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갈래의 글쓰기
너 글 잘 쓴다.
글 쓰는 입장에서 칭찬을 듣는다면 가장 많이 듣게 될 말이다. 처음 들을 땐 '내가 정말 잘 쓰나?'하고 어리둥절하지만 여러 번 듣다 보면 최면에 걸린다.
어쩌면 나 글 꽤나 쓰는 걸지도 몰라!
깨어나기 싫은 달콤한 최면이고 사실일 수도 있다. 또 최면을 통해 잠들어있던 잠재력이 깨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글 잘 쓴다는 칭찬으로 더 많은 글을 쓰게 되어 성장한 사례도 많다. 스티븐 킹도 그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작가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너 글 잘 쓴다"류의 칭찬을 들을 땐 반드시 주의해야 될 부분이 있다. 바로 '글' 앞에 '이런 종류의'라는 한정어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의 칭찬을 다시 풀면 다음과 같다.
너 이런 종류의 글 잘 쓴다.
둘 간에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요리로 설명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듯하다. 만약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게 김치볶음밥인데 친구가 그걸 먹고 내게 요리를 잘한다고 하면 어떻게 답할까?
만약 정직한 사람이라면 "나 김치볶음밥 말고는 할 줄 몰라."라고 답하지 않을까?
즉 내가 쓴 글은 위 상황에서의 김치볶음밥과 같은 것이다. 김치볶음밥이 수많은 요리 중 하나이듯 내가 쓴 글 또한 수많은 글 종류 중 하나일 뿐이다.
글의 갈래엔 정말 끝이 없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생각나는 것 몇 가지만 나열해봤다. 위의 그림을 생각하며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소설을 잘 쓴다고 자기소개서를 잘 쓸까?
내가 기사를 잘 쓴다고 시를 잘 쓸까?
물론 기본기라는 것이 어느 정도 뒷받침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각의 글 종류마다 필요로 하는 능력과 감성이 다르다.
이런 바탕에서 글 잘 쓴다는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될까?
칭찬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긍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칭찬의 모호함이 글쓰기 능력에 대한 환각을 일으켜 자신이 모든 종류의 글을 잘 쓴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착각은 대개 실망과 방황이라는 결과를 낳는다. 착각으로 인해 새로운 종류의 글쓰기에 도전할 때 일정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각각의 글 종류마다 요구하는 능력과 감성이 다르다. 그렇기에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안 나올 가능성이 높다. 결과를 내놓더라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거나 외부의 평가가 이전만큼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때 오는 실망감은 굉장히 크다. 왜냐면 나의 글쓰기 능력이 모조리 부정당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가 된 글은 새로이 개척한 종류의 글임에도 말이다. 결국 착각이 착각을 불러온 셈이다.
착각으로 인해 스스로의 글쓰기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되면 글쓰기가 영 손에 잡히질 않는다. 기존에 즐겨 썼던 종류의 글에서도 자신감을 잃어 마치 고향을 잃은 사람처럼 된다.
물론 이는 최악의 경우로 대개 이 단계에 이르기 전 스스로 환각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든 짧든 환각에 빠져 소모하는 에너지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 말하면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들을 땐 주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칭찬한 사람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내 글을 읽고 피드백 해준 감사한 독자를 실망시켜서야 되겠는가?
지피지기 백전백승
글쓰기가 자신과의 싸움이라면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보다 더 상세하게 나눠서 분석해보자. 독자들의 칭찬을 더욱더 유의미하게 만들어줄 것이다.