허물긴커녕 더욱더 권위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글쓰기가 재미있는 창작의 과정이 아닌 당락을 결정하는 계급 결정 수단이 된 것이다. 조선 시대처럼 글을 잘 써서 급제한(대학에 잘 간) 사람은 존경의 대상이, 그렇지 않은 사람은 범인(凡人)이 된다.


물론 대학 간판이 그 사람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수험에 매몰된 고3에게 그 말이 통할까? 최전선에 선 그들에게 글쓰기는 열심히 갈고닦아야 할 무기다.


또 학생들에게 글쓰기의 영역은 논설문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다른 사람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논설문. 개인적으론 흥미를 붙이기 어려운 글이라 생각한다. 내 흥미보단 딱딱한 규칙과 타인의 기준에 맞춰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 풀이가 글쓰기의 목적이 된 수험생에겐 더욱더 그렇다.


수험용 글쓰기로 내몰린 학생들. 그들에게 글쓰기란 답안 서술에 불과하다. 정답과 오답이 정해져 있으며 틀리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다. 또 남이 제시해준 주제에 답해야 하기에 재미도 없다. 글쓰기가 멀리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쓰기가 재밌어지려면 다양한 글쓰기를 접해봐야 한다. 소설, 시, 광고 카피 혹은 인스타에 올릴 감성적인 문구까지. 이 세상엔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참 많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며 자신과 맞는 글의 종류를 찾아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글쓰기에 흥미를 붙이고 가까워질 수 있다.


그리고 조금만 가까워지면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내가 오벨리스크로 알고 있던 글쓰기가 사실은 말랑말랑한 액체 괴물(젤리)이었다는 걸..

쪼물쪼물

글쓰기는 정말 시작이 반이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와 관련해서 조금씩 쓰다 보면 금방 글쓰기가 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왜 하필 글쓰기지? 취미가 꼭 글쓰기일 필욘 없잖아. 요리나 그림 그리기가 될 수도 있는데?


맞다. 글쓰기가 꼭 취미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글쓰기는 어려서부터 언어로 사고하고 소통한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 익숙한 창작 도구다. 우리는 자라는 동안 많은 글을 읽으며 영감을 받아왔고 많은 활자를 써오며 글쓰기에 익숙해져 왔다.


창작에서 큰 행복을 얻는 인간인데 글쓰기라는 가장 가까운 창작을 포기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또 글쓰기를 통해 창작의 즐거움을 알고 디자인, 코딩과 같은 다른 창작으로 넘어가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더 넓은 창작의 세계로 나아가는 가장 가깝고 든든한 디딤돌인 셈이다.


하지만 헬조선의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경외하고 있다. 또 다른 분야와 달리 글쓰기에 대해선 오해를 하고 있다. 차디찬 수험용 글쓰기에 발을 담근 사람들은 글쓰기에 아예 압도당하거나 질려버렸다. 그게 글쓰기의 전부가 아닌데도..


만약 친구가 나 라면 끓일 줄 알아! 김치볶음밥 할 줄 알아라고 한다면 우린 보통 어떤 반응을 할까?

"와 대단해! 요리사야?"

과연 이런 반응을 할까? 아닐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라면, 김치볶음밥 같은 글쓰기도 있다. 즉 모든 글쓰기가 재미없고 어려운 게 아니라는 얘기다. 쉬운 글쓰기, 나한테 맞는 글쓰기부터 찬찬히 시작해보면 된다.

글쓰기는 매력적인 수단이다

또 모든 음식이 맛있진 않듯 모든 글이 재미있을 수는 없다. 건강한 글도 있으며 조금은 짜거나 매운 글도 있다. 완벽한 답안을 내놓듯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 썼는데 못 읽을 수준이면 안 읽으면 된다. 오히려 음식물 쓰레기가 남지 않으니 더 편하다.


물론 그렇다고 글쓰기를 강요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이렇든 저렇든 글쓰기가 싫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해 경외심과 오해를 갖게 돼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헬조선의 행복 결핍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일상의 행복과 맞닿아 있는 가장 일상적인 창작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적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와 가까운 것부터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더더욱이 그것이 우리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창작이라면 말이다.


이제부턴 글쓰기를 경외하지 말고 이리저리 주물러보자. 글쓰기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글쓰기를 시작해봐야겠다 생각하시는 분께 추천해드립니다!


피터 엘보의 <힘 있는 글쓰기>


링크

이준우의 소설 쓰기



그럼 이만!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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