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논리에 좌우되는 여성 인권
중국 남자는 여자 앞에서 꼼짝도 못 한다며?
이렇게 오해하는 사람이 주변에 은근히 많다.
이런 오해가 일차원적으로 발전하면 중국 여성 인권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먼저 그 오해가 왜 발생하는지 파악해보자.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중국 여성 인권의 실상에 대해서도 알게 될 것이다.
마오쩌둥은 "여성은 하늘을 받치는 나머지 반이다."라고 말하며 양성 평등을 강조했다. 또 실제로 평등을 지향하는 법/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얼핏 보면 마오쩌둥이 깨어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실 마오쩌둥은 그의 경제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성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추론은 평소 가부장적이었던 마오쩌둥의 행실을 바탕으로 함.)
마오쩌둥이 집권한 시기 중국은 매우 궁핍했다. 자본과 기술이 없어 소련 없이는 홀로 서있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마오쩌둥은 중국을 일으키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중국의 유일한 무기는 노동력이었다. 그래서 마오쩌둥은 그 자원을 최대한 쥐어짜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중국 인민들은 성별 가릴 것 없이 일할 수 있으면 중국 부흥의 꿈에 동원됐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여성들에게 어느 정도 당근을 쥐어줄 필요가 있었다. 여성을 사회 구성원으로 끌어들일 명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성 지위 향상은 그 명분 중 하나였다.
물론 과정 중에 여성의 지위가 실제로 향상되기도 했다. 1970년 대에 노동 가능 여성 인구 중 90%가 직업을 갖고 있었다. 이전보다 사회 참여율이 높아졌고 이에 따라 여성이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생겼다.
그리고 이와 같은 업적은 중국의 마오쩌둥 신격화 과정 중에 이념적, 정책적으로 계승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잘 작동하고 있는 전국 부련이라는 여성 기구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러니 표면적으로만 보면 중국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크다고 착각할 만하다.
하지만 중국의 양성 평등은 어디까지나 지배자 남성의 경제적 필요에 따른 결과였다. 즉 오빠가 허락한 여권 신장이었다는 얘기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 자본과 기술이 도입되면서 다시금 심화된 성별 격차에서 잘 드러난다.
국가적으로 인력이 필요할 땐 동원했다가 상황이 달라지니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여성들은 경제, 정치 모든 방면에서 소외되고 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유교 기반의 농촌 사회였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선 으레 남자 아이가 선호되었다. 남자 아이는 이후 노동 자원이 되어 부모를 모시는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 될 터였지만 여자 아이는 그렇지 않았다. 여자 아이는 시집가면 그 후론 가족도 아니었다. 그래서 여자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부외자 취급당하기 일쑤였다.
중국의 농촌은 만성적인 가난에 시달렸기에 남아 선호 사상이 더욱더 심했다. 심할 땐 먹을 입을 줄이기 위해 여자 아이를 팔거나 버리기도 했다. 즉 옛날부터 중국은 남자 아이가 생존하기 더 좋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향이 현대까지 이어져 더욱더 심한 비극이 발생했다.
바로 남아 선호 사상이 1 가구 1 자녀 정책에 버무려진 것이다. 중국은 폭증하는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1 가구 1 자녀 정책을 실시했었는데 이게 남아 선호 사상과 맞물려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
만약 태아 검사를 했는데 여자 아이면 낙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낳더라도 여자 아이면 호적에 올리지 않았다. 왜냐면 올린 순간 더 이상 자녀를 가져선 안됐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엔 여아 살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이 심해지자 중국 정부에선 태아 성별 검사를 법적으로 막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다고 악질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홍콩까지 가서 태아의 성별을 알아냈다.
그리고 위와 같은 남아 선호의 결과는 아래의 그래프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1 가구 1 자녀 정책이 시행된 1980년부터 출생성비가 급속도로 변화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뿐 여아 생존율에 문제가 있었을 거라 본다. 그래도 어쨌든 그래프에선 1 가구 1 자녀 정책이 남아선호 성향에 버무려져 발생한 비극적 결과가 잘 드러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남아 선호 사상, 즉 페미니즘에 반하는 사상이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여성이 희소해지면서 그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어느 사회나 그렇겠지만 유교 사회에선 특히 결혼해서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즉 희소한데 수요까지 많으니 여성들의 선택권이 확대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유교 사회에서 결혼은 사랑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위와 같은 경향이 더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선 남성이 결혼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차, 집 그리고 다양한 매력들..
그런데 과연 이걸 여권 신장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여성의 선택권이 이전보다 늘어난 것은 맞다. 또 선택권이 늘어나서 여성의 목소리도 더 커졌을 것이다. 여성 인권이 존중되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로..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이 이후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의식적 각성이 아닌 경제 논리에 의해 상황이 반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희소한 것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시장 논리는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후 성비가 비슷해지면 이전과 같은 상황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또 경제 논리에 기댄 변화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소룡씨는 아내 웨이씨에게 많은 것을 약속하고 결혼에 성공했다. 맞벌이지만 집안일은 물론 육아까지 소룡씨가 책임지고 있으며 경제권도 웨이씨가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웨이씨는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듯하다. 그녀는 자신은 어머니와 달리 편히 산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여성 상위 시대다.
하지만 소룡씨의 어머니를 보면 그렇지 않다. 그의 어머니는 최근 소룡의 자식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 예전 같았으면 외가 쪽에서 돌봤을 것을 시대가 바뀌면서 친가 쪽이 돌보게 됐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남편은 도와줄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녀는 소위 여성 상위 시대에서 소외된 여성이다.
- 중국 친구 인터뷰 각색
즉 상황이 바뀌기 전 세대의 여성은 여전히 구시대적 관념에 갇혀 사는 것이다. 과연 경제 논리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평등을 진정한 양성 평등이라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이전 세대의 여성들과 농촌의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얽매여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 도시의 신세대 여성이라고 한들 '그나마' 낫다는 것뿐이지 마찬가지로 차별당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살펴본 바를 한 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중국 여성의 인권은 의식적 각성이 아닌 경제 논리에 좌우되어 왔다.
그래서 항상 위태롭다.
여태까지의 흐름대로라면 중국 여성 인권의 향방은 시장 논리에 달려있다.
지금은 이전보다 상황이 아주 조금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원인이 어떻든 여성의 목소리가 드러난 틈을 타 의식의 각성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특성상 그것 또한 쉽지 않다. 각성을 일으킬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 1당 독재 국가 중국에선 한계를 갖기 때문이다.
이전 포스트에서도 말한 적이 있었는데 중국의 지배층은 혹시 모를 정권 전복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한다. 중국 정부가 노동조합, 종교, 학교를 직접 관리하는 이유다. 중국 통치자들은 사람이 모여 작당을 벌일 건덕지가 있는 곳은 반드시 관리한다.
그리고 중국의 권력은 남성에게 독점되어 있다. 물론 성별 불구하고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지만 남성이 여성보다 여성 운동에 더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여성 운동이 다른 운동과 달리 특별 대우받을 가능성이 있을까?
최근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5년 페미니스트 5명이 중국에선 반 성폭력 캠페인을 '준비'하다 구금당했다. 소식이 전해진 뒤 세계적으로 중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 석방됐지만 그들은 구금당하는 동안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밝혔다.
(자세한 사항은 링크 참조)
위와 같은 사례는 중국에서 여성 운동이 다른 운동과 마찬가지의 대우를 받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즉 제멋대로 해선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여성 운동을 하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 허락을 누가 내주느냐?
국가 권력을 독점한 남자들이다.
그러니까 결국 중국의 페미니즘은 여전히 공산당 오빠의 허락이라는 제약에 걸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양성 평등 구조 형성을 위한 의식적 각성은 어려워졌다.
때문에 앞으로도 중국의 여성 인권은 경제 논리에 휘둘릴 뿐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경제 상황이 안 좋으면 여성은 구직 시장에서 밀려날 것이며
성비가 정상으로 돌아가면 여성의 입지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물론 이는 내 개인적인 추측이며 틀리길 바란다.
그런데 추측이 틀리기 위해선 먼저 중국 여성 인권에 대한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
문제 해결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
그러니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정리한다.
중국의 여성 인권도 여전히 갈 길이 멀었으며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도돌이표 자체를 부술 수 있는 여성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사실 이건 중국뿐만이 아닌 모든 국가에게 해당되는 공통 사항이다. 단지 중국에선 여성 운동에 보다 더 제약이 있어 강조될 필요가 있을 뿐..
설국열차의 명대사를 남기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