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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임장>

숨쉬듯 쓴 단편소설 #16

by JunWoo Lee

최근 '숨쉬듯'이라는 글쓰기 모임에서 편한 마음으로, 숨 쉬듯 글을 쓰고 있다. 모임은 구성원 모두가 두 달에 한 번 하나의 소재에 대해 글을 쓰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소재는 장마였다. 비가 오지 않고 습한 날씨만 이어지고 있는데 그 마른 장마의 불쾌감을 소설로 풀어 보려고 노력했다.



임장



미래자동차 사내 카페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싶어요.”

건우가 말했다.

“왼손에 롤렉스 차고 그런 말 해도 되는 거예요?”

민정의 말에 인호도 커피를 마시다 웃었다. 건우는 오른손으로 롤렉스 시계를 슬쩍 가렸다.

“아. 이건 아빠한테 물려받은 거예요. 제가 산 건 아니고. 쨌든 이번 주 토요일에 서촌에 가려고요.”

“임장 가는 거예요?”

인호가 물었다.

“네. 뭐 그렇죠.”

“대단해요. 다들 아파트 아파트 할 때 주택이라니. 저는 남편이랑 집 볼 때 주택은 생각도 안 했는데.”

“저도요. 여자친구는 뭐래요?”

“여자친구도 아파트에 살기 싫대요.”

“오. 그건 다행이다. 잘 맞네.”

“건우 님 그 질문 소개팅 때 꼭 한다면서요. 주택이랑 아파트 중 어디가 좋은지. 이번에도 물어봤어요?”

“그럼요. 소개팅 필수 질문이죠.”

“다 지으면 꼭 초대해 줘요. 인호 님이랑 집들이 선물 좋은 걸로 해서 놀러 갈게요.”

“그러니까요. 건우 님은 언제 봐도 낭만 있어. 참.”

“낭만 빼면 시체죠.”



서촌 경복궁역 3번 출구 앞 길


“그랬더니 뭐래?”

건우가 물었다.

“그 돈이면 대출 껴서 어디에 무슨 아파트 살 수 있다고 값이 오를 만한 곳을 사라고 하더라. 또 주택 살면 불편하다고도 하고.”

수민의 말에 건우는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집을 투자 목적으로 사는 사람들 때문에 집값이 이 모양인 거지. 그런 사람들은 집값 비싸다고 투정 부릴 자격도 없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까.”

“그러게. 그래서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왔어. 끝까지 설득하려고 하더라.”

“우린 그러지 말자.”

건우의 말에 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손을 잡고 서촌을 걸었다. 낮은 건물들 뒤로 인왕산이 보였다.

“서촌은 언제 와도 좋아. 그거 알아? 원래는 사대문 안만 서울이었대.”

건우가 말했다.

“진짜?”

“여기가 서울의 뿌리인 거야. 진짜 서울.”

“몰랐어. 신기하다.”

바닥을 보고 걷는 수민을 보고 건우가 웃었다.

“수민이 벌써 힘들구나?”

“습해서 더 더운 것 같아. 완전 찜통이야.”

“뉴스에서 마른 장마라네.”

“마른 장마?”

“장마철에 비가 안 오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는 거래.”

“별 말이 다 있네. 하여간 찝찝해. 이럴 거면 차라리 비가 쏟아지는 게 낫지.”

“얼른 어디 들어가자.”

둘은 거리를 거닐다 부동산을 발견하면 잠시 멈춰 섰다. 부동산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종이들을 살폈다. 종이에는 효자동 주택 매매, 13억 5천, 주차 가능과 같은 매물의 정보가 쓰여 있었다. 마음에 드는 매물이 보이지 않아 부동산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저기 가게 귀엽다. 양말 파는 곳인가 봐.”

수민이 양말 모양 캐릭터가 그려진 간판을 보고 말했다.

“들어가 보자.”

둘은 10분 정도 가게를 둘러봤다. 가게에서 나올 때 건우의 손에 양말 모양 캐릭터가 그려진 종이백이 들려 있었다.

“일본 양말이라 그런지 재질이 좋은 것 같아.”

건우가 종이백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잘 샀어. 예쁘더라.”

둘은 횡단보도를 건너 누하동 쪽으로 향했다. 길을 걷다 소품샵, 책방을 들리곤 누하동의 조그만 1층 카페에 들어갔다.

“이게 무슨 임장이라고.”

건우가 콜드브루를 한 모금 마시곤 말했다.

“응?”

“아니. 오늘 서촌에 간다니까 회사에서 어떤 분이 임장 가냐고 하는 거야.”

“임장? 그게 뭔데.”

“그 부동산 투자하는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 돌아다니는 거야. 거기가 투자 가치가 있는지 현장에서 보려고.”

“아 그거 하는 사람들 릴스에서 봤어.”

“임장이라는 말이 뭔가 마음에 안 들어. 너무 자본주의스럽다고 해야 되나. 자기 마음에 드느냐보다 시장에서 선호하는지를 살피잖아. 더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럼 우리가 하는 건 뭐라고 부를까? 우리가 정하자.”

“음 구경? 그냥 구경하는 거지. 그러다가 우리 마음에 드는 물건 있으면 사는 거고. 이 양말 산 것처럼.”

건우가 의자에 올려진 종이백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너무 무겁지 않고 좋다. 구경.”

둘은 커피를 다 마시곤 다시 길가로 나섰다. 조금 걷다가 한 부동산 앞에 멈춰 섰다.

“여기 봐. 종이에 다 붓으로 썼어.”

수민이 부동산 창가에 붙은 종이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러게. 하나하나 정성이다. 옥인동 주택 6억. 이거 궁금하네. 여기 들어가 볼까?”

“좋아.”



서봄부동산 안


부동산은 방 한 칸 크기로 아담했다. 건우와 수민이 들어가니 할아버지와 아주머니가 각자의 자리에 앉아 둘을 봤다. 할아버지는 70은 넘어 보였지만 허리가 꼿꼿하고 눈빛에 총기가 서려 있었다.

“안녕하세요. 앞에 종이 보고 들어왔어요. 옥인동 주택 6억 매매요.”

건우가 창가에 붙은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으세요.”

할아버지의 말에 건우와 수민은 원형 탁자를 앞에 둔 소파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안경을 끼고는 원형 탁자 앞 다른 의자에 옮겨 앉았다. 건우와 수민은 소파에 앉아 부동산 안을 둘러봤다.

“그림이 많네요.”

수민이 말했다.

“제가 그린 거예요. 인왕산이랑 북악산.”

할아버지가 벽에 붙은 수묵화들을 한번 보고는 별것 아닌 것처럼 말했다.

“우와 잘 그리셨다.”

수민의 말에 할아버지는 미소를 지으며 서류를 살폈다.

“저기 집은 다시 지어야 돼요. 지금은 너무 낡아서 못 살아.”

“아 다시 짓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건우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건우를 잠시 봤다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다시 지을 생각도 있으면 저기보다 나은 곳이 있는데. 거기 누하동 어디였지?”

할아버지가 뒤편에 대고 말하자 아주머니가 컴퓨터에서 뭔가를 찾았다.

“33-99번지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펜을 들고일어나서 벽 쪽에 걸린 서촌 지도 앞으로 갔다.

“여기예요. 골목 끝에 있는 집.”

할아버지가 펜으로 33-99번지를 가리켰다.

“집이 두 채가 있네요?”

건우가 물었다.

“작은 거는 별채. 대지 면적은 33평, 3층까지 지을 수 있고. 가격은 9억.”

“옥인동 주택보다는 비싸네요.”

수민이 말했다.

“평수로 따지면 더 싼 거예요. 평당 3,000만 원이 안 되는데 사대문 안에 그런 땅이 없어요. 또 저기 옥인동은 길이 좁아서 공사하기도 어렵고.”

“그렇겠네요. 경복궁역이랑도 가까워 보여요.”

건우가 지도를 보며 말했다.

“걸어서 7분이면 갈 거예요.”

할아버지는 다시 원형 탁자 앞 의자에 앉았다.

“저기 집이 장관도 나온 명당이에요. 또 앞 주변은 다 한옥인데 저기만 양옥이에요. 한옥은 한옥으로밖에 다시 못 짓는데 저기는 높이 올릴 수 있어서 앞에 인왕산, 북악산도 훤할 거고. 사실상 영구 조망권이에요.”

건우와 수민은 홀린 것처럼 할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집 뒤편으로는 배화여고가 있고. 또 옆에는 서울시에서 매입해서 동네 사랑방으로 쓰고 있는 주택이 있어요. 내가 서울시에 좀 사달라고 했지.”

“그런 일도 하세요?”

수민이 물었다.

“제가 서촌 가꾸기회 회장도 하고 있어요. 공무원들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는데 동네에 사람들 모일 곳이 없으니 시에서 좀 나서라고 한 거예요. 집 근처에 저런 게 있으면 얼마나 좋아. 저도 저기서 역사 강의를 가끔 해요.”

“저희가 잘 찾아온 거 같네요. 지금은 집에 누가 살고 있는 건가요?”

건우가 물었다.

“할아버지가 강아지랑 살아요. 둘이.”

“지금 집을 볼 수 있나요?”

수민이 물었다.

“그럼요. 지금 집에 있을 거예요. 전화 한번 해 봐.”

할아버지의 말에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었다. 아주머니는 집을 보러 가겠다는 얘기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금 갈까요? 간다고 말씀드렸어요.”

“아 네네.”

아주머니의 말에 건우와 수민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한번 보고 와요.”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아 말했다. 건우와 수민은 아주머니를 따라 부동산을 나섰다.



필운대로 33-99번지


“이 집이에요. 골목 끝에 있어서 조용하죠?”

아주머니가 녹슨 철문 앞에 서서 말했다.

“그러네요.”

건우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부동산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주위가 다 한옥이었다.

“근데 집이 거의 폐가 수준이라 마음의 준비는 하셔야 돼요.”

건우와 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가 철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가자 건우와 수민도 뒤따랐다. 마당에는 마른 체형에 배만 툭 튀어나온 할아버지가 나시 차림으로 시츄를 안고 서 있었다.

“무은 다다요.”

할아버지의 어눌한 발음에 건우와 수민은 영문을 모른 채 서 있었다.

“문 닫으라고 하시네요. 강아지 뛰쳐나간다고.”

아주머니가 서둘러 철문을 걸어 닫았다. 문이 닫히자 할아버지는 시츄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집 보러 오신 분들이에요.”

건우와 수민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뒤편으로 본채의 문이 열려 있어 집 안이 살짝 보였다. 끝부분이 말려 있는 장판 위로 소주병과 해진 이불이 널브러져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음습한 기운이 피부에 전해졌다.

“본채는 할아버지가 사셔서 오늘은 별채만 보셔요.”

건우와 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별채의 문을 열어 줬다. 건우와 수민은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현관에 선 채로 고개만 들이밀어 안을 살폈다. 전쟁통에 버려진 집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안 되어 있었지만 방 두 칸과 화장실이 보였다.

“별채는 아예 관리를 안 해서 지저분할 거예요.”

“그래도 별채인데 넓네요.”

건우의 말에 수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붕 위로는 푸른 우듬지가 넓게 드리우고 있었다. 집 바로 뒤에 있는 배화여고 담장에서 자란 나무들이 주택 쪽으로 가지를 뻗었다.

“여기 좋다.”

수민도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여기 샤.. 샤면 돈 보는 거에요.”

할아버지가 말했다. 건우와 수민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살면 돈 버는 거래요.”

“내가 쎄.. 쎄 싸 때부터.. 여기 육씨. 싸.. 흡. 싸면을 사랏써요. 아주 조은 따. 따.. 읍.”

할아버지는 말하다가 손가락을 입 안에 넣었다. 건우와 수민은 당황한 낯빛으로 할아버지를 봤다.

“미아내요. 내가 트니를 해서..”

할아버지의 입을 자세히 보니 이도 몇 개 없고 틀니를 한 듯했다.

“집주인 분이 이번에 틀니를 하셔서 그래요. 이 자리에서 세 살 때부터 63년을 사셨어요.”

“엄청 오래 사셨네요. 거의 평생을 여기서.”

수민이 말했다.

“조.. 조카 노미 여기르.. 흡. 구어게 판다고 해서.. 내가 아주 혼을 냇써요. 적어도 시비억이나 흡. 시.. 시삼억에는 파아야 한다고 하니 바꾼 거지.”

건우와 수민은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아. 제가 이렇게 통역을 하네요. 가격을 잘못 알고 계신 거예요. 여기 집 거래는 조카 분이 하는데 말이 잘못 전해진 게 있나 봐요.”

아주머니의 말에 건우와 수민은 할아버지를 힐끔 봤다. 귀가 잘 안 들리는지 할아버지는 가만히 서서 입만 매만지고 있었다.

“다 보셨으면 이만 돌아갈까요?”

“아 네. 가시죠.”

건우가 말했다.

“저희 갈게요. 쉬세요.”

건우와 수민은 아주머니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서봄부동산


“방금 거기 집주인 분이 집 가격이 13억이라고 하셨는데 9억이 맞는 거겠죠?”

수민이 물었다. 건우와 수민은 전처럼 소파에 앉아 있었다.

“9억이 맞아요. 봐서 알겠지만 그 할아버지 핀트가 좀 나가 있어요. 형은 장관하고 그랬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 등본 좀 뽑아줘 봐.”

할아버지의 말에 아주머니가 등본을 뽑아 원형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할아버지가 펜으로 종이에 체크를 하고 건우에게 보여 줬다.

“여기 보면 집 소유주가 그 할아버지 조카들이에요. 이 사람들이 전권을 갖고 있고 9억에 판다고 했어요.”

“아 그 할아버지가 집주인이 아니군요.”

건우가 말했다. 등본을 보니 40대 초반의 소유주 둘의 이름에 체크가 쳐져 있었다.

“조카들이 빨리 집 처분해서 돈 나눠 가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가뜩이나 단독주택은 대출도 잘 안 나오는데 이번에 대출 제한도 생겨서 13억에는 거기 절대 안 팔려요. 할아버지가 고집을 부리는 거지. 원래는 집 보러 간다고 전화하면 받지도 않았어요.”

“오늘은 그래도 잘 맞아 주시던데.”

수민이 말했다.

“조카들이 어떻게 설득을 했다고 들었는데 왜 가격을 잘못 알고 있나. 어찌 됐든 가격은 9억이 맞아요. 아까 말한 것처럼 좋은 가격이에요. 사대문 안에 평당 3,000이 안 되는 거니까.”

“거기 할아버지도 사면 돈 버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건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돈은 그럼 얼마나 모았어요?”

할아버지가 건우에게 물었다.

“7억 정도 모았어요.”

“젊은 분이 많이 모았네. 7억이면 대출 6억 받아서 집 사고 3층으로 지으면 돼요. 1, 2층은 임대를 해서 생활비 벌어도 되고. 여기 동네가 카페나 음식점 같은 건 안 되고 또 요새 그런 거 해도 돈 안 돼요.”

“공방 이런 거는 되겠죠? 제가 공방을 할 거라서요.”

수민이 물었다.

“공방이나 사무실 이런 건 되죠.”

“오 좋다.”

수민이 미소를 지으며 건우를 바라봤다.

“지붕 위로 오래된 나무도 있더라고요.”

건우가 말했다.

“그 나무는 건물 올릴 때 배화여고에 베어달라고 하면 돼요. 예전에도 학생 가르치는 곳이 이웃에 피해를 줘도 되냐고 하면서 잘라달라고 한 적 있어요.”

“아 잘라야 되나요?”

수민이 물었다.

“건물 3층까지 올리려면 베어야죠. 3층까지 안 지으면 용적률이 아깝지.”

“3층까지 올려야 인왕산이랑 북악산이 잘 보이겠죠?”

건우의 말에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집 사면 거기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수민이 물었다.

“집 판 돈으로 조카들이 2억 정도 되는 빌라 전세 하나 해 주겠죠. 남은 돈은 자기들이 갖고. 두 분이 신경 쓸 일은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등본 하나를 더 가져왔다.

“사장님 여기 거기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집인데 5평짜리. 여기가 그 집 팔릴 때 꼭 알려달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단독 매물로는 안 팔리니 같이 팔려고 하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가 등본을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 앞에 섰다.

“방금 본 집 옆에 여기 말하는 거예요. 여기를 사면 도로랑 붙게 되어서 주차도 할 수 있어요. 서촌에서 전용 주차하기 쉽지 않아요.”

“여기는 얼마일까요?”

건우가 물었다.

“여기도 평당 3,000 아래로 팔 거예요. 안 그러면 안 살 거라고 하면 알아서 내려요.”

“맞아요. 그 집 아저씨가 옆집 팔리는 것만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거기 갈 때마다 아저씨가 골목에 나와서 언제 팔리냐고 물어봐요.”

아주머니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럼 9억에서 1억 5천 정도 더 붙겠네요. 일단 지금은 차가 없기는 한데.”

건우가 수민을 보며 말했다.

“평생 살 거면 여러 상황을 고려하는 게 좋아요. 나중에 애 생기고 하면 차 사야죠. 급매가 아니면 이런 가격이 쉽게 안 나와요. 사서 지금 집은 헐고 서촌에 어울리는 집 하나 지어요.”

“좋은 땅 같아요. 마음에 드는데 대출은 한번 알아봐야겠네요. 혹시 여기 등본 가져가도 될까요?”

건우가 물었다.

“가져가세요. 가져가면 사는 거야.”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아마 금방 다시 올 것 같아요. 오늘 좋은 집 보여 주셔서 감사해요.”

건우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건우와 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부동산에서 나왔다.



서촌 누하동 떡볶이 집


“우리가 부동산을 잘 찾았어.”

건우가 말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완전 진심이셔. 붓글씨로 종이에 쓴 거랑 인왕산 그림도 그렇고. 서촌을 사랑하시는 게 느껴져.”

“서촌 가꾸기회 회장도 하잖아. 또 취향도 좋은 거 같던데. 오디오도 테크닉스라고 유명한 일본 브랜드 거였어. 돈은 이미 많고 취미로 부동산 하는 거 아닐까.”

“몰랐어. 신기하다.”

수민이 떡볶이를 먹으며 말했다.

“내일 회사 가서 대출 상담을 받아야겠어.”

“대출 한도 잘 나오면 좋겠다.”

“그러게. 우리는 투기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나 대출을 잘해 줘야지. 아파트민국 아니랄까 봐. 이 정도면 주택 담보 대출이 아니라 아파트 담보 대출이라 해야 돼.”

“그러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 집 사도 거기 할아버지 괜찮으시겠지?”

“신경 쓰이나 보네. 괜찮아. 그 나이 되면 아파트나 빌라 사는 게 훨씬 편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주택 사시다가 관리하기 힘들어서 반포 아파트로 옮기셨잖아.”

“하긴 할아버지 사시는 집이 말이 아니긴 했지.”

“할아버지 조카들이 알아서 잘 챙기겠지.”

“그렇겠지? 뭔가 찜찜해서.”

“괜찮아. 할아버지도 쨌든 집을 파는 거엔 동의한 거니까. 우리는 우리 일만 신경 쓰면 돼.”

“응. 알았어.”

수민이 마지막 떡볶이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말했다.

“집 들어가는 길에 마이초이스에서 소파 보고 갈까? 전부터 보고 싶어 했던 소파 있잖아.”

“텐도 소파? 완전 좋아. 가자 가자.”

건우와 수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큐:건축 탐구 집] 방송


“서촌 골목 끝에 이런 멋진 집이 숨어 있는지 몰랐어요. 인왕산, 북악산이 파노라마로 보이는 영구 조망권이라니. 이런 걸 차경이라 하거든요.”

노란색 테 안경을 낀 남자가 말했다. 남자는 유려하게 마감된 목조 프레임 소파에 기대앉아 전면의 통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감상했다. 남자 옆으로는 건축주 부부가 함께 앉아 있었다.

“건축가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영광이에요. 여기 소파에 앉아 있으면 TV가 필요 없어요.”

아내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잔에 커피를 따르며 말했다.

“그러게요. 각 층마다 풍경이 다른 게 재밌어요. 1층은 정원, 2층은 한옥들의 개성 넘치는 지붕, 3층은 인왕산이랑 북악산.”

“층을 옮기면 채널을 바꾸는 느낌이에요.”

남편의 말에 아내와 남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처음엔 폐가였다는데 사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원래 집주인이 이 집에서 거의 평생을 살았더라고요. 60년이 넘는 시간을요. 그 말을 듣고 여기는 평생 살 수 있는 땅이라는 걸 직감했어요. 이미 누군가 한 차례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마침 가격도 잘 맞았고요.”

옆에서 아내도 웃으며 거들었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네요. 근데 당시 가격이 얼마였나요? 귓속말로 알려 주실 수 있나요?”

남편이 남자의 귀에다 짧게 속삭였다. 남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돈이면 서울에 괜찮은 아파트 살 법도 한데 과감한 도전을 하셨네요. 외람된 질문일 수도 있지만 후회하지는 않으시나요? 그때 아파트를 샀으면 지금 얼마야 하는.”

“이 사람은 그런 거에 관심 없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아파트 가격을 잘 몰라요.”

“모르는 게 약이려나요. 농담이고요. 평생 살 집을 찾다니 낭만적인 거죠. 그걸 이루셨네요. 건축가들도 그게 쉽지가 않거든요. 대단한 거예요.”

남자의 말에 남편은 쑥스러워했다.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난 삶을 살고 싶었어요.”

건우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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