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전성을 품고 평화를 외치다
최근 중국은 대외적인 확장 정책을 펼치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열병식, 남중국해에서의 영토 분쟁. 주변 국가들을 긴장하게 하는 사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미국의 개입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제 아시아에선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국가가 거의 없다.
중국은 앞으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호전성을 드러낼 것이다. 주변국과의 갈등이 일어나겠지만 압도적인 국력 차이로 그들의 목소리를 묵살해버릴 가능성이 크다.
최근 국내의 미세 먼지 문제만 해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중국 리더들과 관영 매체는 중국이 평화를 추구하는 나라라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커창 총리는 공자의 화위귀(和为贵)라는 표현을 빌어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 중국인의 본질이라 말했으며 시진핑 또한 중국인의 피 속에는 남을 침략하는 유전자가 없다고 말했다.
이중적인 경향성을 띄는 건 리더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대중 사이에서도 이중적 경향이 발견되었다.
2015년 베이징대에서 실시한 설문에선 자국민을 평화적이라고 여기는 중국인일수록 군비 지출 확대에 긍정적인 대답을 한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한 편에선 평화를 말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폭력성을 드러내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떠오른다.
중국은 왜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갖게 됐을까?
개인적으론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그 핵심 원인으로 꼽고 싶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무력이 강했던 나라가 아니었다. 매 겨울마다 북방 유목 민족에게 털렸으며 때에 따라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했다.
그나마 군사력이 강했다고 여겨지는 수/당/청과 같은 제국도 결국 북방 민족이 중국에 내려와 세운 나라였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강했던 것은 무력보다는 통치 시스템 빨이었다. 유교 사상과 관료제/과거제에 기반한 통치 시스템을 갖춘 중국 한족 외에는 그 넓은 대륙을 다스릴 수 있는 세력이 없었다.
수/당/청도 한족의 통치 시스템을 받아들였기에 강력한 국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던 유목 민족 국가는 대부분 얼마 가지 못해 멸망했다.
중국 제국의 강함이 무력이 아닌 시스템에 있었다는 것은 조공 무역이라는 그들의 대외 정책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국 제국들은 조공자가 더 이득을 보는 특수한 조공 관계를 통해 주변국과의 관계를 조정해왔다.
중국은 주변국에서 조공을 하러 오면 그 국가를 인정해주는 것과 함께 진귀한 물품들을 하사했다. 옛날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가 엄청난 가치를 가졌기에 조공을 바친 국가는 사실상 더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었다.
그러니까 주변국 입장에서도 중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았던 것이다. 겨울의 북방 유목 민족처럼 굶주린 상태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중국 제국들은 강력한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아시아의 리더로 군림할 수 있었다. 적어도 서구 열강이 쳐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열강들은 중국과 조공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고 폭력적으로 중국을 제압했다. 아편 전쟁을 시작으로 중국은 서구 열강들에 의해 이리저리 유린당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굴욕의 역사를 통해 중국인들은 기존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후 중국은 변법자강 운동과 같은 무력을 강화하는 시도를 해왔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중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평화를 추구해왔어.
그런데 그 결과를 봐.
겨울마다 북방 민족한테 털리는 건 물론이고 이번엔 서구 열강 놈들한테 이리저리 유린당했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평화를 외쳐봤자 결국 호구가 될 뿐이야.
즉 일련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중국인들은 피해 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피해 의식은 중국인들로 하여금 앞서 말한 이중적인 경향성을 갖게 하기엔 충분했다.
우린 평화적인 국가이지만 너희는 아니니까 우리가 호전적인 자세를 취하는 거야.
최근엔 시진핑, 리커창과 같은 리더가 중국인들의 이중적인 경향성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인은 평화를 추구한다고 말함과 동시에 임의의 적을 설정하고 호전적인 대외 전략을 취한다.
이는 다원화에 따라 약화된 사회 통합을 강화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평화적인 중국이 또다시 위협당하고 있다는 프레임을 짜서 사람들을 국가주의로 똘똘 뭉치게 할 의도인 것이다.
중국에게 새로운 리더 역할을 기대한 세계 각국을 실망시키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자신이 미국을 대신하여 인류 공동체를 이끌고 싶어 하는데 과연 지금과 같은 자세로 그것이 가능할까? 이대로라면 아시아 주변국만 해도 중국을 지지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처럼 한다면 중국은 아시아의 패자가 될 순 있어도 절대로 글로벌 리더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설문 내용 출처
하버드대학 중국 특강, 하버드대학 중국연구소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