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마법 같을 수도 있음을
여느 때처럼 집 아래 카페에서 공부를 하다가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에는 한 아이가 있었는데 이상한 게 그 아이는 소변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소변기에 뭐를 떨어트렸나 흘깃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저러다 말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볼 일을 다 보고 손을 씻는데 또다시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아까 그 아이가 내가 볼 일을 봤던 소변기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는 내려가는 물이 옷에 튈 정도로 가까이서 소변기를 관찰했다.
지저분하게 왜 저러지?
왜 내가 소변 본 거를 저렇게 관찰하는 거야?
손을 씻으면서도 온 정신이 아이에게로 꽂혀 있었다.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분이 어머니인 것 같던데 말씀드려야 할까.
머릿속이 그렇게 복잡해져 가는 와중에 한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와 볼 일을 봤다.
그 사람은 급했는지 손도 씻지 않고 바로 나갔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번엔 아이의 시선이 그 남자가 볼 일을 봤던 소변기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물이 내려가는 소변기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리고 물 내려가는 소리가 잦아들자 아이는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왜 나는 안 되는 거지?
아이의 혼잣말을 듣고 내 머릿속은 단숨에 명쾌해졌다. 유레카!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마음속에선 이미 그 말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이가 그토록 소변기를 유심히 관찰했던 건 물이 내려가는 문제 때문이었다.
왜 내가 볼 일을 봤을 땐 물이 안 내려갔는데 어른들이 볼 때는 내려가는 거지?
아마 아이의 키가 감지기 높이에 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소변기를 유심히 살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엔 소변기의 지저분함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는 그 총명한 눈빛으로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까.
따라 상상해보니 나 또한 즐거워졌다.
소변기엔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는 마법이 탑재되어 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떠올랐다.
아이 덕분에 나는 짧게나마 동심을 다시 품을 수 있었다. 또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됐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지저분해질 게 두려워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걸 주저하게 된 것 같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갈까 봐 백사장에 들어가는 걸 주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에 부담과 회의감을 느끼며, 여행 가기 전에는 설렘보단 걱정이 앞선다.
나날이 고정되고 고집스러워져 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내가 그렇게 되기 싫었던 꼰대가 되려나?
완전무결함을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오히려 순수함을 잃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리저리 늘어놓는 지저분함과 다시 주워 담는 부담을 무릅써야만 순수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래서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화장실 앞의 어머니께 아이의 이야기를 전해드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끄러워서인지 스스로 미소 짓기 바빠서인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만약 전해드렸다면 재미난 추억거리가 되었을 텐데.. 물론 오지랖일 수도 있겠지만.
혹시 이 글을 읽을 수도 있으니 여기다가 적어둔다.
19년 초 잠실 갤러리아 팰리스 스타벅스 옆 남자 화장실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셨던 어머니!
이 이야기는 아드님의 이야기입니다!
만약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아드님께 동심에 물들게 해 줘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