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를 위한 창작자가 되자
어려서 아마데우스를 봤을 땐 살리에르가 얄미웠다. 왜 저렇게 모차르트를 못 살게 구는지. 질투심에 눈이 멀어 천재를 구렁텅이로 내몰다니.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가 차고 아마데우스를 다시 보니 이번엔 살리에르가 가여웠다. 천재의 뒤편에서 절망하는 범재. 순간 군대 동기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형 맨날 왜 글만 써. 선비야?"
"재밌어. 너도 써봐."
그 뒤로 30분인가 흘렀을까.
"형 읽어봐. 다 썼어."
난 동기가 넘겨준 글을 단숨에 다 읽었다. 우리 생활관을 배경으로 한 짤막한 소설이었는데 굉장히 흥미로웠다. 장난스럽게 쓰였지만 문장에 활력이 넘쳤다.
"너 필력 좋다.."
진심이 담긴 칭찬을 맥 빠지게 내뱉었다. 내 글을 다시 보니 초라해보였다.
난 너무 글을 진지하게만 쓰는 걸까?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걸까?
그 날 후 며칠 밤은 고민으로 지새웠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글쓰기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회의감에도 펜이나 키보드엔 자꾸만 손이 갔다.
그래. 글쓰기는 취미일 뿐이야.
이런 말로 합리화하며 마음속 깊은 곳에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꾹꾹 욱여넣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른 사람의 좋은 문장을 보면 그 욕망은 이내 솥뚜껑을 박차고 나왔다.
글쓰기가 내 삶에서 취미 이상이었으면 좋겠다.
욕망은 설레는 감정으로 바깥공기를 가득 들이마셨지만 글을 써 내려갈수록 점차 의기소침해졌다. 그리고 난 이내 무력감과 억울함에 휩싸였다.
왜 내겐 충분한 재능을 쥐어주지 않은 걸까.
왜 그러면서 글쓰기에 흥미를 갖게 했을까.
무신론자이면서도 하늘에 있는 누군가를 원망했다. 그리고 살리에르, 주유의 절망을 떠올렸다.
범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에 내려진 후광에 감탄하다 말라비틀어질 운명이지 않을까.
공허했다. 노력하는 자,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흔한 말 따윈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군대 동기처럼 글쓰기와는 일절 관련이 없던 사람도 글을 잘 쓰는 마당에. 왜 정작 나는..
이리저리 마음을 부라렸다. 멋진 작가, 글에 대한 동경은 질투와 좌절로 이어졌고 쓰고 읽는 게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꿈이 구렁텅이가 되는 것도 일순간이구나.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살리에르처럼 되려나. 아니 살리에르처럼이라도 되면 다행이지. 난 그냥 뜬구름처럼 있는지도 모르고 지겠구나.
허무, 공허, 회의.
이런 부정적인 생각만 떠오르고 잠도 잘 안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난 왓챠의 한 댓글을 보게 됐다.
살리에르는 몰랐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것도 재능이라는 것을.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살리에르들이 알았으면 한다. 귀한 것을 알아보는 것도 귀한 것이라는 것을.
- Watcha 평 中
이 댓글을 보고 순간 사고의 전환이 됐다.
난 천재는 아니지만 멋진 글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은 갖고 있지 않은가?
이 관점으로 세상을 둘러보면 많은 게 달라 보이지 않을까?
실제로 그랬다. 멋진 글을 본 순간 난 이전과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됐다.
이런 멋진 글이 세상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 많은 텍스트를 음미하고
더 많은 텍스트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자.
이제 나는 살리에르나 주유의 결말을 떠올리지 않는다. 천재의 후광에 감탄하면서도 메말라가는, 그런 비극적인 장면을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 천재가 더욱더 비상할 수 있도록
또 질투에 이카루스처럼 추락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떠올린다.
처음엔 지극히 추상적인 느낌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구체화됐다. 지금의 난 작가들을 위한 툴을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다.
물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만들고 싶은 게 뚜렷하니 동기부여가 잘 된다. 글쓰기에 재능은 없더라도 일단 텍스트를 어느 정도 쌓아 올려서 그런지 작가들에게 어떤 게 필요한지 캐치할 수 있었다.
작가들의 고충, 니즈를 더 캐치하기 위해 앞으로도 많은 글을 쓰고 문인들을 많이 만나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행복하다.
조금은 다른 방식이지만 글쓰기는 내 삶에서 취미 이상의 것이 되어가고 있다.
작가들을 위한 툴, 첫 번째 결과물
- 옥스퍼드, MIT 등의 학교에서 활용하는 글쓰기 연습법, 자유롭게 쓰기(Free Writing)
- 그 자유롭게 쓰기를 할 수 있는 웹사이트
더 많은 텍스트를 음미하고.
더 많은 텍스트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