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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Woo Lee Aug 14. 2018

중국은 왜 민주화되지 않는 걸까?

과연 지배층만의 문제일까?

일당 독재 국가, 중국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관련하여 떠올리는 말이다. 실제로 최근엔 곰돌이 푸가 시진핑을 닮았다 하여 곰돌이 푸 영화가 상영 금지되기도 했다.

읭? 내가 훨씬 더 귀여운데!

근데 조금만 더 파고들어 보자. 왜 중국은 일당 독재 국가가 되었을까? 과연 우연히 공산당이란 독재자를 만나 그렇게 된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론 그렇지 않다. 공산당의 독재는 사실상 역사적 필연이다. 중국에게 있어 독재 정치, 즉 황제 정치는 민주주의보다 더 쉽고 익숙한 길이다.


왜 그럴까? 이번 포스트에서 함께 알아가보자.


넓디넓은 대륙, 너무 많은 인구


우린 중국을 대륙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땅이 큰데 그 안에 사는 인구도 참 많다. 그런데 그 넓은 땅과 인구가 일당 독재 국가의 틀 안에 포함되어 있다.


마치 엄청나게 큰 볼륨의 물건을 압축하고 또 압축하여 작고 단단한 상자 안에 넣어버린 것 같다.


굳이 왜 그렇게 해야 할까 싶다가도 이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도 신기하네.."


인구 5000만인 우리나라만 봐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얽혀 사회 여기저기서 생채기가 난다. 물론 그 상처들이 아물면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갈등엔 순기능만이 있는 건 아니다.


인구 13억의 나라는 어떨까? 분명 우리나라보다 더 심할 것이다. 요소 하나만 추가되어도 경우의 수가 확 늘어나니까. 이건 곧 사회 분열의 가능성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은 건재하게 잘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비법은 갈등 발생 방지 능력에 있다.


이미 발생한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 아닌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는 능력 말이다.


1. 지배자 측면에서의 갈등 방지


갈등 차단 능력은 기본적으로 지배자의 의도로 성립된다. 역사적으로 중국 지배자들은 민중들과 그들의 불만이 한 곳에 응집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한 예로 중국에선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 공인된 5대 종교 외에는 종교 활동이 허락되어 있지 않다. 이는 종교 활동이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모이는 걸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5대 공인 종교 - 불교, 도교, 이슬람교, 천주교, 기독교)


또 공인된 종교더라도 종교 활동은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내용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러니까 종교마저 지배층이 꽉 잡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 곳곳에서 시위하는 파룬궁들을 혹시 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들은 자신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무고한 탄압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파룬궁 사례 또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중국 정부의 모습을 잘 드러내준다. 단순한 기공 연마 활동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중국 정부는 견제를 하다 못해 결국엔 탄압까지 하게 된 것이다.

너무 모이지 말라!

그런데 이와 같은 탄압은 중국의 역사적인 경험에서 기인한다. 중국에선 대대로 파룬궁과 같은 종교 집단의 반란이 많았고 그 결과 국가가 붕괴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 <태평천국운동>

종교 활동 외에도 노동조합 또한 국가에서 관리한다. 노동자들의 불만을 국가의 기구를 통해 해결하게 만든 것이다. 개별적으로 노조를 만들어 활동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불안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응집되기도 전에 정부의 간섭에 의해 적당히 무마되고 해산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통제 방법이 있음. 기술적인 것과 관련해선 <중국 공산당에게 4 산업 혁명이란?> 참조


그런데 이렇게 정부 측면에서 적당히 무산, 해산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다. 땅이 그렇게도 넓은데 어떻게 일일이 다 간섭하리.


사실 중국의 독재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엔 더 바탕이 되는 원인이 있다.


2. 대중(피지배자) 측면에서의 갈등 방지


공산당의 독재 체제에서 대중들이 얻을 수 있는 건 뭘까?


바로 '안정'이다. 그리고 중국인들에게 안정이라는 가치는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면 대륙에 불안정이 왔을 때의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은 워낙에 크다 보니 끊임없이 분열과 불안에 시달렸다. 특히 강력하게 통일된 국가가 없다면 더욱더 그랬다.


춘추전국시대. 우리에겐 흥미롭지만 매우 잔혹한 전란이었다. 전란이 지속되며 기근이 심해져 식인을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후의 각종 전란과 반란에도 결국 피해를 입는 건 민중들이었다. 제국은 망하면 그만이었지만 민중들은 계속해서 그곳에서 살아가야 했다.


결정적으로 청나라 말기 대륙에 각종 열강과 군벌 세력이 판을 치자 중국 민중들은 극도로 가난해졌다. 또 강력한 중앙 정부가 없는 시점에서 그들을 지켜줄 이는 없었다.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고 국공내전이 이어지면서 중국 민중들의 멘탈엔 더욱더 금이 갔다. 때문에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이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긴 역사 동안 중국 민중들에게 주어진 경험은 크게 두 가지뿐이었다. 분열된 대륙에서 불안에 시달리며 살거나 통일된 대륙에서 그나마 안전하게 살던가.


그리고 안전하게 살다보면 경제적 안정도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실제로 중국 역사에선 제국이 통일된 이후엔 일반적으로 GDP가 상승했다. 물론 이전의 전란으로 떡락했던 생산량을 다시 회복한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위와 같은 과정을 밟았기에 중국인들은 안정을 중시하게 되었다. 또 그렇기에 정치적 권리를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까지 지배층과 계약을 해온 것이다.


그러니까 공산당의 독재는 결국 일방적인 힘의 논리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지배자, 피지배자 양측 간의 암묵적 합의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합의에는 안정이라는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들어가 있다.


중국의 지배 구조 역사는 위와 같은 암묵적 합의로 끈질기게 쭈욱 이어져 왔다. 그래서 지배자와 피지배자 모두 그것에 익숙하다. 아마 지금의 독재 체제에 대해 당사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겠다.


"구관이 명관이지."


서방에서 아무리 독재 정치라고 욕해도 우리한텐 이게 맞으니 됐다는 얘기다. 말도 안 되는 지배 구조가 몇 천년을 이어왔을 리 없지 않은가? 자기들한테 적합하니 그게 가능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들어보면 그럴듯하다. 독재란 말이 우리에겐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중국인들에겐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역사적 사례들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왜 꼭 독재를 해야만 안정을 지킬 수 있는 거지?

예전엔 모르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민주주의가 안정성에 도움이 되지 않나?

통신 기술도 발달해서 예전처럼 반란이 쉽지도 않을 거고.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중국을 침공해.


그렇다. 과거와는 달리 이제 기술의 발달로 광역을 아우르는 민주주의가 가능해졌다. 미국이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미국은 자꾸 중국을 쪼아 댄다.


"너네 왜 민주주의 안 해. 예전이랑 상황 다르니까 할 수 있어. 인권을 중시해야지."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의 중국도 대륙의 13억을 아우르는 민주주의 제도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당연히 기술적으로는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건 시민 의식이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독재(안정)에 대한 지배자와 피지배자 간의 암묵적 합의가 중국 민중들에게 멍에를 씌웠다.


중국 근대화 시기 이에 대해 지적한 중국 지식인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광인일기, 아큐정전과 같은 계몽 소설을 쓴 루쉰이 있겠다.


안정을 얻기 위해 정치적 권리를 내놓다보니 알게 모르게 정치적 권리를 잃는 것에 무감각해졌다.


또 중국에선 안정의 가치가 워낙에 중시됐기에 지배자가 안정만 가져다준다면 과도하게 충성했으며 스스로도 안정을 깨트릴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아주 오랜 기간 조금씩 이뤄져 온 일이기에 이제 와서 급작스럽게 바뀌는 건 불가능하다. 루쉰과 같은 지식인들도 한 평생 걸작들을 내놓으며 민중들을 계몽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당시 지식인들의 고민이 드러난 루쉰의 글을 한 번 봐보자. 루쉰은 계몽을 추구하면서도 언제나 그 효과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했다.


중국을 이해하려면 필독!

루쉰의 말

"철로 만들어진 방에 밀폐된 채 죽어가는 중국인을 깨우면 그들에게 더욱 고통스런 죽음을 경험하게 한다. 글쓰기는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러나 이미 눈뜬 사람이 몇이라도 있다면 그 철로 된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은가?"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 지상에는 원래 길이 없었는데, 걸어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각성한 소수의 존재 근거는 어디까지나 그들을 지속적으로 좌절시키는 대중의 존재에 있다."


위와 같은 계몽 운동은 중국인들에게 그들이 그동안 잃었던 권리에 대해 일깨우고자 하는 시도였다. 하지만 오히려 지식인들은 자신들이 일깨우고자 했던 민중들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이처럼 독재 체제에 익숙한 민중들에게 민주주의가 주어졌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분명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특히 넓디넓은 대륙에선 말이다.


또 시민 의식 외에도 큰 문제가 있긴 하다. 바로 역사적 트라우마 유무의 문제다. 사실 민주주의를 하라며 떵떵 외치는 미국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더군다나 분열의 역사는 중국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다.


그러니까 중국이 미국보다 거리낌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큰 부상을 당해본 사람은 부상 가능성에 더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결국 중국이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 정치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더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중국에겐 독재 정치가 더 익숙하고 안정적이다. 지금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도입했다간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지배자만이 아니라 피지배자도 원치 않는 일이다. 모두가 두려운 것이다.


이상적인 체제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그렇다면 중국은 언제까지고 민주화를 못하고 독재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건가?


이에 대해 중국은 아래와 같이 답한다.

"민주화? 그거 꼭 해야 되는 거야? 그게 꼭 이상적인 걸까?"


중국은 일단 모든 국가를 아우르는 이상적인 정치 체제란 없다고 생각한다. 각 국가에게 맞는 체제가 있으며 자신들에게 맞는 건 독재 체제라 여긴다. 그리고 그들은 싱가포르를 바라본다.


사실 싱가포르도 겉으론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렇게 민주적이지 않다.

싱가포르의 리콴유는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했고 그의 의지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정부가 국민들을 잘 살게 해줄 거니까. 너희는 잘 살고 싶으면 묵묵히 우리를 따라와라."


중국 정부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싱가포르는 국민들을 잘 살게 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땅덩이와 인구 등에 차이가 있어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그래서인지 싱가포르는 중국만큼 체제에 대한 비판을 받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덩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어떤 체제를 평가할 때 경제적 성과는 주요한 기준이 되지 않을까?


현재 중국은 싱가포르를 롤모델로 삼아 국민들을 잘 살게 하는 중국식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더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 집단 지도 체제로 완전한 일인 독재 체제인 것도 아니다.


만약 중국의 시도가 성공하여 독재 정치를 함에도 국민들을 배부르게 할 수 있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중국의 케이스를 본 개도국들이 민주주의만이 답은 아니구나 하고 중국식 모델을 따라가게 되는 일도 상상할 수 있다. 이 경우 체제의 수출이 이뤄질 것이고 이는 결국 중국이 그토록 바라왔던 중국몽의 실현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 가능성이 높지 않다 생각한다.

이에 관해선 <중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참조


물론 다음과 같은 말을 떠올릴 수도 있다.


"배부른 돼지가 되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


과연... 위의 말이 현실적으로 쉬운 일일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엔 이 세상엔 맛있는 게 너무 많다.


역사적으로 봐도 정치적 권리가 고파서 망한 나라가 많을까 배가 고파서 망한 나라가 많을까.


중국만 봐도 정치적 권리가 고파서 망한 나라는 없었고 대부분이 배가 고파서 망한 나라였다. 그러니 굶주림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리에게 중국은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역사적 배경 알겠고..

그에 따라 형성된 시민 의식.. 트라우마도 알겠고..

굶주림이 뭔지도 알겠는데..

그래도 독재는 아니지 않나?


이건 뭐 어쩔 수 없다. 중국의 체제가 더 멀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가슴 아픈 독재를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의 분열에 대한 트라우마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집단 기억 속에 새겨진 독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린 탄핵이라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맥락 속에 존재하는 독재가 중국인의 맥락 속 독재와 동일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 속단해선 안된다. 오판으로 이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어떤 문제를 살필 땐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런데 그러다 보니 매번 브런치 글이 길어지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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