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칼럼 아님!
감기 몸살 6일째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그 전에도 머리가 아프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골이 흔들리고 머리가 쪼개질 듯 아팠다. 타이레놀도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잠이나 자자하고 침대에 누웠는데 통증은 연이은 악몽을 거쳐 더 심해졌다. 난 결국 머리가 아파 뒹굴뒹굴 구르며 엄마에게 SOS를 요청했다.
엄마는 이마를 한번 만져보시더니 "열은 없는데.." 하시며 또 다른 원인을 헤아려보셨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사려 깊은 분석과 귀여운 해결 방안을 내놓으셨다.
"네가 요즘 너무 스스로를 몰아세워서 그런 것 같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머리가 아플 때도 있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 디자인 학교 진학 여부 등등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면 나랑 인생 후르츠 보러 갈까? 엄청 힐링되는 영화니까 보면 도움이 될 거야."
엄마는 힐링 영화로 내 두통을 치유해보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귀여운 시도였지만 당시엔 두통이 너무 심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히 거절했다.
그렇게 고통 속에 한 시간인가 있었을까. 서서히 이번 두통이 보통 놈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였고 엄마와 택시를 타고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들어갔는데 뭔가 주눅이 들었다. 매체에서 본 응급실엔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이 많았는데 과연 나 따위의 통증을 가진 사람이 이곳에 발을 들여도 되는 걸까. 더 급한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괜히 끼어든 것 같았다. 그래서 긴장했는지 의사, 간호사 선생님 앞에서 내 증상에 대해 어버버 설명하기도 했다.
품이 큰 환자복을 입고 지시받은 대로 검사를 하러 다녔다. 가장 먼저는 혈액 검사였는데 별 게 없었다. 그다음은 CT 촬영이었는데 일반인인 내겐 병원에서 하는 촬영은 다 비슷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마지막에 있는 뇌척수액 검사였다. 뇌척수액을 척수에서 뽑아내서 검사를 해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기에 의사 선생님이 가장 중요한 코스라 했다. 나는 응급실 침대에 아래 그림의 왼쪽처럼 누워서 주사 바늘을 기다렸다.
처음엔 골수액 빼내는 거랑 헷갈려서 엄청 무서워했는데 간호사님이 그런 거 아니라 하셔서 조금 안심했다. 그래도 역시 주사는 아팠다. 또 신경을 찌르는 거라서 맞은 부위뿐만 아니라 다리 부분도 저렸다.
그런데 고역은 주사 맞은 후에 있었다. 주사를 놔주신 선생님께서 움직이면 척수액이 흐르니 4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4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있는 것. 쉬워 보였지만 그렇지 않았다. 머리를 올려도 척수액이 흐를 수 있어 베개도 베선 안 됐다. 누워있었지만 전혀 편한 자세가 아니었다. 내 몸은 마치 미라가 된 것 같이 뻣뻣하게 굳었다. 또 응급실 소음에 두통도 더 심해져 잠도 안 왔다.
군생활 말미처럼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힌 것 같았다. 그래도 어쨌든 시간은 흘렀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또 중간에 진통제를 한 방 맞으니 조금 나아져 한 시간 정도는 잠에 들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시간 정도를 앞뒀을 때 척수액을 뽑아가신 의사 선생님께서 오셔서 내가 뇌수막염이라고 선언해주셨다.
이걸 좋아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됐다. 그런데 그냥 좋아하기로 했다.
일단 그 많은 돈을 들이고 아무것도 발견해내지 못했다면 허망했을 것이다. 집에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고통 속에서 왜 머리가 아플까 끙끙댔을 게 분명했다. 또 내가 '응급실 티켓'을 거머쥔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의 말이 이렇게 들렸던 것이다.
넌 응급실에 있을 정도로 충분히 아프다는 게 입증되었어.
축하해!
난 티켓을 거머쥐고 또 얼마 안가 빈 병실이 있다는 운 좋은 소식도 들었다. 나는 참 럭키한 환자인가 보다. 어쨌든 나는 아산 병원 1인실에 입원하게 됐고 그곳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뇌수막염을 앓으며 떠오른 감상들을 쓰려했는데 두통이란 해일에 다 쓸려간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과정만 기록해놓고 이후에 떠오르는 대로 차차 써볼 생각이다.
아 그리고 뇌수막염은 뇌와 척수를 둘러싼 뇌수막에 감염이나 염증이 발생한 경우 나타나는 병이라 한다. 감기, 몸살과 동반하여 오는 경우가 많으며 나도 그런 케이스다. 주로 어린애들이 걸리는 병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